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연인 살해 혐의로 징역 30년…협박 혐의는 무죄
성적 촬영물 존재하지 않았다면 협박에 해당되지 않아
[서울=뉴스핌] 김현구 기자 = 헤어진 전 연인에게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다 살해한 남성이 징역 30년의 중형을 선고받았으나 성적 촬영물을 이용해 협박한 행위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성적 촬영물이 있음을 전제로 협박하더라도 성적 촬영물을 소지했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는다면 범죄 사실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살인,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성폭력처벌법) 위반(촬영물등이용협박) 등 혐의로 기소된 김모 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고 19일 밝혔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김씨는 2022년 10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피해자 A씨와 교제하다 헤어진 이후 지속적으로 A씨에게 연락했고, A씨가 이를 피하면 그의 친구, 가족 등에게 본인과의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며 협박했다.
이후 김씨는 같은 해 5월 A씨와 마지막으로 만나 본인이 투숙하던 모텔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던 중 말다툼을 하며 몸싸움을 하게 됐고, 이 과정에서 침대 위에 있던 A씨를 목 졸라 살해했다.
1심은 김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씨는 사건이 있기 이틀 전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에서 청테이프를 구입했고, 청테이프에 A씨의 립스틱 자국이 확인됐다"며 "범행 이전 김씨가 보인 비정상적인 집착과 행동 등에 비춰볼 때, A씨를 살해하려 계획하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관계 회복 여부에 따라 죽일 수 있다는 계획하에 범행을 미리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또 김씨는 통상적인 협박과 달리 성적 촬영물이 존재하고 이를 유포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며 "성적 촬영물의 유포 가능성, 실제 피해자 몰래 피고인이 촬영한 성적 촬영물이 존재한다고 의심한 피해자가 겪었을 정신적 고통 등에 비춰 보면 이는 촬영물 이용 협박에 준할 정도로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김씨의 협박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수사기관에서 A씨의 진술, 수사기관의 포렌식 결과 등을 볼 때 과거 김씨가 성적 촬영물을 소지했는지 여부에 대한 증명이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3 제1항에서 규정한 '촬영물 등을 이용한 협박'은 상대방에게 실제 생성된 촬영물 등의 유포 가능성 등을 해악의 내용으로 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며 "해당 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촬영물 등이 실제로 생성된 사실은 있어야 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즉 과거 성적 촬영물을 가지고 있었다면 협박 당시 촬영물을 소지하거나 유포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성적 촬영물 이용 협박에 해당하지만, 애초 그러한 성적 촬영물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성적 촬영물을 이용한 협박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재판부는 과거 수사기관에서 A씨가 김씨의 휴대전화로 성관계 영상을 촬영한 사실이 없고 본인 휴대전화로 촬영한 영상을 김씨에게 전송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한 점, 포렌식 결과 김씨가 A씨에게 야한 사진, 동영상 등을 언급하는 것 외에 실제 촬영물을 전송한 사실은 없는 점 등을 고려해 이 부분에 대해선 무죄로 판단했다.
2심도 1심 판단을 유지했으며, 대법원도 하급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hyun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