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비 차관 "북한 핵무기 60여 기 인지… 한국, 모범 동맹"
WSJ "북 김정은, 여유 행보… '핵 보유가 체제 보장' 인식"
[워싱턴=뉴스핌] 박정우 특파원 = 이란의 핵 시설과 군사 거점을 겨냥한 미국의 '핵 불용' 폭격이 닷새째 이어지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핵심 안보 라인이 북한 문제를 두고 내놓은 메시지가 미국이 '불량국가'로 규정한 이란과 북한을 향한 '이중 잣대'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비핵국인 이란과 베네수엘라에는 과감히 무력을 투사하면서도, 이미 수십 기의 핵탄두를 보유한 북한에는 '한국과의 동맹 강화'와 '대화 여지'를 강조하며 관리 모드 기조를 유지하는 모양새다.
◆ 콜비 "북핵 60여 기 잘 알고 있어
4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열린 미국외교협회(CFR) 세미나에 참석한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전쟁부) 정책담당 차관의 발언은 현재 워싱턴이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다.
콜비 차관은 이날 "미국이 60여기의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에 대해 왜 언급이 없나"라는 질문에 "우리는 북한에 대해 언급한 적 있다. 우리는 그 점을 잘 인지하고 있다(we're well aware of that)"고 답했다. 이어 "그점이 우리가 한국과 매우 긴밀한 동맹을 유지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이란 사태로 전선이 넓어진 상황에서 북한의 추가 도발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북핵 위협 관리에서 손을 떼지 않고 있다는 점을 의식적으로 부각한 상황 관리성 메시지로 읽힌다.
그는 이어 한국 정부를 '모범 동맹'으로 치켜세웠다. 콜비 차관은 "중도 좌파 성향의 진보 정부임에도 한국은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3.5% 수준까지 늘리는 새로운 글로벌 기준에 동의했다"며 "한국은 한반도에서 재래식 방어에 주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이 유럽의 모델(국방비 인상)을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확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칭찬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해온 '방위비 분담·역할 증대' 모델을 한국이 사실상 수용함으로써, 미국이 중동에 전력을 집중하는 동안 한반도 재래식 억지의 1차 책임을 한국이 떠안는 구조를 공고히 하는 대목이다.
콜비 차관은 또 북한에 대한 전반적인 접근법은 미국이 다른 지역에서 취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강하면서도 대화와 관여에 열려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중국·러시아와도 대화할 준비가 돼 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슬람공화국(이란) 지도부와도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며, 백악관이 조건 없는 북미 대화 가능성을 여러 차례 시사해 왔음을 상기시켰다. 북한과 관련해 비핵화 원칙을 거듭 확인하면서도 전제조건 없는 대화 카드를 내려놓지 않겠다는 뜻으로, 북핵을 둘러싼 긴장을 키우기보다는 이른바 '로우키(low-key) 관리 모드'를 유지하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 "핵 있으면 안 때린다?"… 이란 공습 속 김정은의 '여유'
같은 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란 사태를 지켜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행보에 주목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과 군사 자산을 집중 폭격하기 시작한 직후, 김 위원장은 붉은 선전 현수막으로 장식된 평양 인근 시멘트 공장을 찾아 담배를 피우며 노동자들을 둘러보는 여유로운 모습을 연출했다.
WSJ는 과거 미국의 대외 군사작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한동안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과 달리, 김정은 위원장이 이란 공습 직후 곧바로 공개 활동에 나선 점을 부각하며 "핵무기가 체제 생존의 유일한 보험이라는 북한의 신념이 이번 사태로 더욱 굳어졌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핵이 없는 이란과 베네수엘라에는 정권교체를 노린 강경 수단을 동원하면서도, 이미 핵을 보유한 북한에는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제안해 온 이중적 태도가 김 위원장에게 "핵을 포기하면 죽는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앞서 노동당 전원회의에서도 북한의 '완전한 핵무력 건설'이 미국의 군사적 공격을 억제하는 핵심 수단이라고 재확인하며, 비핵화 협상 재개에는 미국의 '핵보유국 지위 사실상 인정'이 전제돼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이란 사태가 북한의 핵무장 정당화 논리에 추가 명분을 제공하는 역설적 효과를 낳고 있는 셈이다.
◆ "충분한 신호 보낼 것" vs "입장 변화 없다"
미국 당국자들의 북한에 대한 입장과 관련한 온도 차도 눈에 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이날 이란 공습 관련 브리핑에서 "이란의 핵 야망을 다루는 과정에서 (북한 등) 다른 나라들에게도 충분한 신호를 보내게 될 것"이라며 간접적인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 이란에 대한 압도적 공습 자체가 잠재적 도전 세력에게 '레드라인을 넘을 경우 이란과 같은 운명을 맞을 수 있다'는 시위라는 의미다.
반면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같은날 '이란의 핵 개발을 이유로 군사작전을 벌인 것이 북한에 대한 입장 변화로 이어지느냐'는 질문에 "북한과 관련해 어떤 입장 변화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를 별도로 관리하면서, 이란과 동일 선상에서 다루지 않겠다는 기조를 재확인한 셈이다.
전·현직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이러한 '선택적 타격' 전략이 향후 북·미 관계를 한층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존 에버라드 전 주북 영국대사는 WSJ에 "김정은은 미국의 군사 작전 능력을 매우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라며 "미군이 중동에서 패트리엇·사드(THAAD) 등 미사일 방어 자산과 정밀유도무기를 얼마나 소진하는지가 북한의 향후 도발 수위 계산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dczoomin@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