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김율희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였다. 지난해에 그녀를 만나 함께 소주 한잔을 기울였던 기억이 난다. 그 자리에서 전통에 대한 열정, 의지, 시대를 향한 철학에 대해 한참이나 대화를 나눴었다. 그리고 그 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세월이란 흐르는 물 같고 인생이란 바람결 같다고 청춘가(歌)는 말했던가.
그녀가 다시 눈앞에 나타난 건 재즈 공연 목록의 활자를 통해서였다. 한 달 간의 공연 일정 안에서 그녀의 이름을 발견한 것이다. 그제야 안부가 생각난 것이다, 짐짓 세월에 핑계를 대고 싶어진다.
재즈 공연장에서 이름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다들 보컬 누구누구였는데 김율희 앞엔 아주 멋지게 소리라고 적혀있었다. 그녀가 활동하는 엔이큐(NEQ)는 올해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크로스오버 음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엔이큐(NEQ)는 인연이 돼서, 팀을 만들게 됐어요. 재즈 연주자 분들 하면 먼저 생각나는 게 국악을 하는 저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었어요, 시도해 보고 싶었어요. 도전을 결심하고 나선 함께 앨범도 즉흥적으로 녹음했고, 공연도 즉흥적으로 해요. '우리 이쯤에서 누가 나오고 들어가자' 이 정도만 정해 놓아요. 말 그대로 재즈죠. 엔이큐를 통해 어쩌면 국악 공부를 더 하고 싶어졌다고 말할 수 있어요. 즉흥적인 것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무엇인지 계속 찾아내고 싶어진 거예요. 음악 안에서 나를 찾아가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김율희는 전통 그룹 바라지의 멤버이기도 하다. 바라지의 경우 많은 독자 분들도 아시겠지만, 젊은 국악인들이 극찬을 마다하지 않는 앨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말씀드렸다시피 음악을 찾아가는 길에 서 있어요. 지금 이 시대의 국악인들은 과도기적 시대를 거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전통을 고수해야하는가,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선 현대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등을요. 바라지 팀과 활동을 하고 있는데,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어디로 가야하나 방황할 때, 전통이 진짜 멋지다는 걸 알려주고 있어요. 관객들이 정말 좋아해주시거든요."
바라지의 이름에서 자신감이 붙는다. 김율희는 진심으로 전통을 사랑하고 있다. 음악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말 그대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하는 김율희는 바닥소리라는 팀에서 음악극을 진행하기도 했다. 국악이라는 장르 안에서, 전통이라는 역사 안에서 끊임없이 지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지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굉장히 큰 의미이다. 멈춰있지 않는 국악인, 미래를 향해 흘러가게 만들어주는 국악인. 과도기적 시대를 뚫고 앞으로 나아가는 활 같은 국악인이다.
"지난해 슬럼프라는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민을 했어요. 가끔은 잘나간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는데…사실 저는 그 이야길 들을 때마다 고통스럽고 부끄러웠어요. 작년 11월, 12월이었을 거예요. 정말 우울했고, 고통스럽게 보냈어요. 그 우울함 끝에 '연습을 하지 않은지 오래 됐구나'란 생각을 했고, 완창 무대 대관 예약을 했어요. 저는요…창피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재밌는 건, 제가 연습을 시작하고 다시 행복해졌어요. 나를 위한 시간에 요즘 너무 행복해요."
김율희는 요즘 소리 연습하는 시간이 즐겁다고 말하면서 행복하다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자기 자신을 이토록 잘 알 수 있다는 것에 순간 부러움이 스쳐가기도 했다. 그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도 매일매일 일기를 쓰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한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10년 뒤의 김율희가 너무도 궁금해졌다. 눈앞에 있는 이 순간이 빨리 미래로 연결됐으면 좋겠다 싶었다.
"엄마가 제 2학년 때 일기를 하나 보내주셨어요. 2학년 일기장엔 '안숙선 선생님 공연을 보았다. 다음에 판소리를 안숙선 선생님처럼 할 수 있을까? 참 그게 궁금하다.' 이렇게 적었더라고요.(웃음) 이것뿐만이 아니고 어릴 적 일기엔 ‘나는 나중에 커서 국악 고등학교에 갈 것이다.’ 이런 것도 적었는데 정말 꿈을 이뤘어요. 중앙대학교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대학교도 그렇게 갔고요. 그래서 올해 계획도 세운 거예요. 계획을 세우고 이뤄가는 게 좋아요. 그리고 나중에 이룬 것으로 체크하는 이 모든 것이 재밌고 즐거워요."
일기 속에 자신에 대한 반성과 일상에 대한 시(詩)를 쌓아가며 음악에 대한 꿈을 키워가는 국악인, 자기 또래의 국악인에 대한 칭찬도 자리에서 한참이나 들었다. 자신에겐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타인은 깊이 안아줄 줄 아는 소리꾼 김율희, 그녀가 앞으로 풀어갈 음악은 이 시대 청춘의 자화상이 되지 않을까 감히 예측해본다.
소리꾼 김율희의 완창 공연은 올 12월 10일 종로 아라리오 뮤지엄에서 진행된다.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02-794-8838, sm2909@hanmail.net) 페이스북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