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백사·성뒤마을 등 내년 착공
2029년 공급 물량 대폭 늘
원주민 재정착 대책이 최대 과제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서울의 대표 판자촌들이 재개발을 통해 새 아파트로 변신한다. 수십 년간 주거 취약지로 남아있던 판자촌 공공 주도의 정비사업이 본격화하면서 주택공급 확대와 원주민 재정착 문제라는 과제가 동시에 부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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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판자촌 정비사업 현황 [그래픽=홍종현 미술기자]☞ |
◆ 구룡·백사·성뒤마을… 서울 마지막 판자촌 재개발 속도전
2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강남 마지막 판자촌인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의 토지와 비닐하우스 등에 대한 소유권이 최근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로 모두 이전됐다.
구룡마을은 1970∼1980년대 철거민이 이주하면서 형성된 서울 최대 규모의 무허가 판자촌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전 기존 거주지에서 등 떠밀린 시민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며 조성됐다. 2012년 8월 처음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됐으나 개발 방식에 대한 견해차 등으로 사업에 난항을 겪었다. 본격적으로 물꼬가 트인 건 2016년 SH가 사업 시행자로 나서면서다.
지난해 5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용도지역 상향과 용적률 완화를 결정했고, 이어 올 3월 공동주택 공급량이 추가되면서 총 3800여가구로의 재개발이 확정됐다. 내년 말 착공해 2029년 하반기 준공이 목표다. 청년, 신혼부부, 노년층 등 전 세대가 공존하는 자연 친화 주거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SH는 2023년 5월부터 토지와 비닐하우스 등 물건에 대한 보상 절차에 나섰다. 협의가 가능한 소유자와는 협의 계약을, 이 외에는 수용재결 절차를 거쳤다. 세 차례에 걸친 보상협의회 끝에 사유지 24만㎡와 물건 1931건 중의 소유권 취득 절차가 완료됐다. 김창규 서울시 균형발전본부장은 "아직 이사를 가지 않은 주민의 안전한 거주지 이동을 지원하고, 내년 하반기 안정적으로 공공주택 건설공사를 착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던 노원구 백사마을도 착공을 코앞에 뒀다. 서울시는 지난달 21일 백사마을을을 지하 4층~지상 최고 35층, 25개 동, 3178가구 규모의 아파트로 탈바꿈한다는 내용의 정비계획 변경안을 고시했다.
백사마을은 1960년대 후반 도심 개발 진행으로 밀려온 철거 이주민이 모여 정착한 동네다. 2009년부터 재개발을 추진했지만 사업시행자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SH로 변경되는 과정에서 사업이 일부 지연됐다. 이후 SH의 주도 하에 속도가 붙으며 2021년 시공사로 GS건설을 선정, 지난해 정비사업의 '8부 능선'인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았다.
현재 이주가 대부분 완료됐다. 올 하반기 착공해 2029년 준공하는 것이 목표다. 이 중 임대주택은 565가구로, 한 단지 내에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을 함께 조성하는 '소셜믹스'가 도입될 예정이다. 분양과 임대주택 입주민 사이 심리적 거리감을 줄이고 주거 격차로 인한 차별을 막기 위한 조치다.
1960~1970년대 강남 개발로 터를 잃은 이주민이 우면산 자락에 정착하면서 생겨난 서초구 성뒤마을도 재개발을 위한 막바지 작업에 한창이다. 판자촌을 철거한 뒤 최고 20층, 1600가구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A1블록엔 SH가 900가구를, B1블록은 민간 건설사가 700가구를 각각 공급한다. 내년 3월에 공사를 시작해 2029년 마치는 것이 목표다.
백사마을과 마찬가지로 공공주택도 상당 부분 조성된다. 신혼부부용 장기 전세 주택인 '미리내집' 327가구가 들어설 예정이다. 강남권에 마지막 남은 노른자 땅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만큼 분양 시점엔 몸값이 훅 뛸 것이란 예측이 제기되고 있다.
◆ 분담금 부담에 떠나는 원주민… "제도 보완 필요"
이 외에도 성북구 정릉골, 홍제동 개미마을 일대 등의 판자촌이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릉골은 1960년대 판자촌이 사라지며 살 곳을 잃은 사람들이 다시 만든 판자촌이다. 30여년 전부터 재개발을 추진했으나 아직 이주가 진행 중이다. 자연 경관 보호를 위한 고도제한이 걸려 있는 탓에 고층 개발이 불가하자, 최대 4층 높이 1411가구 규모의 대형 '타운하우스' 단지를 만들기로 했다.
6·25전쟁 피란민이 터를 잡은 개미마을 일대도 개발에 시동을 걸었다. 무허가 건축물에 따른 안전을 우려해서라도 정비사업을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주민 의견이 빗발쳤으나, 사업성이 낮은 편이라 여러 번의 무산 수순을 거쳤다. 현재는 지난해 10월 서울시 신속통합기획 재개발 후보지로 선정된 데 따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과거에는 판자촌 재개발이 쉽지 않은 문제였다. 판자촌에 있는 건축물은 대부분 허가 없이 지은 것들이라 노후도 산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투자자도 많지 않았다. 1981년 1월 24일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던 건축물을 소유하고 있어야 하는 데다. 조합 정관으로 인정을 받아야 입주권 자격을 얻을 수 있는 등 자격 조건이 매우 까다로워서다.
올 4월 국토부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시정비법') 시행령'과 주택 재건축 판정을 위한 재건축진단 기준 등을 개정하면서 판자촌 개발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는 재개발 사업의 정비구역으로 지정을 받으려면 해당 구역의 노후·불량 건축물(30년 이상 경과)이 전체 60% 이상이어야 했으나 이 기준을 완화했다. '토지보상법' 시행령 등에서 보상 대상으로 1989년 1월 24일 당시 무허가건축물을 포함하는 점을 감안해 1989년 1월 24일 당시 무허가건축물도 노후도 산정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정비사업을 통한 서울 내 주택 공급 활성화가 시급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남영우 한국주택학회 회장은 "한국은 주택 재고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1980년대 이후 성장기를 거치면서 연평균 50만가구 수준의 주택을 공급하는 성과를 올렸지만 최근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화와 지방의 미분양 증가, 청약통장 가입자의 감소 등 주택공급을 둘러싼 여건이 좋지 않다"며 "주택 공급 구조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판자촌 재개발 진행과 함께 원주민의 재정착 방안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지난해 서울연구원 조사 결과 서울 내 재개발·재건축 사업에서 원주민 재정착률은 평균 27.7%에 그쳤다. 원주민이 부담하기 어려울 정도의 분담금이 책정되는 탓에 이들은 또 다른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게 되는 실정이다.
이승주 서경대 교수는 "정비사업에서의 비용을 줄여 원주민의 재정착 시 부담금을 완화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 개선과 공공의 역할이 필요하다"며 "원주민의 자산가치에 대한 고려 등을 포함한 제도적 보완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구원 관계자는 "부동산 투기대책과 주택가격 안정, 원주민 재정착 문제와 세입자 대책 등에 대한 충분한 사전준비가 없다면 정비사업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답습하거나 확대 재생산할 것"이라며 "기존 커뮤니티의 물리적인 생활환경은 물론 사회경제적인 구조를 근원적으로 해제시킴으로써 원주민 재정착을 어렵게 하고 저소득주민의 주거불안정을 초래한다면 '누구를 위한 재개발인가?'와 같은 본원적인 물음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chulsoofriend@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