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민원 100여건…민원 응대하다가 하루 끝나"
민원으로 경제적 이익 취하는 '프로 민원인'도 존재
행안부 권고에 담당자 익명으로 바꾸는 부처도 생겨
[세종=뉴스핌] 이유나·신도경 기자 = 세종 청사 공무원들이 악성 민원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중앙부처는 제도와 정책을 만드는 일이 주된 업무가 돼야 하는데, 민원을 처리하느라 일을 제대로 못 할 지경이라고 호소합니다.
현장에서 담당 공무원들은 악의적인 민원으로 울분을 토하고 있습니다.
한 정부 산하기관 관계자는 "인허가가 안 나면 관련 주식 주주들이 오픈채팅방에 담당 공무원 개인번호를 공유해 민원 전화 폭탄을 돌린다"며 "민원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에너지 소모가 너무 크다"고 하소연했습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도 "님비 시설 입지 때문에 민원인들이 담합을 해 민원 100여건을 한날한시에 냈다"며 "관련 담당자가 민원 100건을 하나하나 처리하는 데 고생을 했다"고 토로했습니다.
다른 정부 관계자는 "개발 사업에 있어서 환경영향평가를 허가했는데, 인근 주민들이 환경영향평가가 잘못됐다고 국민신문고와 정보공개청구, 전화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며 "국민신문고는 매일 수십 건씩 들어와 며칠 처리를 안 하면 100건에서 200건 정도 쌓인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이 관계자는 "국민신문고 내용은 '살기 힘들다', '공무원이 무능하다'는 내용인데, 안 읽어보고 처리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이건 건전한 비판이 아니라 비난이라고 생각한다"고 분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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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ChatGPT |
민원을 이용해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한 정부 산하기관 관계자는 "일부 컨설팅 회사는 국민신문고에 질문하고 공무원들이 열심히 공부해 작성한 답변을 그대로 고객에게 전하고 이득을 취한다"며 허탈함을 전했습니다.
또 다른 정부 산하기관 관계자는 "민원을 하도 많이 제기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 집에 찾아가 봤는데 집에 민원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며 "알고 보니 민원을 제기하면 공무원들이 합의하라고 하니까, 그 합의금을 받아내 생계를 유지하는 분이었다"고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황당한 요구를 하며 억지를 부리는 민원도 많았습니다.
한 정부 관계자는 "10년 전에 아버지 묘를 만든 후 신고를 안 해서 불법묘지라고 하는데 어떻게 처분을 해야 하냐 처럼 별별 민원이 다 들어온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집안에 쓰레기를 모아두시는 분이 쓰레기를 팔 수 있도록 나라에서 돈을 달라는 민원이 있었다"며 "원하는 답변을 들을 때까지 부처 담당자 50명에게 모두 전화를 하고, 안 된다고 하면 욕을 하는 분이었다"고 토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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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안전부 정부 세종청사 중앙동 입구=김보영 기자kboyu@newspim.com |
지난해 3월에는 악성민원으로 공무원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해 정부가 나섰습니다. 정부는 민원공무원을 근본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담은 '악성민원 방지 및 민원공무원 보호 강화 대책'을 지난해 5월 국무총리 주재 국정현안관계장관 회의에서 확정해 발표했습니다.
또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행정기관 홈페이지에 공무원 이름 등 개인정보를 공개하지 말라는 권고를 제시했습니다. 이에 일부 부처는 노조와의 협의 끝에 홈페이지에 담당 공무원 이름을 비공개로 변경했습니다.
과도한 민원으로 중앙부처 본연의 업무인 정책과 제도 설계는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이에 손해를 보는 건 정책 수요자인 '국민'입니다.
한 정부 관계자는 "민원을 받다가 하루 종일 아무 일도 못 하는 경우가 많아 퇴근 시간 이후 추가 근무를 할 수밖에 없다"며 "중앙부처에선 제도와 정책을 만드는 게 주된 업무가 돼야 하는데 민원 처리하느라 하루 끝나는 일이 너무 많다"고 고충을 호소했습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 역시 "낮에 민원 대응으로 정책에 대한 고민을 밤에 하게 된다"고 밤낮이 바뀐 업무에 개선을 요구했습니다.
yuna740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