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혁 후 유학정책으로 폐허 중국을 옥토로
인재 영입문 활짝 개방 이니셔티브 주도
빗장 건 미국, 대문 활짝 열어제친 중국
미국 대신 글로벌 인재 허브로 급부상
[서울=뉴스핌] 최헌규 중국전문기자= 지식분자를 탄압했던 중국 문화대혁명 기간(1966년~1976년) 중국에서는 대학 문이 꽁꽁 잠겼다. 어떤 지역에선 서책과 도서관이 불타는 현대판 분서갱유 사건도 일어났다. 해외 유학이라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1977년에 대학문이 열리고 10년 만에 수능 시험이 치러졌다. 지금의 중국 최고지도자 시진핑(习近平) 국가주석이 대학에 들러가던 바로 그해다. 이듬해인 1978년 후반 개혁개방이 추진됐는데 이때 사람들이 별로 주목하지 않았지만, 훗날 중국 세상을 바꾸는데 초석이 된 획기적인 유학 정책이 도입된다.
마오쩌둥이 세상을 떠난지 2년, 개혁개방의 해인 1978년 말 중국 지도자들의 사무실과 거주지가 밀집한 중난하이(中南海, 중남해) 한 사무실에서 무거운 분위기 속에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邓小平)이 주재하는 회의가 열렸다. 덩샤오핑은 이 자리에서 미국에 유학생을 파견하자는 의외의 안건을 제시했다.
보수파 지도자들은 지식분자를 탄압한 10년 문혁이 막 끝났는데 지금 유학을 보내면 과연 학생들이 몇명이나 돌아오겠냐며 거세게 반대했다. 한쪽에선 귀국한다해도 서방 자유사상에 오염돼 시대를 거스르는 반동파(우파)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명 유학비면 실험실 하나를 지을 비용인데, 달러가 품귀인 당시 상황에서 예산 문제를 어쩌겠냐는 현실론도 제기됐다.
보수파들의 유학정책 반대에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엔 위험이 수반되기 마련이다"며 "과감히 모험에 나서야하고 무엇보다 청년들을 믿어야한다"고 반박했다. 덩샤오핑은 "인재 없는 개혁개방은 연목구어"라며 "작금의 중국 위기는 빈곤이나 공장이 없는게 아니라 인재 부재"라고 역설했다. 설령 10%밖에 안돌아온다 해도 청년들을 유학 보내 서방(국가)을 배우게 해야한다며 보수 원로들을 설득했다.

중국의 원로 공산주의자로서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이 서방세계를 의심하고 경계했던 것과 달리 서방의 경제 발전을 선망하고 유럽과 미국을 쫓아 배워야한다고 생각했다. 그 자신도 청년시절인 1920년 16세때 프랑스로 근검공학(주경야독)의 유학을 떠나 르노자동차의 조립공으로 일하면서 자본주의를 체험하고 유럽 사회주의를 공부했다. 이후 조국으로 돌아온 덩샤오핑은 새빨간 공산당원이 돼 중국 공산 혁명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중난하이의 유학 정책 회의에서 덩샤오핑은 마침내 자신의 구상을 관철했다. 때는 마침 미국 카터 행정부와 수교 협상중이었는데 중국과 미국은 협상 테이블에서 중국 유학생을 미국에 보내고 받아들이는데 합의했다. 여권과 비자라는 용어조차 생소했던 시절, 중국 학생 52명이 중미 수교 직전해인 1978년 12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중국 유학생은 미중 수교의 해인 1979년 1777명, 1980년 3000명으로 불어났고 개혁개방이 한창 속도를 내던 1984년 미국행 유학생은 누계 2만명에 육박했다.
미중갈등으로 최근에 와선 다소 줄어들었지만 2000년대 전후 한참 동안 한해 평균 수만명의 중국 학생들이 첨단 과기 공학 기술과 서구의 시장경제, 경영 통계 관리학을 공부하러 구미 국가로 유학을 떠났다. 그중 평균 60% 내외의 학생들이 중국으로 돌아왔다. 귀국한 중국 유학생들은 중국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시장경제 건설, 첨단 분야 인터넷 신 산업을 발전시키는 국가의 동량이 됐다. 바이두 리옌훙이나 신랑 소후 등 인터넷 신경제를 꽃피운 창업자들이 모두 그런 사람들이다.
미국과 유럽 현지에 잔류한 40%, 수만명의 유학생들 또한 귀국파 이상으로 중국 개혁개방 현대화 발전에 기여했다. 현지 대학과 연구실에 남아 자국 유학생을 가르쳤고, 서방 현지의 다국적 기업과 미국 실리콘 밸리의 스타트 업계에서 일하면서 중국 개혁개방 경제를 국제사회와 연결하고 서방 선진 기업의 첨단 기술과 경영 문화를 중국에 전수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했다.
최근에 와선 미중 갈등과 국제 환경 변화로 인해 중국인 유학생 귀국률이 한층 높아졌다.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 증가와 매력적인 중국 국내 정책 지원 및 스타트업 환경 개선에 힘입어 귀국 수요가 증가한 것이다. 한때 보내면 돌아오지 않을까 봐 걱정했던 중국 학생들의 외국 유학 귀국률은 최고 70~80%까지 높아졌다.
중국인 학생들의 미국 및 서방 국가를 향한 아웃바운드 유학 열기도 과거에 비해 시들해졌다. 미중 관계 악화와 미국의 폐쇄적인 비자 정책으로 과기 공학 분야 공부가 힘들어졌고, 경제침체로 인해 현지 취업 기회 또한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AI 반도체 컴퓨터 공학 분야에서 실력만 갖추면 중국에서도 억대 연봉을 제공하는 기술 기업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세상이 됐다.
보호주의 정책으로 인재 유입의 빗장을 걸어잠그는 미국과 반대로 중국이 상아탑과 시장의 문을 활짝 열어 제치자 점점 많은 세계 인재들이 중국으로 터전을 옮기고 있다. 인공지능(AI), ICT, 우주항공, 전기차, 신에너지, 반도체, 빅데이터, 양자컴퓨터 같은 첨단 기술 산업 분야에서 중국은 어느새 양질의 연구 환경과 일자리를 제공하는 매력적인 국가 반열에 진입중이다.
미국을 향한 과거 유학 붐 못지않게 '일대일로' 벨트를 따라 점점 많은 외국 학생들이 중국의 유명 대학과 연구기관으로 몰려들고 있고 적지않은 인재들이 중국계 다국적 기업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중국 수도 베이징의 칭화(淸華)대가 과거 MIT 공대 대신 세계 기술 인재의 산실이 되고, 선전이나 베이징 중관촌이 실리콘밸리 처럼 유니콘을 꿈꾸는 세계 스타트업 인재들의 이상향이 되고 있다.
반세기전 덩샤오핑이 씨앗을 뿌린 심모원려의 인재 양성 유학 정책을 통해 서방 세계를 마스터한 중국은 오늘날 세계가 놀라는 중국 굴기를 이뤄냈다. 이제 중국은 거꾸로 놀라운 혜택과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글로벌 우수 학생과 글로벌 인재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팍스아메리카를 꽃피웠던 미국이 그랬듯 오늘날 중국은 세계 인재 유치와 개방의 기치를 높이 들고 팍스시니카 시대를 향해 성큼 다가서고 있다.
서울= 최헌규 중국전문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chk@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