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강혁 기자] 재계 주요 기업들이 유럽위기 대응을 위한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에 줄줄이 돌입하고 있다.
미리 설정해놓은 상황별 시나리오 경영만으로는 적절한 위기 대응이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현재의 유럽위기가 유로존의 태생부터 일부분 예측 가능했던 부분이지만 그 심각성은 날이 갈수록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게 주요 기업 대부분이 느끼는 현실이다.
유럽위기는 최근 각 국가는 물론 유로존 차원의 정책적 합의 등으로 다소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언제고 다시 촉발될 지 모를 시한폭탄을 여전히 품고 있다.
5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유럽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시나리오 경영을 가동 중이다.
삼성은 각 계열사별로 금리, 환율 등 시장별 경영 주요 지표의 변화를 가정해 시나리오를 설정해놓고 이를 경영에 반영하고 있다.
이번 삼성전자의 시나리오 경영도 그 지표에 이상 신호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유로화 급락 등 경영의 주요 지표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 삼성전자 차원에서 시나리오 경영을 가동했다"고 말했다.
당장의 핵심은 아무래도 유로화의 움직임이다. 최대 매출처인 유럽시장에 대해 삼성전자는 올해 초 1유로당 1.3달러를 내다보고 사업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유로화는 최근 1.25달러까지 하락한 상태다.
전사 차원에서는 올 상반기 실적 호조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다소 여유롭지만 유럽 총괄법인에서 느끼는 위기의식은 상당히 큰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전자는 이런 변화에 대해 삼성경제연구소 등의 인력을 최대한 가동하면서 유럽 동향을 예의주시하는 상태다.
삼성중공업 등 유럽시장의 매출처를 보유하고 있는 삼성그룹의 다른 계열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유럽시장의 변동성은 둘째치고라도 파이낸싱 측면에서는 각종 사업에 비상에 걸려 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유럽위기는 지난해부터 충분히 예측하던 부분이지만 올해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분위기"라면서 "상반기 수주 목표는 어느정도 달성한 상태이지만 선박금융 등이 여전히 문제라서 하반기는 비상상황의 강도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삼성중공업에서도 일종의 시나리오 경영이 가동되고 있다. 그리스 등 남유럽 수주가 어렵다고 보고 해양플랜트 등 미래 고부가 사업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경영전략을 수립 중이다.
현대차그룹도 유럽시장 전반에 대해 긴장감을 크게 높이고 있다. 상반기 농사는 만족스러운 결과로 이어졌다는 판단이지만 유럽위기 장기화에 대비하자는 경영진의 움직임은 분주하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최근 해외법인장들을 불러모아 "유럽 위기가 타 지역으로 전이될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대응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고, 이보다 앞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등 경영들은 유럽법인을 둘러보며 위기 돌파의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이런 맥락에서 위기의 진원지인 남유럽 판매비중 조절에 신경쓰면 현지공장과 법인을 연결한 마케팅 전략 강화를 모색 중이다.
LG그룹도 유럽위기 대응 차원에서 위기 관리에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단적으로 LG전자는 유럽의 매출 비중은 줄여가는 등 매출처 다변화를 진행 중이고, 제품의 경쟁력과 원가를 절감하기 위한 다양한 비상 대책을 수립해 운영하고 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최근 개최한 그룹 임원 세미나에 참석해 "유럽의 위기가 3년은 갈 것"이라면서 "사업 전반을 다시 점검해 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주요 기업들의 이런 대응 체제는 선제적 의미가 강한 것으로 해석된다. 유럽의 위기가 우리 기업들에게만 다가오는 여파가 아닌만큼 변화에 얼만큼 발빠르게 대비하고 대처하느냐가 위기의 해법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유럽위기는 2008년 금융위기처럼 한꺼번에 터지는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다양한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 될 것"이라며 "우리 기업들이 치열해지는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어떻게 버텨내는지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유럽위기에 따라 유럽 소비의 허리인 중산층의 소비 여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한-EU FTA(자유무역협정) 등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한 유리한 장점들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김 위원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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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