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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은 있지만..." 포스코건설 홀로서기 가속화

기사입력 : 2016년04월06일 10:55

최종수정 : 2016년04월06일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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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2조대 그룹 공사 5000억으로 급감..성장축 무너지자 매출·영업익 동반 하락세

[편집자] 이 기사는 04월 05일 오후 3시12분 프리미엄 뉴스서비스'ANDA'에 먼저 출고됐습니다. 몽골어로 의형제를 뜻하는 'ANDA'는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과 도약, 독자 여러분의 성공적인 자산관리 동반자가 되겠다는 뉴스핌의 약속입니다.

[뉴스핌=이동훈 기자] 모기업 지분이 절반 가량 줄어든 포스코건설이 홀로서기에 나섰지만 순탄치 않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든든한 그룹 지원이 줄어들자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동반 하락곡선을 그리고 있다. 포스코 등 그룹 매출이 전체의 최대 50%를 차지하다가 반토막 넘게 감소해 성장세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금융이자 부담이 늘고 개발 사업에 따른 지분법 손실도 재무구조에 부담을 주고 있다.

5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포스코건설은 지난해 포스코가 발주한 공사로 5438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8618억원) 대비 36.8% 감소한 금액이다.

포스코 관련 공사가 5000억원대로 내려앉은 건 지난 1994년 포스코건설(전 포스코개발)이 출범한 후 사실상 처음이다. 계열사 용역거래가 외부로 첫 공개된 2009년 포스코건설은 포스코 발주 공사로 2조2448억원 매출을 올렸다. 연간 총 매출(별도기준 6조6757억원)의 33.6% 규모다.

이후에도 포스코건설은 포스코 공사를 도맡아 성장세에 속도를 붙였다. 2010년에는 포스코 공사가 2조2924억원으로 전체 매출(6조2379억원)의 36.7%를 차지했다. 포스코파워, 포스코특수강 등 계열사 거래를 모두 합치면 총 매출의 50%가 넘는다. 건설업계에서 그룹비중이 가장 높았다.

2011년 포스코 공사가 1조4922억원으로 줄었으나 2012년 1조7782억원으로 다시 늘어 2013년엔 2조2902억원까지 회복했다. 하지만 철강 경기 하락 등으로 2014년 8000억원대로 내려앉았고 작년엔 5000억원대로 뚝 떨어졌다.

그룹공사는 상위 건설사에 중요한 성장동력이다. 대부분 수의계약인 데다 상대적으로 이익률도 높아 ‘알짜’ 영역으로 꼽힌다. 게다가 수주기업의 고질적 문제인 미청구공사, 공사미수금에도 자유롭다.

이런 안정적인 사업이 줄어들자 포스코건설은 연결기준으로 매출과 영업이익이 동반 하락했다. 별도기준 매출은 2013년 8조원에서 2014년 7조5000억, 작년엔 6조원대로 주저앉았다. 이 기간 영업이익은 4043억원, 2773억원, 2451억원으로 계속 줄었다.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그룹공사가 줄어든 측면도 있지만 진행 중인 대형 프로젝트가 준공됐거나 준공을 압두면서 매출 및 영업이익이 감소했다”며 “해외시장 수주를 강화하고 사업영역을 다양화해 성장세를 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융비용도 늘고 있다. 이 회사는 작년 연간 이자비용으로 1030억원을 지출했다. 이는 매출 규모가 2배 이상 많은 삼성물산(1006억원), 현대건설(1031억원) 등과 비슷한 규모다. 지난해 지분을 팔아 차입금을 일부 갚았지만 이자 비용이 크게 줄지 않고 있다. 이처럼 매출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자비용 부담 및 지법분 손실 등이 가중돼 단기간에 재무 안정성을 꾀하기 힘들 것이란 시각이 많다.

개발 사업에 따른 지분법 손실도 커지고 있다. 작년 227억원 지분법 손실을 기록했다. 이는 작년 84억원과 비교해 2배 넘게 증가한 수치다. 포항테크노밸리PFV와 인천김포고속도로, 베트남 안카잉 신도시 사업 등에서 손실을 봤다.

포스코건설의 그룹 일감은 향후에도 늘어날 공산이 크지 않다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철강경기 하락이외에도 포스코의 건설 지분이 크게 줄었기 때문. 작년 포스코는 포스코건설 지분 38%(1조2000억원)을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퍼블릭인베스트먼트(PIF)에 넘겼다.

포스코건설의 최대주주는 여전히 포스코그룹(52%)이다. 하지만 당초 포스코건설의 지분을 90% 넘게 갖고 있던 포스코그룹이 절반 정도 지분을 내다 팔아 예전처럼 포스코건설이 그룹 일감을 독식하긴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포스코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사실상 사라졌고 차입금 비중이 높아 당분간 재무구조가 취약해질 가능성이 있다”며 “자제사업에 보수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양질의 해외수주 및 공정 다양화가 성장세로 재진입할 수 있는 관건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뉴스핌 Newspim] 이동훈 기자 (leed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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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기차 주행거리 두배 증가 배터리 개발 [베이징=뉴스핌] 조용성 특파원 = 중국이 에너지 밀도를 두 배 증가시킬 수 있는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해 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칭화(淸華)대학 화학공학과의 연구팀은 '음이온이 풍부한 용매화 구조 설계'를 개발해 냈으며, 이를 기반으로 불소 함유 폴리에테르 전해질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고 중국 관찰자망이 30일 전했다. 해당 연구 성과는 논문 형식으로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에 등재되었다. 연구진이 만들어낸 폴리에테르 전해질은 고체이며, 연구팀은 해당 전해질을 사용하여 전고체 배터리를 제작했다. 제작된 전고체 배터리는 604Wh/kg의 에너지 밀도를 기록했다. 이는 현재 리튬 이온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가 150~320Wh/kg인 점을 감안하면 에너지 밀도가 두 배 이상 높아진 것이다. 동일한 무게의 배터리이지만 해당 전해질을 사용한 전고체 배터리는 두 배 이상의 전력을 충전할 수 있는 셈이다. 이론적으로 전기차의 1회 충전 주행 거리가 두 배 증가할 수 있게 된다. 현재 500km가량을 주행할 수 있는 전기차가 1000km를 주행할 수 있게 된다. 해당 전고체 배터리는 안전성 테스트도 통과하였다. 못을 박아도 화재와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120도의 높은 온도의 박스 안에 6시간 동안 방치되었지만, 연소나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500회 이상 충방전을 거치면서도 에너지 저장 용량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연구진이 만들어낸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된다면 많은 분야에서 활용이 가능해진다. 전기차의 주행 거리는 두 배 증가하며, 드론의 비행 거리도 두 배 증가하게 된다. ESS(에너지저장장치) 역시 부피당 저장 용량을 크게 끌어올리게 되며 ESS 소형화가 가능해진다. 칭화대 연구진이 개발한 전고체 전해질의 도식도 [사진=네이처 캡처] ys1744@newspim.com 2025-09-3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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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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