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벨트 중심으로 매물 증가세 뚜렷
급매 속출보단 '포인트'로 출현
5월 9일까지 호가 하락 시계 빨라질까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급매물이 그렇게 많진 않습니다. 한 번씩 호가를 확 낮춘 소위 '던지기' 매물이 나오는데 여기에 관심이 많이 몰리고 있어요." (압구정동 A공인중개사)

◆ 다주택자 팔아야 하나 고민...압구정동 매도호가 120억짜리 10억 낮춰
6일 방문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아파트 밀집 지역 인근 공인중개사 사무소 내 분위기는 몇 개월 전과 사뭇 달라진 모습이었다. 지난달만 해도 재건축 기대감과 매물 부족 현상이 맞물리며 매수 대기자가 자연스럽게 생기던 분위기였지만, 최근에는 매도자와 매수자가 서로 '가격을 어디까지 내릴지'와 '언제까지 버틸지'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기류가 짙어졌다.
A공인중개사는 "문의가 줄었다기보다 '얼마나 더 내려오냐'부터 묻는 분위기라 호가를 먼저 조정해 반응을 보는 집주인이 늘었다"고 말했다.
집주인이 직접 연락해 호가를 '직접' 손본 매물도 있다. 현대3차 82㎡(이하 전용면적) 중층 매물은 호가를 1억원 낮춰 55억원에, 같은 평형 1층 매물은 기존보다 1억원 내린 56억원에 각각 가격이 매겨졌다. 지난해 11월 기록한 실거래 최고가 60억7000만원(12층)과 비교하면 4억7000만원이나 떨어졌다. 현대6·7차 196㎡ 또한 120억원을 부르던 매도 희망자가 크게 줄었다. 현재 호가는 110억원으로 10억원 내려앉았다.
호가 조정 움직임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를 더는 재연장하지 않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의견 제시 이후 나타났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다주택자 양도세 면제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 이틀 뒤에는 본인 X에 "5월9일까지 계약한 매물에 대해서는 잔금 납부 기간을 고려해 유예 검토는 해보겠습니다. 이번이 마지막 탈출 기회"라고 남기기도 했다.
양도세 중과 유예는 2022년 부활한 뒤 1년 단위로 연장됐다. 유예가 끝나면 기본세율(6~45%)에 2주택자는 20%p(포인트), 3주택자 이상은 30%p 이상 가산세율이 추가된다. 집을 세 채 이상 가지고 있는 경우 지방소득세 10%까지 더 붙어 최고세율이 82.5%까지 오를 수 있다.

매물 지표는 이미 반응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대비 서울 주요 지역 매물(6일 기준)은 이른바 '한강벨트'를 중심으로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성동구가 17.4%(1212건→1423건)으로 확대돼 증가율 1위를 기록했고, 송파구는 17.3%(3526건→4137건)으로 집계됐다. 서초구와 강남구는 각각 9.9%로 6267건에서 6889건, 7585건에서 8336건으로 증가했다.
압구정동 단지별 매물도 늘었다. 같은 기간 7.5%(1296건→1394건)으로 확대됐다. 현대8차 증가율이 17.4%(63건→74건)로 가장 높았고 ▲현대3차 14.8%(47건→54건) ▲영동한양1차 12.9%(93건→105건) ▲현대6·7차 12.1%(148건→166건) 순이었다.
압구정 다음으로 호가를 내린 급매가 생겨난 곳은 강남구 개포동이다. 개포동 대장 아파트로 불리는 개포자이프레지던스 59㎡는 이번 주 30억5000만원에 급매로 나왔다. 지난달 10일 동일 평형이 31억8000만원(23층)에 거래된 뒤 시장에 32억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었으나, 이번엔 1억5000만원이 낮아졌다. 인근 단지인 래미안블레스티지 113㎡도 호가 43억원에 급매로 등장했다. 지난해 12월 같은 평형이 44억원(2층)에 거래된 점을 감안하면 1억원 떨어졌다.
개포동 매물은 최근 2주 사이 13.2% 늘어 1516건에서 1717건까지 뛰었다. 증가율 순으론 ▲디에이치아너힐즈 26.6%(90건→114건) ▲래미안블레스티지 26.3%(148건→187건)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 22.3%(161건→197건) ▲래미안강남포레스트 19.5%(184건→220건)다.
개포동 B공인중개사는 "같은 단지 안에서도 급하게 처분하려는 매도자는 1억~2억원을 먼저 깎아 내놓고, 버티는 매도자는 호가를 유지해 가격대가 갈라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 양도세 중과 회피 매물 4월까지 늘어날 듯...거래가 급락은 지켜봐야
정부의 다주택자 압박과 양도세 중과 시행 전 회피 물량과 수익실현이 집중된 결과로 해석된다. 이 흐름은 잠실로도 옮겨 붙는 모습이다. 잠실 대표 아파트로 불리는 '엘·리·트'(엘스·리센츠·트리지움) 중 하나인 리센츠 84.99㎡는 33억원 후반대까지 매물이 나와 있다. 동일 평형이 지난달 9일과 22일 35억원(5층, 26층)에 각각 거래됐지만, 한달도 안 돼 1억원 이상 낮춘 가격이 등장한 셈이다.
재건축을 앞둔 잠실주공5단지 76㎡에서도 호가를 42억원에서 40억5000만원으로 내린 매물이 나왔다. 잠실동 C공인중개사는 "물건이 많진 않은데도 하루에 2~3통은 호가 흐름을 물어보는 전화가 온다"며 "급매가 나오면 주변 가격대가 같이 흔들릴지부터 다들 예민하게 본다"고 말했다.
정부는 다주택 매물이 시장에 나오도록 양도세 감면을 적용받을 수 있는 주택 처분 기한을 한시적으로 늘렸다. 오는 5월 9일까지 집을 팔면 기존 조정대상지역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의 경우 3개월 내에 잔금을 내거나 등기를 하면 양도세 중과 유예 대상에 포함한다. 지난해 '10·15 대책'으로 신규 조정대상지역에 지정된 곳은 6개월로 기한이 더 길다.

정부는 처분 기한이 가까워질수록 서울 상급지에서의 호가 인하와 급매 출현이 더욱 빈번히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국토부 관계자는 "다음 주에는 더 저렴한 가격에 아파트를 내놓는 매도 희망자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양지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지난해에 매도나 증여도 많이 이뤄진 영향도 있지만, 무엇보다 유예를 기대하고 기다렸던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가 확정이 된 만큼 유예 종료 전까지 매물 증가 추세는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급매가 강남권 일부 단지에서 예외적으로 포착되는 흐름이어서 장기적으로 시장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5월 과세 기준일 전 잔금을 치르려는 고령자 및 은퇴 세대의 절세 매물이 시장을 나오고 있어, 이 같은 흐름은 올해 4월 말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며 "올해 서울 입주 물량이 급감하는 공급 절벽이 예고돼 있어 급매 소화 이후 하반기부터는 다시 강한 하방 경직성을 보이며 가격이 재반등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다주택자들이 실제로 매도에 나서도록 하려면 가격 인하와 연동한 세제 인센티브를 도입해야 한다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시세 대비 10% 싸게 팔면 양도세율을 10% 인하해 주는 방식이다. 시세보다 싸게 내놓는 매도자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도록 설계해 감세 논란을 줄이면서도 급매를 유도할 수 있다는 취지다.
김인만 김인만경제연구소 소장은 "지금처럼 대출이 막혀 있고 토지거래허가구역까지 확대 지정된 상황에서 집을 팔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알면서도 다주택자 압박 메시지만 내는 것은 매수자들의 움직임을 차단하기 위한 메시지일 뿐"이라며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 다주택자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 시절 한 차례 실패한 보유세 인상 카드를 다시 꺼내야 하는 정부의 고민도 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chulsoofriend@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