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핌] 조승진 기자 = 처음 또래의 죽음을 경험한 것은 15살 때였다. 학교에 간 어느 날, 우리 학교 선배가 전날 밤 옥상에서 뛰어내렸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 선배는 내 친구의 언니이기도 했다. 부모 없이 할머니와 산다고도 했었다. 10대 청소년은 누구나 친구가 가족보다 더 중요해지는 시기를 거친다. 자연스러운 성장 발달 단계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기댈 어른이 분명치 않은 아이들에게 또래집단은 유독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닐 가능성이 높다. 그 선배는 함께 어울리던 무리에게 모함을 당한 날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어쩌면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지는 모든 이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말이겠지만, 누군가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내 친구는 그날 이후 한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사회부 조승진 기자 |
십수 년 전의 그날이 떠오른 것은 지난해 10대 자살률이 1983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높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지난해에만 10대 청소년 370명이 목숨을 끊었다. 하루에 적어도 1명 이상의 아이가 자살한다는 얘기다. 이 수치는 그 이전해와 비교했을 때 10.4%나 더 높다. 사실 10대 자살률은 2018년 이후 6년 연속 상승하고 있다. 매해 더 많은 아이가 목숨을 끊고 있다는 소리다. 이 중 초등학생만 떼어 놓고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최근 8년간에만 초등 자살률이 5배가량 늘었기 때문이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 10명 중 1명이 10대라는 통계도 있는데, 이제는 목숨을 끊는 이들도, 끊으려는 이들도 점점 어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과열된 입시경쟁, 성적에 대한 심리적 압박, 친구들과의 관계 등에 따라 아이들이 점점 더 자살을 택한다고 짚었다. 하지만 이 중 어느 한 요인만 떼놓고 아이들이 죽었다고 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입시경쟁에 뛰어든 아이들은 성적에 대한 압박을 느낄 거고, 압박 속에서는 교우관계를 쌓기 위해 마음을 쓰기 힘들 테다. 관계를 맺는데 필수인 상대방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에 벌써 팍팍함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7세 고시', '초등 의대반', '학원 라이딩 육아' 등 아주 어린 아이들의 사교육을 지칭하는 신조어들도 등장하고 있는데, 몇 개의 단어만 봐도 아이들의 삶이 여유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점점 빨라지는 자살 연령이 이와 관계없다고 할 수 있을까?
나종호 예일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자신의 SNS에 "마음이 너무 아프다. (청소년 자살) 통계가 발표된 지 시간이 지났는데 영향력 있는 어떤 정치인도, 교육자도, 정책 입안자도 말 한마디 없다"며 참담한 심정을 적었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한 언론 기고에서 교육부는 디지털 교과서 예산을 몰방하고, 복지부는 진료할 의사를 없애고, 여가부는 폐지가 예고된 부서로 간신히 (청소년 정신건강 정책의) 명맥만 유지한다고 지적했다. 모두 대책 미비를 비판하는 말이다. 그들의 말처럼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는 걸 아쉬워하기보다 태어난 아이들부터 지킬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지금이 아이들을 위한 개혁의 골든타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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