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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티션스토리] (상) '만능 재주꾼' 한병도, 정치할 수밖에 없던 비하인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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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윤채영 기자 =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뉴스핌 KYD(Korea Youth Dream) '폴리티션스토리'에 출연해 어린 시절부터 정치에 입문하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한 의원은 지난 3일 오후 유튜브 채널 '뉴스핌TV'를 통해 공개된 폴리티션스토리에서 축구를 잘하는 장난끼 많았던 학창 시절을 언급하며, 구체적으로 정치권에 뛰어들게 된 계기까지 털어놓았다.

한 의원은 올해 4월 치러진 22대 총선에서 전북 익산을로 당선되며 3선 중진 반열에 올랐다.

한 의원은 1967년 전라북도 익산 출생으로 이곳에서 대학교까지 졸업한 '토박이'다. 그는 북일초, 이리동중, 원광고를 나온 뒤 원광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1989~1990년 원광대 총학생회장을 지내면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활동을 하며 본격적인 '학생운동'을 계기로 정치권에 입문하게 됐다. 17대 총선에서 전북 익산 갑으로 처음 당선된 뒤 21대, 22대 총선에서 내리 익산 을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뉴스핌 KYD(Korea Youth Dream) '폴리티션스토리'에 출연한 모습. 2024.12.03 ycy1486@newspim.com

다음은 한 의원과의 폴리티션스토리 인터뷰 전문이다.

-(윤채영 기자. 이하 윤) 한 정치인의 인생 궤적을 돌아보는 폴리티션 스토리 안녕하세요 정치부 윤채영입니다. 먼저 오늘 함께 진행을 맡아주실 최연혁 교수님 인사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인터뷰 주인공이시죠 전북 익산 을의 지역구를 두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3선 국회의원 한병도 의원님 모셨습니다.

▲(한병도 의원. 이하 한) 어서 오십시오. 고맙습니다. 교수님

-(윤) 의원님 이름이 정말 정치하기에 진짜 적합한 이름이라고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정치인은 이름도 특이해야 된다고. 의원님 이름 관련해서도 에피소드 이런 것들이 좀 많았을 것 같아요.

▲(한) 엄청나죠. 히트 쳤죠 이름. 처음 17대 때 2004년입니다. 출마를 했을 때 그때는 무명이었습니다. 갑자기 정치에 도전을 하니까 그런데 시골 가면 어르신들한테 안녕하세요 한병도입니다. 한병도입니다 하면 또 금방 며칠 지나면 잊어버리시잖아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머리를 쓴 게 아 제가 술을 한 병도 못 마셔서 이름이 한병도입니다. 그런데 제가 술을 진짜로 못 마셔요. 실제로 이게 맞아떨어지는 거예요.

-(윤) 의원님의 가족 관계를 제가 좀 검색해봤는데 잘 안 나와 있더라고요. 가족 관계가 지금 현재 꾸리신 가정 말고 원래 부모와의 그런 가족 관계는 좀 어떻게 될까요?

▲(한) 이제 두 분 다 돌아가셨고요. 어머님은 최근에 이제 아버님은 중학교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래서 평생을 교직에 계셨고 나중에 이제 교장 선생님으로 퇴임을 하셨고 저희 이제 어머님이 사실은 고생을 굉장히 많이 하셨어요. 그 아버님이 선생님 생활을 했지만 그 원불교 성직자이셔서 월급을 다 가져오지 못합니다. 어 그러니까 어머님이 그 생계를 또 막 꾸렸거든요. 그래서 저 어렸을 때 막 하숙도 하시고 막 농사일도 하시고 옷 가게도 하시고 아버님이 선생님이신데도 그 생계를 꾸리는 데 굉장히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어머님께서 그리고 아주 평범한 대한민국의 어머님 아버님처럼 저희 부모님도 그랬죠.

-(윤) 지금 가족은 어떻게 되세요?

▲(한) 지금은 이제 아들 둘 와이프 그런데 와이프는 지금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요. 큰아이는 이제 대학교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졸업했는데 취업 준비생인데 요즘 취업하기가 너무 어려운가 봐요.
맞아요. 그래서 지금 계속 이력서를 넣고 있는 중이라고 들었고요. 그리고 둘째 막내 둘째 큰애하고 4살 차이 예 그렇습니다.

-(윤) 의원님은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서 쭉 사신 거죠?

▲(한) 완전 촌 사람이죠. 대표적인 촌 사람이죠. 가끔 제가 TV 토론 같은 데 나가면 평상시에는 별로 못 느끼겠는데 좀 흥분을 하거나 말이 빨라지면 여지없이 그 전라북도 사투리가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저는 그 동네에서 태어났고 초중고 대학교 전부 그 지역에서 나왔고 지금도 거기 살고 있고 정치 생활을 끝나더라도 다른 데 뭐 이동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저는 거기에서 살 생각이고요. 근데 서울에 있다가 내려가서 국회의원을 많이 하고 그러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왜냐하면 직장생활도 저 처음에는 대학에 근무했어요. 그 지역에 원광대학교 원광보건대학교가 있는데 대학에 직원으로 들어가서 좀 잠깐 한 1년 몇 개월 근무했어요. 근무하다가 이제 유혹 제가 대학생활을 학생회 학생운동하다 보니까 주변에 이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제한들이 굉장히 많이 했고 모임도 하다 보니까 대학 근무하다가 이제 확 변화되는 계기가 있었는데 아무튼 그냥 직장 생활까지 그 대학에서 했으니까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어.

-(윤) 그리고 의원님께서는 좀 어릴 때는 학창시절에 어떤 아이였어요?

▲(한) 어땠을 것 같아요.

-(윤) 축구 좋아하고

▲(한) 예 맞아요.

-(윤) 장난기 많았던 아이였을 것 같아요

▲(한) 맞아요. 저는 뭐 공부를 잘하고 그러지 못했어요. 스포츠 같은 걸 아주 좋아했고요. 아버님이 제가 아주 초등학교 때부터 이 운동만 시키셨어요. 그래서 제 기억은 어렸을 때부터 막 태권도 도장 합기도도장 아버님 저뿐만이 아니고 다른 형제들도 운동을 시켰지 공부를 시키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뭐 운동은 다 한 것 같아요. 중고등학교 때는 뭐 철봉 평행봉 이런 거 좋아하고 중고등학교 때도 계속 연극하고 중고등학교 때 그래서 대학도 연극영화학과 가려고 했거든요. 중학교 고등학교 계속 연극을 했으니까 어릴 때부터 그러니까 막 아주 운동 좋아하고 그런 연극 같은 거 하기 좋아하고 아주 활동적이었고요. 그리고 안 믿으시겠지만 고등학교 때는 춤도 아주 좋아하고 잘 추고 그런 아주 활발한 학생이었어요. 그리고 또 상대적으로 공부를 잘하고 그런 학생은 아니었고요. 그런데 이제 대학교 가서 제 인생이 그냥 완전 180도 달라진

-(최연혁 교수. 이하 최) 그러고 보니깐 이을용 선수하고 이천수 선수 이렇게 그런 모습들이 보이네요. 축구 선수 하셨으면 참 잘하셨을 것 같습니다.

▲(한) 지금도 축구를 너무 좋아해요. 잘하지는 못하는데 아무튼 너무 뛰어다니는 걸 좋아하고요.
지금도 그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운동을 계속 좋아하니까 그래서 살도 안 찌고 그런 요인이 있는 것 같아요.

-(윤) 그러면 어렸을 때 그 예체능 쪽에 끼가 많으셨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꿈도 약간 축구 선수라든지 이런 쪽으로 장래 희망을 갖고 계셨던 거예요?

▲(한) 아버님이 운동을 저보고 아주 잘한다고 그런 것도 한번 생각해 보라는 말씀을 아버님은 하셨었어요. 그런데 이제 중고등학교 때 연극을 해가지고 초창기에는 연극영화과를 가고 싶었어요.근데 이제 지방에는 연극영화과가 없으니까 그럼 서울로 왔어야 되잖아요. 근데 이제 서울로 오면 저희 그때 아버님이 학생운동을 할까 봐 걱정을 굉장히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이 반경 안에 있어야 되는데 더 벗어나면, 그때 저희 그 시절에 6월 항쟁 있고 그랬던 학생운동이 가장 열렬히 일어났던 그런 시기였거든요. 민주화운동이 그러니까 이제 좀 불안하셨는 좀 하셨어요. 신문방송학과를 갔는데 그것도 신문방송학과는 좀 저하고 좀 맞는다고 생각을 했어요. 아 그리고 기자 같은 거 하면 내가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는데 전혀 전공하고는 관련 없이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수배당하고 막 도망다니고 그런 생각을 많이 해서 전공하고는 뭐 관련이 없는 대학생활을 보낸 것 같아요.

-(윤) 그 당시만 해도 그래도 기자라는 꿈 그런 것도 좀 갖고 계셔서 그 학과를 지원하셨던 거네요

▲(한) 처음에는 연극영화과를 생각을 했고 그다음에 신문방송학과를 생각을 했는데 두 번째는 신문방송학과를 간 거죠. 그리고 그때는 기자가 정말 내가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좀 성격이 활달해서 그런 생각을 그냥 젊었을 때 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윤) 근데 대학 가시고 나서 6월 항쟁 때 부모님이 한 활동으로 인해서 또 투옥까지 하신 거잖아요.

▲(한) 저는 막 운동하고 활동을 많이 했기 때문에 학생 운동이나 이런 거는 굉장히 거리가 멀었고 저희 아버님께서도 제가 오죽하면 대학교 가면 학생운동하고 서울 가서 그러면 그게 걱정이 돼서 주변에 두고 싶어 하는 그런 게 있었었잖아요. 그만큼 이제 고생도 많이 하고 좀 어려운 시기였죠. 저도 그 아버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처음에 대학교 갔을 때는요. 정말 최루탄 냄새나면 대학생들 엄청 놀랬어요. 그리고 제 기억에 단과대학 이렇게 올라가면 그 로비에 광주항쟁 관련된 비디오를 틀어줬는데 저는 그걸 막 욕했습니다. 저게 저거 사실도 아니고 저거 조작해서 괜히 이렇게 학생들 데모하게 만들려고 운동권들이 한 거다라는 생각을 해서 그것도 굉장히 뭐라고 했어요 반대했고 그때 1학년 초기에 그랬는데 가을쯤 돼서는 이제 그거에 대한 의심을 품은 거죠. 정말 대통령이 권력을 잡기 위해서 우리 국민을 총으로 쏴죽인게 이게 가능한 일인가 이게 정말 저게 조작되지 않았다면 저게 사실인가 그런 의문을 가졌던 거 1학년 가을 그 학기쯤 그래서 막 주변 이야기를 듣고 그걸 보면서 아 이게 사실이라는 걸 알고 학생 생활이 바뀌어진 거죠. 1학년은 아마 겨울 때부터 경찰들도 저 잡는다고 해서 이제 학생운동에 뛰어드니까 1학년 때부터 도망다녔던 것 같아요.

-(윤) 그 당시에 어떤 단체 가입이라든지 그런 활동이 (있었나요?)

▲(한) 풍물패, 대학에 이런 서클 같은 거 있었는데 거기에 활동을 했고 제가 연극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학생관 앞에서 각설이 그 시사 풍자하는 각설이를 했는데 지금도 사진을 보면 제가 그 각설이복을 입고 공연을 하고 있고 계단에 학생들이 정말 꽉 찼었어요. 그 앞에서 제가 각설이 공연을 했는데 현 정부를 비판하는 거죠. 각설이 공연을 통해서 그거 하고 아마 경찰이 잡으려고 했던 것 같고 그래서 학생운동 시작을 하고 이제 4학년 때 학생회장 하고 그때 학생회장 하면서 이제 투옥이 됐습니다. 학생회장 4학년 때.

-(윤) 학생회장 하다가 어떤 계기로 (투옥이 됐나요?)

▲(한) 그때는 이제 그 집회를 전부 학생회장 앞에서 주도를 하니까 대부분 다 경찰에서 수배를 하죠. 수배를 하는데 그때는 이제 대학 간의 연합 연대 집회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이제 전북대학교가 집회가 있어서 갔는데 그때는 이제 학생회장을 잡으려고 하니까 막 위장하고 몰래몰래 다니고 저를 못 잡아가게 하려고 학생 몇 명이 주변을 따라다니고 막 그랬거든요. 익산을 빠져나와서 전주로 가려고 하는데 그걸로 다 추적을 한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버스가 딱 갔는데 그 검문소에서 딱 서더니 밖에를 이렇게 보니까 경찰 정경들이 차를 다 둘러싼 거예요. 그래서 야 내려다 이거 어떡하지 뛰어내리지도 못하고 앞에서 이제 경찰들이 올라오니까 두세 명이 저항을 했는데 아무 의미가 없죠. 바로 제압당하고 그냥 덜덜덜 끌려가서 그래서 바로 바로 그냥 구속됐습니다.

-(윤) 그렇게 했을 때 너무 힘드셨을 것 같은데.

▲(한) 그때는 힘든 줄 몰랐어요. 그때는 왜 그러냐면 확실한 신념이 있어서 이게 하는 게 옳다라는 사람의 사고가 어떤 믿음 신념이 있으면 경찰에 잡히고 그런 것에 대한 공포 그런 게 덜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뭐 경찰이든 검찰이든 재판을 받는 과정에 내 생각을 똑바로 다 이야기하고 내가 왜 이 행위를 했는지 그걸 확실히 이야기하고 그래서 검찰이나 뭐 여기 가서도 오히려 막 소리지르고 막 그때는 그랬어요.

-(최) 학생운동에 몸담고 나서 부모님은 어떠셨습니까?
좀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한) 너무 제일 힘드셨죠.

-(최) 특히 아버님께서는 또 공직에 계셨고

▲(한) 예. 아버님은 교수 계셨고 원강 중학교 교장 선생님이셨거든요. 이게 우리 대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하나의 재단이에요. 근데 그 재단에 제가 학교를 다니는데 아버님 입장에서 이건 내 학교인데 우리 재단인데 정치하는 문제가 아니고 그때 제가 4학년 때 제 기억으로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전국에서 등록금을 반환하라는 학생 시위가 처음으로 일어난 전국 대학에서 다 일어났어요. 근데 너무 우리 학교에서 심하게 하고 대한민국 최초로 등록금을 학교에서 반환하는 받았어요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그게 대학 첫 번째 사례였거든요.
그래서 그때 당시 언론에서 많이 나왔었어요. 그러니까 아버님께서는 더 힘드신 거예요. 너 왜 우리 학교에 와서 그러냐? 그냥 정치투쟁에서도 접혀 가든지 그렇지 학교 문제로 이렇게 하는 건 하지 마라라고 하고 아버님이 굉장히 힘들어하시는 고모님도 원불교 성직자 종교 성직자이셨는데 집회하면 막 뒤에서 저 이렇게 쳐다보고 계시고 막 잡으러 오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윤) 그렇게 하시다가 이제 나오셔서 대학교에서 교직원, 직원으로 이제 근무를 하시다가 그러다가 어떻게 또 정치권으로 연결이 (되었나요?)

▲(한) 그 대학교 군대 갔다 와서도 그렇고 저희들은 모임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니까 저때 임종석 정무수석할 때 비서실장이 했던 임종석 당시 한양대 학생회장인데 거기가 이제 3기 모임을 했는데 전대요 우리 학생회 모임을 계속했어요. 그래서 전국 학생회장 출신들이 모임을 계속 함께 해서

-(최) 그게 광홍창 모임인가요?

▲(한) 아니요. 전혀 다르죠. 그건 대학 졸업하고 그때 이제 저희 학생운동 갈등이었던 게 임종석 우상호 이인영 이에 같이 친했던 형들 모임을 계속 함께 했었거든요. 특히 이제 임종석 실장하고는 그 뒤에 모임을 계속 하기 때문에 대학교에서 직원을 하고 있으면서도 어떤 모이면 저희들은 항상 주로 정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죠. 현 시국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런 와중에 이제 선후배들이 너는 익산에서는 자기들이 봤을 때는 기반도 탄탄하고 한번 시도해보면 가능성이 있지 않냐는 제안을 여러 명이 했었었습니다. 그런데 초기에는 좀 제가 스스로 너무 벅차다고 생각을 했는데 대학 근무 한 1년 6개월 정도 있다가 학교 사표 내고 정치를 하겠다고 결단을 한 거예요. 그 주변에서 좀 많이 말렸습니다. 그 지역에서는 그 대학에 다니는 게 제일 좋은 직장이거든요.

-(윤) 힘든 일을 하려고 하니까

▲(한) 그냥 직장생활 꾸준히 하면 혜택도 좋고 좋은 직장이니까 다니라고 했는데 그걸 사표를 내고 일선에 뛰어들었죠. 그래서 포럼도 만들고 경선에 바로 참여하고 경선에 참여하면서 첫 번에 바로 이

-(윤) 그러면 임종석 전 실장님이 계셨던 그 모임에서 이제 의원님한테 정치권에 들어오는 게 좋겠다라고 (권유를 했던 거고)

▲(한) 네 많이 했죠. 그 모임들

-(윤) 그렇죠 그 모임에서 그 시작이 그럼 임종석 전 실장님하고는 전대협 3기 때 활동 같이 했던 게 인연이 됐던 거죠.

▲(한) 대학 때부터 친구

-(윤) 그때 의원님은 뭘 맡으셨던 거예요?

▲(한) 저는 이제 제 원광대학교 학생회장, 전북의 어떤 통일 운동하는 회장 그래서 함께 했었죠. 임종석 실장하고 같이

-(윤) 그렇게 해서 정치에 뛰어들게 되셨군요. 네.

<하편에서 계속>

ycy1486@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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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 "'AI 반감' 급속도로 확산" [서울=뉴스핌] 오상용 기자 = 인공지능(AI)의 성지인 미국 안에서 대중들의 AI 반감이 확산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현지시간 18일 보도했다. 고용 불안과 전기료 상승에 대한 불만, 자녀 교육에 미칠 부정적 영향 등이 한데 버무려지면서 AI 산업의 고속 성장세가 무색할 만큼 AI에 반감을 드러내는 저항군들의 기세가 급속도로 자라나고 있다고 신문은 짚었다.  ◆ 미국 대중들의 AI 반감...중간선거 이슈로 부상 구글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에릭 슈미트는 최근 AI에 대한 청년들의 반감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애리조나대 졸업식 연설자로 나선 슈미트가 연설을 이어가던 중 AI가 가져올 장밋빛 미래를 설파하는 대목이 나오자 학생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AI가 인간 삶을 더 나은 쪽으로 이끌 것이라는 빅테크 업계의 주장 혹은 낙관과는 판이한 민심이다.  지난달에는 텍사스의 20세 남성이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의 자택에 화염병을 투척한 사건도 있었다. 그는 오픈AI의 샌프란시스코 본사에서도 위협 행위를 벌인 혐의로 고소된 상태다. 인디애나폴리스의 시의원인 론 깁슨의 경우 데이터센터 건립안 승인 후 자택 현관문에 13발의 총구멍이 나는 것을 경험했다. 현관 매트 아래에는 "데이터센터 반대(NO DATA CENTERS)"라는 메모가 나왔고, 이틀 뒤에도 'F'자로 시작하는 욕설이 적힌 쪽지가 발견됐다. AI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은 통계 수치로도 확인된다. 스탠퍼드대와 UC버클리가 진행한 최근 여론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층 가운데 '미국이 AI 혁신을 가능한 한 더 빠르게 가속화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30%에 그쳤다. 공화당 지지층에서도 대략 절반만 호응했다. 데이터센터가 들어섰거나 들어설 예정인 동네의 민심은 더 흉흉하다. AI발 전력 수요 증가로 전기요금이 오르자 '이런 민폐도 없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미주리주 페스터스에서는 시의회가 60억 달러 규모의 데이터센터 건립을 승인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유권자들이 시의원 4명을 전원 축출했다. 메인주에서 애리조나에 이르는 여러 주의 지자체에서 신규 데이터센터 설립을 금지하는 조례안 제정이 진행되고 있다. 에릭 슈미트 전(前) 알파벳 회장 <출처=블룸버그> ◆ 일자리 불안·교육 불신이 만든 피로감 AI 확산에 따른 고용 불안은 언론 지상을 통해 시시각각 유권자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여러 기업들에서 감원 소식이 잇따르자 AI 자동화가 결국 사회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대량 실업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노동자들 사이에서 늘고 있다. 학부모와 교육계에서는 AI가 교육의 질을 훼손하고, 학생들의 학습 태도와 정신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걱정이다. AI를 이용해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학생들의 일상이 되면서 'AI는 점점 똑똑해지는데 아이들은 갈수록 바보가 되어 간다'고 학부모들과 교육 종사자들은 한탄한다. 생성형 AI가 만들어낸 유해 콘텐츠(성적이고 폭력적인 콘텐츠) 때문에 내 아이가 오염될까 걱정하는 부모들도 늘고 있다. 이런 불안이 누적되면서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AI가 삶을 편리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자녀 세대의 미래까지 맡길 수 있는 기술인지는 의문"이라는 회의론이 퍼지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대중의 불만이 쌓이면 정치를 움직이고 규제를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마가(MAGA) 진영 내 트럼프 행정부에 영향을 미치는 실리콘밸리 출신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은 게 현실이다. 가을 중간선거가 다가올수록 전통 마가 지지층인 백인 블루칼러와 뒤늦게 마가와 결탁한 실리콘밸리의 규제 해방론자들 사이에 반목 또한 커질 수 있다. 메타플랫폼스 AI 로고 [사진=로이터 뉴스핌] ◆ 우리 집 뒷마당에는 No...빅테크 여론전 나서 대형 AI 기업과 인프라 사업자들의 경우 막대한 자금을 마련해 데이터센터 증설에 나섰지만 지역사회 반발이라는 벽 앞에 가로막힐 때가 적지 않다.  해당 동향을 추적하는 '데이터센터 워치'에 따르면 지난해 지역사회의 반대로 차단됐거나 지연된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는 최소 48건, 사업비 규모로는 총 1560억 달러에 달했다. 올해 1분기에만 지역 사회의 반발로 취소된 프로젝트는 20건에 달해 분기 기준 가장 많았다. AI 인프라 컨설팅업체 세미애널리시스의 딜런 파텔 CEO는 "몇 달 안에 오픈AI와 앤스로픽을 겨냥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질 것"이라며 "사람들은 AI를 싫어한다. AI의 인기는 이민세관단속국(ICE)이나 정치인보다도 낮다"고 꼬집었다. 민심이 나빠지자 AI 빅테크들은 여론전과 정치권 로비에 수억 달러의 자금을 들이고 있다. 전력 사용료를 더 내겠다는 약속과 함께 데이터센터는 많은 일자리와 풍요를 가져올 것이라는 홍보전도 병행 중이다. 오픈AI의 글로벌 대외 담당 책임자인 크리스 리헤인은 "AI를 두려움의 관점에서 쉼없이 이야기하면 당연히 두려움을 증폭시키게 된다"며 "에너지 비용과 아동 보호 등 구체적 문제 해결에 집중해 왜 이 기술이 국가와 세계에 이로운지 더 정교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AI 이미지 = 배상희 기자] osy75@newspim.com 2026-05-19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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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평균 월급 1200만원 [서울=뉴스핌] 김아영 기자 = 삼성전자 임직원의 올해 1분기 평균 보수가 전년 동기 대비 25% 이상 급증하며 분기 기준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추산됐다. 실적 회복에 따른 영업이익 개선 효과가 반영되면서 임직원들의 급여 수준도 함께 높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19일 기업분석전문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삼성전자 임직원(등기 임원 제외)의 1인당 평균 보수는 약 3600만 원 내외로 추정된다. 이를 월평균으로 환산하면 매달 1200만 원 안팎의 급여를 받은 셈이다. 이 같은 급여 수준은 동일한 방식으로 추산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707만~3046만 원과 비교해 25% 넘게 뛴 수치다. 지난 2023년 대비 2024년의 증가율이 11.6%였던 점과 비교하면 상승 폭이 2배 이상 높았다. [자료=한국CXO연구소] 이번 분석은 공시 제도 변경에 따른 급여 공백을 추산하는 과정에서 도출됐다. 금융감독원 기업공시서식 규칙 개정으로 지난 2021년까지는 분기별 임직원 보수 현황 공시가 의무였지만, 2022년부터 반기와 사업보고서 등 연 2회만 공개하도록 제도가 바뀌면서 1분기와 3분기 급여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에 연구소는 과거 1분기 보고서상 성격별 비용상 급여와 임직원 급여 총액 간의 비율이 76%~85.5% 수준으로 일정한 흐름을 보였다는 점에 주목해 수치를 산출했다. 올해 1분기 삼성전자의 별도 재무제표 주석상 성격별 비용-급여 규모는 5조6032억 원으로 파악됐다. 작년 1분기 4조4547억 원에서 1년 새 1조1400억 원 이상(25.8%) 늘어난 규모로, 삼성전자가 1분기 성격별 비용에 해당하는 급여액이 5조 원을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체 급여 규모 자체는 크게 증가했지만, 매출에서 차지하는 인건비 비율은 오히려 더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세부 산출 과정에선 올 1분기 성격별 비용상 급여(5조6032억 원)에 과거 급여 총액 비율의 하한선인 76%를 적용하면 급여 총액은 4조2584억 원, 상한선인 85.5%를 대입하면 4조7907억 원으로 계산된다. 여기에 올 1~3월 국민연금 가입 기준 삼성전자의 평균 직원 수인 12만5580명을 대입하면 임직원 1인당 보수는 3391만~3815만 원(월 1130만~1270만 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연구소는 두 비율의 중간 격인 81%를 적용해 평균 보수를 3600만 원 내외로 최종 추산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삼성전자는 월급보다 성과급 영향력이 큰 회사이기 때문에 올해 1분기 평균 급여도 이미 지난해보다 25% 이상 늘어 성과급 제외 기준으로도 1억4000만 원을 웃돌 가능성이 크다"며 "성과급까지 반영되면 연간 보수는 앞자리가 달라질 정도로 한 단계 더 뛸 것"이라고 했다. 이어 오 소장은 "2022년 이후 분기 보고서 의무 공시 항목이 축소됐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업은 경영 투명성 차원에서 직원 수와 급여 현황 등을 자율 공개하고 있다"며 "투자자와 주주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관련 의무 공시를 다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aykim@newspim.com 2026-05-19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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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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