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 사다리 복원 위해 국토부는 빌라 정상화 시도, 기재부는 "세금 다 내라"
전문가들 "노후 빌라, 10년 후 결국 정부, 지자체가 사들여야할 것"
[서울=뉴스핌] 이동훈 선임기자 = "저가 비아파트의 세금 혜택이 클 것으로 기대했는데... 역시네요."
지난 16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세법 시행령 개정안에서 '빌라'로 통칭되는 비아파트 저가 주택에 대한 세제 혜택이 빠지자 빌라 소유자들의 실망감이 나오고 있다.
물론 기재부가 서울·수도권 저가 빌라에 대한 세 제 완화를 약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대적인 세제 혜택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주택정책 부처인 국토교통부가 청약시 무주택 자격을 인정한다고 한 만큼 세제면에서도 무주택자에 준하는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세법 시행령 개정안은 빌라에 대한 세제 혜택을 지방의 인구감소 지역에만 적용하고, 그마저 공시가격 4억 이하로만 한정하고 있다. 오히려 지방 미분양 아파트 구입시 더많은 세제 혜택을 주고 있어 서울·수도권 저가 빌라 실소유자들의 불만이 쌓일 것이 예상된다.
18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의 실거래가 7억원 이하 빌라 소유자에 대한 청약시 무주택자 간주 조치 시행 이후 세제 혜택을 기대했던 심리가 꺾이면서 정부가 추진하는 '비아파트시장 정상화' 대책에 차질이 있을 것이란 진단이 나온다.
서울 시내 빌라·다세대 주택 단지.[사진=뉴스핌DB] |
소규모 다세대·다가구·연립·단독주택을 통칭하는 빌라 시장은 2022년 전세사기 대란 이후 침체 일로를 겪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빌라의 '전세 포비아(공포증)'다. 전세사기에 대한 우려가 큰 데다 목돈을 주고받기 힘들어진 만큼 투자 상품으로서 빌라의 가치는 크게 위축된 상태다. 이에 따라 원룸-빌라-아파트로 이어지는 생애주기 주거사다리가 붕괴됐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태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전국 빌라의 월세 거래는 6만6194건으로 1년 전(6만 125건)보다 10.1% 늘었다. 반면 전세 거래는 5만7604건으로 같은 기간(6만6408건) 13.3% 줄었다. 서울의 경우 빌라 전세 포비아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에서 계약된 빌라의 전세 거래량은 1만4697건인 반면 월세 거래량은 2만1315건으로 월세 거래 비중은 59%를 넘어섰다. 이는 지난해 서울지역 연간 빌라 월세거래 비중인 53%를 크게 뛰어넘는 수치다. 전세사기 사태 이전인 지난 2020년 월세 비중이 29.5%였던 것을 감안하면 4년 새 상전벽해(桑田碧海) 수준의 시장 변화가 발생한 셈이다.
공급도 줄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비아파트 인허가 물량은 3만 430가구, 착공은 2만8501가구로 전년인 2023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30.0%, 21.2% 줄어든 물량을 보인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8.8 공급대책에서 비아파트시장 정상화 대책이 담긴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발표했다. 국토부는 공시가격 5억원 이하 빌라소유자는 무주택자로 간주해 아파트 청약에서도 무주택 가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당시 저가 빌라에 대한 세제 혜택 방침도 나왔지만 주로 지방의 인구감소지역으로 한정한 탓에 영향력은 크지 않았다. 다만 주거 사다리 복원을 위해 정부가 비아파트시장에 대한 추가 혜택을 제시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지난 16일 정부가 발표한 세법 시행령 개정에서도 서울·수도권지역 저가 빌라에 대한 세제 지원은 전무한 것으로 나타나자 빌라시장의 정상화는 더 힘들어졌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세법 시행령 개정안에서 인구감소가 벌어지는 지방에서 공시가격 4억원 이하 저가 주택을 매입할 경우 양도소득세·종부세 산정시 주택수에서 제외되록 했다. 하지만 서울·수도권에서는 4억원 이하 빌라를 사서 단기임대주택등록을 해야만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마저도 공시가격 4억원을 초과할 경우 종부세는 과세된다.
이에 따라 저가 빌라 1주택 실수요자들의 반감이 커지고 있다. 이들은 당연히 종부세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양도세나 취득세, 재산세 산정에서 여전히 유주택자로 인정돼 세금을 내야하며 향후 다른 주택을 사게 되면 임대주택 등록을 하거나 2년 내 팔아야 세금을 내지 않을 수 있어서다.
정부의 비아파트시장 정상화 대책에 대한 입장이 개별 부처에 따라 상이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국토부는 주거 사다리 정상화를 위해 저가 비아파트 주택을 가진 소유자들을 무주택자로 간주한다는 입장이지만 기획재정부는 이와 상관없이 엄격한 과세 기준을 제시하고 있어서다.
국토부 관계자는 "저가 빌라 소유자를 무주택자로 간주하겠다는 입장이 확고하다"면서도 "다만 세제 혜택에 대해서 국토부는 입장 자체를 밝힐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저가 빌라 소유자에 대해 청약기회를 확대한 것에 대해서는 기재부 소관이 아닌 만큼 입장이 없다"면서 "다만 저가 빌라 소유자에 대한 세제 혜택 확대는 검토하는 것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의 비아파트 시장 정상화대책이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부동산시장 전문가는 "조정대상지역에 있으면 공시가 3억 이하 빌라 소유자도 자금출처를 밝혀야하는 등 20억 이상 아파트와 다를 바 없는 규제 대상이 된다"면서 "특히나 빌라는 예전부터 팔기 어려웠고 사기를 꺼려하던 부동산임을 감안하면 세제혜택을 주지 않을 경우 빌라 시장의 정상화, 활성화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빌라에 대해서는 가격 기준에 따라 양도세 비과세, 취득세 저감 등 대대적인 세제 혜택이 있어야만 그나마 주거 사다리의 한 축으로 기능하게 될 것"이라며 "공사비 상승으로 재개발도 어려워진 상황에서 노후 빌라는 결국 오래지 않아 서울시나 정부가 사들여야 할 정도로 사회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dong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