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상위 10개 건설사 원가율 93% 돌파… 수익성 하락 원인
철근·시멘트 가격 안정으로 공사비 상승세는 잠잠하지만
교량·도로 붕괴 등 대형 사고 발생에 현대ENG·포스코 '진땀'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건설사 유동성 악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원가율(매출액에 대한 원가의 비율)이 오름세를 보이면서 업계 전반에 드리운 보릿고개가 이어지고 있다. 공사비 안정화로 올해부터 숨 고르기가 가능할 것이란 예측이 나오는 가운데, 연이어 발생한 대형 사고 영향으로 일부 업체는 올해 역시 실적 하락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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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상위 10개 건설사 매출 및 원가율 추이. [사진=김아랑 미술기자] |
◆ 대형 건설사, 100억 벌어 97억 공사비로 지출
1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물산을 제외한 상위 9개 건설사의 지난해 연결 기준 원가율은 평균 93.2%로, 전년(92.8%) 대비 소폭 증가했다.
원가율은 매출액 대비 원가가 차지하는 비율로, 높을수록 공사비나 인건비 등 투입한 비용이 많아 건설사가 벌어들이는 수익은 줄어든다는 의미다.
통상 건설업계의 적정 원가율은 80%대로 판단한다. 이보다 높은 경우 사업에 투입할 수익이 모자라 차입금이 증가하고, 부채비율 증가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김영덕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원가율이 높아지면 주택 분양 물량이 줄어드는 등 건설사의 전반적인 영업활동을 위축시키고, 이는 다시 경영 활동을 제약하는 악순환"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원가율이 가장 높았던 회사는 현대엔지니어링(105.4%)으로 100% 선을 넘겼다. 매출액보다 투입된 공사비가 더 많다. 지분 2조6000억원을 가진 인도네시아 발릭파판 프로젝트 관련 공정이 지연되고 투입한 원가도 1조원가량 상승한 영향이다. 오른 원가가 손실에도 반영되며 작년 4분기에만 1조4315억원의 적자를 냈다.
자회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의 실적 악화 영향으로 현대건설 원가율 또한 100.7%를 기록했다. 포스코이앤씨(94.2%)와 롯데건설(93.5%), GS건설(91.3%), 대우건설(91.2%), SK에코플랜트(90.0%), HDC현대산업개발(90.6%) 등도 높은 편이다.
DL이앤씨(89.8%)만 원가율 80%대에 머무르며 대형사 중 가장 선방했다. 장윤석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자회사인 DL건설이 토목 부문에서 돌관공사를 진행하며 추가적인 원가를 반영했음에도 주택·건축 사업부의 도급 금액 증액, 기술 수수료 등 수입 인식이 늘며 원가율 상승 방어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 떨어진 자잿값에 상승 멈춘 공사비… 원가율 낮아지나
올해부터는 공사비 상승세가 잠잠해지며 원가율도 일정 부분 하향 조정될 전망이다. 대한건설협회 조사 결과 2023년 1군(시평 1~100위) 건설사의 공사 원가에서 하도급 비용에 해당하는 외주비를 빼고 가장 비중을 차지하는 요인은 재료비로, 전체의 22.2%를 차지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매달 발표하는 건설공사비지수는 올 2월 기준 131.04로, 기준선인 2020년 1월(100)에 비해 30% 넘게 올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고금리, 고환율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재료비를 좌우했던 철근과 시멘트 가격이 안정세에 접어들면서 치솟던 공사비도 정상 궤도로 돌아오고 있다.
2021년 1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3년 동안 123% 급증했던 건설공사비지수는 올 들어 매달 1% 안팎의 소폭 상승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각각 12%와 43% 오르며 철근과 시멘트 가격도 주택 착공 면적이 줄면서 하락 흐름을 나타냈다. 이은상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공사비 안정과 동시에 비용 부담을 반영한 수주 물량이 매출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또한 공사비 안정화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해 10월 주요 자재의 적정 가격 유지를 위해 자율협의체를 운영하고, 인건비 감축에 도움을 주는 숙련기능인 도입 등의 내용을 담은 '건설공사비 안정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2026년까지 공사비 상승률을 2% 내외까지 낮추겠단 목표다.
올 2월에는 민간 사업이나 민관 합동 공사 비용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도록 하는 공사비 현실화 방안도 내놨다. 이전 대책이 공공공사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비판을 수용했다는 설명이다. 건설업계에서도 공사비 하락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매달 눈에 띄게 오르던 공사비가 지금은 잠잠해진 상황"이라며 "공사비보단 이자 등 금융비용이나 인건비 상승이 더욱 피부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 사고 수습 앞둔 포스코이앤씨·현대엔지니어링… 재무 부담 확대 '불가피'
문제는 올해 대형 사고 발생으로 손실 반영이 불가피한 회사다. 지난 2월 충남 천안시 세종포천고속도로 천안~안성 구간에서 현대엔지니어링이 시공 중이던 청룡천교 현장에서 근로자 10여명이 추락해 4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재 국토부 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에서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전면 재시공 여부에 따라 현대엔지니어링의 부담 비용은 적게는 300억원에서 많게는 2000억원으로 늘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달 11일 경기 광명시에선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인 신안산선 복선전철 5-2공구 지하터널 내부 기둥에 균열이 발생하면서 붕괴 사고가 발생했다. 2명이 매몰됐으나 1명은 추락 후 13시간 만에 구조됐고, 포스코이앤씨 소속 근로자 1명은 여전히 수색 중이다.
사고 발생 시 건설사는 수입에서의 손실과 보상 비용 등을 부담한다. 이 같은 금액은 전면 손실로 분류된다. 사망 사고의 경우 합의금 등이 포함돼 손실 범위가 더 커질 수 있다. GS건설은 2023년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에 따른 전면재시공 비용 5500억원을 전액 손실로 반영, 그해 적자 전환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2021년과 2022년 광주에서 두 건의 사고가 발생해 대규모 손실을 직면했다. 당시 충당금은 3377억원으로, 사고 후속조치에 활용했다. 이후 도시정비 사업에서의 수주 부진도 겹치면서 공사 평가 금액이 대폭 줄어 2023년 시공평가순위에선 10위권 밖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전지훈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사고 이후 영업정지 등이 따라오는 경우 건설사 브랜드 인지도와 시공능력 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대돼 수주, 분양 등을 포함한 주택사업의 영업 변동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chulsoofriend@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