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독일 총선에서 중도우파 기독민주당(CDU)이 승리한 가운데 차기 총리 자리를 예약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민당 대표의 성공적인 총리직 수행이 유럽에 절실하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24일(현지시간) 사설을 통해 주장했다.
지난 23일 실시된 총선에서 기민당은 자매당인 기독사회당(CSU)과 손잡고 도합 28.5%의 득표율을 기록해 4년 만에 원내 1당을 탈환했다. 3위(16.4%)를 기록한 중도좌파 사회민주당(SPD)과의 연정 구성 협상이 타결되면 메르츠 대표는 독일 총리에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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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기독민주당(CDU) 대표. [사진=로이터 뉴스핌] |
FT는 "독일이 생산성을 높이고 성장 모델을 국내 소비 쪽으로 재조정하지 않는다면 유럽의 경제적 전망과 생활 수준은 계속 쇠락할 수 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또 "독일의 영향력이 없다면 유럽은 정복욕에 빠진 러시아에 그대로 노출되고 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군사적 자산을 빠르게 대체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럽 대륙은 메르츠가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말했다.
메르츠의 초기 행보가 고무적이라는 평가도 내놨다.
그는 총선 승리 직후 첫 일성으로 유럽 안보를 미국으로부터 독립시키는 것이 자신의 절대적 우선순위(absolute priority)라고 말했다.
FT는 "메르츠의 단어 선택이 여전히 낡은 미국의 안보 담요에 매달리고 있는 일부 유럽 파트너들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다"면서 "하지만 미래의 독일 지도자로부터 지정학적 현실의 변화와 관련해 그토록 명확한 의견을 듣는 것은 안심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특히 지금까지 대서양 동맹에 대한 확신에 가득찼던 메르츠 같은 인물로부터 나온 입장이기에 훨씬 더 믿을 만하다"고 했다.
전후 기민당과 함께 독일 정치권의 양대 축으로 군림했던 사민당의 급격한 약화와 옛 동독 지역을 기반으로 원내 2당 자리까지 차지한 극우정당 독일을위한대안(AfD)의 급부상 속에서 메르츠와 기민당의 성공과 세력 유지는 점점 더 큰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AfD는 이번 선거에서 20.8%를 득표해 전체 연방의회 630석 중 152석을 차지했다. 득표율은 지난 2021년 총선 때의 두 배가 됐다.
극좌정당인 좌파당(8.8%, 64석)과 힘을 합치면 독일의 좌우 중도세력이 추진하는 개헌을 저지할 수 있다.
메르츠는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0.35%로 제한하는 엄격한 재정준칙을 완화하겠다고 공언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개헌은 연방의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 한다.
메르츠가 사민당과의 연정 구성에 성공하더라도 개헌 의석 확보는 어려운 상황이다.
FT는 "메르츠는 개헌을 위해 다음 의회 소집을 기다리지 않고, 현 의회에서 개헌안을 처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면서 "독일이 불안에서 벗어나려면 이런 종류의 대담한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 매체는 "독일은 (메르츠의 주도 아래) 방위 지출을 지속 가능하게 늘리고, 재무장하고, 인프라를 현대화하고, 에너지 비용을 낮추고, 혁신에 투자하기 위해 매년 수천억 유로를 풀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