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놀이공원, 쇼핑몰, 관광지 어디를 가도 가상현실(VR) 체험장은 빠지지 않는다. 메타 퀘스트, 플레이스테이션 VR로 즐기던 VR 게임이 이제는 PC 플랫폼과도 연동되면서, 집 안과 밖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법과 제도는 여전히 '모니터 앞에서 조작하는 2차원 게임' 수준에 머물러 있고, 실제 공간을 온몸으로 활용하는 가상현실 게임의 특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현행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은 게임물의 목적이 오락이든, 학습이든, 운동효과든 가리지 않고 모두 게임물로 본다.
실제로 정부도 VR을 단순 오락을 넘어 양자과학기술 교육, 재난·안전체험 등 다양한 공공 영역에서 활용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렇게 현실과 깊게 맞닿은 가상현실 게임이, 기존 법체계 안에서 "정확히 어디에 속하는지"조차 불명확하다는 점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문화산업진흥 기본법'은 디지털콘텐츠 정의에 "현실과 유사한 환경을 구현하여 이용자에게 몰입감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실감콘텐츠"를 명시하는 개정을 추진했고, '가상융합산업 진흥법'은 메타버스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규정했다.
문화 영역에서는 '실감기술', 신산업 영역에서는 '가상융합기술', 과거에는 '가상·증강현실 산업', 정책 홍보에서는 '메타버스'라는 용어가 뒤섞여 부처별 관장 범위도 분절적으로 나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가상현실(VR)'·'증강현실(AR)'을 중심으로 용어를 정리하고, 과기정통부·문체부·산업부·공정위 등이 같은 언어를 쓰며 역할을 분담하는 방향으로 법·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가상현실 게임이 기존 게임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은 "몸 전체가 게임 속으로 들어간다"는 점이다. 화면 속 폭력성·선정성·사행성만 따지던 시대와는 다른 차원의 위험이 등장한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사이버 멀미(cyber sickness)다. 실제 몸은 가만히 있는데 시야 전체를 덮는 화면이 계속 움직이면서 어지럼증, 메스꺼움, 두통, 공간 감각 상실 등이 나타난다. 국내외 연구에서도 이동 속도, 장면 복잡도, 시야각, 회전축 등이 멀미를 유발하는 요인으로 확인되고 있지만, 현행법상 '게임물 내용 정보'는 여전히 폭력·선정·사행 정도에 머물러 있다.
이 게임이 어느 정도 멀미를 유발할 수 있는지, 특정 질환자에게는 어떤 위험이 있는지에 대해 이용자가 알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국제등급분류연합(IARC) 체계에서 폭력·약물·성적 콘텐츠·도박·혐오표현·인게임 결제 여부까지는 촘촘히 표시되고 있지만, 정작 VR 환경에서 핵심적인 "멀미 위험도"는 빠져 있다.
가상현실 게임 이용자가 급속히 늘어나는 현 상황에서 이는 방치할 수 없는 공백이다. 게임물 내용 정보 항목에 △멀미 유발 가능성, △권장 이용·휴식 시간, △어지럼증·시각·신경 질환자 등 취약계층을 위한 주의 사항을 포함하도록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체험장 문제도 시급하다. 일반 시민 다수는 여전히 관광지·쇼핑몰·유원시설에 설치된 VR 체험장에서 처음으로 가상현실을 경험한다. 이때 이용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화려한 그래픽이 아니라 '안전'이다.
현재 전체이용가 VR 게임물을 사용하는 체험장은 '관광진흥법'상 유원시설업으로 관리되며 기계·기구 안전성 검사를 받지만, 이는 주로 구조물·기계 고장을 전제로 한 전통 놀이기구 기준에 가깝다.
반면, 전체이용가가 아닌 VR 게임물을 제공하는 곳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상 게임제공업으로 분류되어 조명, 밀실 금지, 주거지역 입지 제한 등 PC방·오락실 기준의 규제를 받고 있다. 두 체계 모두 '헤드셋을 쓰고 움직이는' VR의 특성과는 거리가 있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법 체계는 VR 게임 자체의 안전성(멀미, 시야 제한, 공간 요구)과 VR 체험장 환경의 안전성(전용 공간 확보, 안전관리자 배치, 비상정지 장치, 미성년·장애인 보호)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체험장을 운영하거나 VR 콘텐츠를 개발·유통하려는 사업자도 무엇을, 어디까지 준비해야 하는지 명확한 기준을 찾기 어렵다.

별도의 '가상현실 체험장' 법적 지위와 안전기준을 마련하고, 공간 정리 의무·안전관리자 교육·사전 안내·비상정지 장치·취약계층 보호 기준 등을 담은 VR 전용 안전 가이드라인을 법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상융합산업 진흥법'과 같은 산업진흥법은 기술과 시장의 성장만이 아니라 부작용에 대한 책임도 함께 다뤄야 한다. VR 멀미 저감 기술, 안전한 콘텐츠 설계 가이드, 사이버보안·프라이버시 기준, 의료·교육·훈련·게임 등 산업별 안전 프로토콜에 대한 연구와 표준화 지원 근거를 포함시켜야 비로소 '책임 있는 진흥법'이라 할 수 있다.
가상현실 기술은 AI와 데이터가 집약되는 미래 핵심 산업이며, 이미 교육·훈련·엔터테인먼트 전 영역으로 퍼지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VR"이 아니라 "더 안전한 VR"이다. 가상현실 산업의 성장은 이용자의 안전과 건강 위에서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법과 정책이 묻는 질문도 "VR이 얼마나 재밌느냐"에서 "VR이 얼마나 안전하냐"로 바뀌어야 할 때다.

박정인 교수(법학박사)는 대통령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본위원회 위원, 문체부 저작권보호심의위원회 심의위원, 문체부 여론집중도조사위원회 상임위원, 인터넷주소분과위원회, 웹콘텐츠 활성화위원회 자문위원, 강동구 공직자윤리위원회 심의위원, 경찰청 사이버범죄 강사 등 여러 국가 위원을 역임했다. 공공기관 대상 법령입안강의를 하며, 대학에서 특허법, 저작권법, 산업보안법, 과학기술법, 정보보안법, 디지털증거법, ICT트러스트공학, 일반 산업안전, 중대재해법 등을 강의한다. 한국인터넷진흥원, 한국콘텐츠진흥원, 인텔리콘 메타연구소, 해인예술법연구소, 숙명여대 초빙교수, 단국대 연구교수 등을 역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