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고인원 기자= 중국이 일부 미국산 반도체 제품에 대한 125% 보복관세를 조용히 철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반도체 분야의 자립을 이루지 못한 중국 정부가 전략적 유연성을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CNN은 25일(현지시간) 홍콩발 기사에서 광둥성 선전시 내 3개 반도체 수입업체 관계자들의 발언을 인용해 "메모리칩을 제외한 집적회로(IC) 제품에 대해 고율 관세가 면제됐다"고 보도했다. 중국 정부의 공식 발표는 없었지만, 현지 통관 과정에서 관세 면제 사실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12일 중국이 미국산 전 품목에 대한 보복관세를 125%로 전격 인상한 지 불과 2주 만에 나온 예외 조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45% 초고율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도 보복관세를 대폭 올리며 맞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반도체의 경우 중국 내 자급 능력이 취약해, 일부 품목에 한해 관세 철회가 불가피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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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중화인민공화국외교부 공식 홈페이지] 2019년 6월 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선전 소재 수입업체 HJET은 24일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환상적인 소식"이라며 "중국 세관으로부터 반도체 및 집적회로 관련 8개 관세 코드가 추가 관세 부과 대상에서 면제됐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선전 반도체 수입업체 타이항(Taihang) 역시 세관으로부터 관세 면제 통지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중국 내 SNS에서는 반도체 칩 및 장비에 대한 관세 면제 사실을 뒷받침하는 사진들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도 이날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을 인용해 "(관세 품목 분류 기준) 8종의 미국산 반도체 관련 제품에 대해서는 기존 125%에 달했던 추가 관세 조치가 해제됐다"며 "다만 메모리 반도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추가 관세 조치가 유지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격화한 미·중 간 관세전쟁이 양국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커지자, 양측 모두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는 분석도 나온다. CNN은 "이번 면제 조치는 중국이 자국 내 생산이 어렵거나 타국에서 대체 조달이 불가능한 중요 품목에 한해 관세를 철회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면서 이번 조치가 인텔,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글로벌파운드리 등 미국 반도체 기업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와 함께 중국 정부가 미국산 의료장비, 산업용 화학제품 등 일부 품목에 대해서도 125% 고율 관세를 면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25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익명의 소식통은 "당국이 미국산 의료기기 및 에탄(ethane) 등 산업용 화학재료에 대한 관세 면제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은 세계 최대 플라스틱 생산국이지만, 플라스틱 생산을 위한 주요 원료인 에탄은 상당 부분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또한 중국 병원들은 GE 헬스케어 테크놀로지스 등 미국 기업이 생산한 자기공명영상(MRI) 장비와 초음파 진단장비를 주요 의료기기로 사용 중이다. 이에 따라 관련 의료장비에 대한 관세 면제 필요성도 제기된 상태다.
이외에도 중국 당국은 항공사들의 운용 항공기에 대해서도 관세 면제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국적 항공사들 역시 상당수 항공기를 리스(임대) 형태로 운용 중인데, 고율 관세가 부과될 경우 리스 비용에 더해 추가적인 관세 부담이 발생해 항공사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재정부와 해관총서는 블룸버그의 논평 요청에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