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눈으로 관찰하고 그려낸 '노는 언니'들의 분방함
붉고 푸른 화폭 속 여성들... 거침없고 유쾌하고 자유롭다
17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인사동 마루아트센터에서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여성잡지 편집장이자 언론학 박사였고, 대통령부터 인기스타까지 사회 저명인사를 두루 만났던 탁월한 인터뷰어였다. 잡지사 대표를 마지막으로 퇴직한 뒤 우연히 들른 홍익대 앞 화실에서 누드크로키 장면은 보고 홀린 듯이 그림에 빠져들었다. 중학교 때 꺾었던 붓을 다시 들었다. 남의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를 설득하고,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던 그는 그날부터 그림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 질문은 집요하면서도 끈질겼다. 오랜 제련 끝에 작가 홍차로 변신했다.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홍차 'Don't kill my vibes'. [사진 = 홍차 작가 제공] 2024.04.16 oks34@newspim.com |
17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인사동 마루아트센터에서 열리는 홍차(본명 최옥선) 개인전은 집요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아트 말고 놀이, I am my own muse'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그림들은 '놀이'가 만들어낸 최상의 '아트'를 보여준다. 붉고 푸른 색감 속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여인들이 뛰어오르고, 춤추고, 노래한다. 인생의 대부분을 기자라는 '본캐'로 살아왔던 홍차 작가가 '부캐'로 그린 그림이 과연 맞나 싶다.
홍차는 그림을 통해 사람, 그 중에서도 자신이 속해 있는 여성을 해부한다. 작가는 아줌마들과 함께 세계 각국의 오지여행을 하면서 새삼 '아줌마의 힘'을 느꼈다. 그래서 작가의 말을 통해 이렇게 적고 있다.
'여성이라는 인류는 무엇보다 이야기가 풍부하고 무한한 심연을 가진 흥미로운 집단이다.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원심력 속에 들어서는 것이다. 남편, 아이들, 친인척, 친구, 이웃, 사회적 역할까지 잡아당기는 모든 것에서 어느 한순간도 어느 한 방향에서도 눈을 뗄 수 없다. 그 극한의 긴장 속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사는 그들의 묘기에 리스펙트!'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홍차 '하쿠나 마타타'. [사진 = 홍차 작가 제공] 2024.04.16 oks34@newspim.com |
공연장, 전시장, 도서실, 여행지, 놀이와 재미가 있는 곳은 여성들이 지배한다. 작가는 그 언니들과 같이 놀아보기로 했다.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를 쓴 하위징아는 "명령에 의한 놀이는 더 이상 놀이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작가는 혼자 노는 경지를 체득하고, 여성이라는 이름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노는 언니'를 만났다
작가의 작품 속 '노는 언니'들은 반란하고 도발한다. 거침없고 유쾌하고 자유롭다. 엉뚱하고 비현실적이기도 하다. 그들은 프로이드의 유머, 니체의 명랑성을 가진 이들이다. 그것이 자신을 복원하고 자신을 위무하는 방식이다. 성숙한 방어기제로서의 유머, 모든 것의 무토대성에 대한 알아차림,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로움에서 오는 해학적 명랑성. 그것은 홍차의 그림 속에서 해체된 조형, 선의 율동감, 부조화된 색을 얹은 레터링 등으로 표현된다. 그림을 보다보면 천경자도 보이고, 최욱경도 보인다. 그러나 그들과 다른 홍차 만의 개성이 뚜렷하다.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홍차 '나 좀 노는 언니'. [사진 = 홍차 작가 제공] 2024.04.16 oks34@newspim.com |
작가에게 그림 그리기는 이 세상과 어긋나 또 다른 세계와 접속하는 일이다. 그 세계는 작가의 구석진 장소다. 파스칼 키냐르가 '독서는 이 세계를 떠나 또 다른 세계와 부단히 만나는 일'이라며 '사랑하다'와 '독서하다' 그리고 '음악하다'를 동일어로 본다고 했다. 작가는 그 말에 '그림 그리다'를 더 얹었다.
oks3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