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주민들 쉼터 돼
1인 출판사 병행하다 무인서점 마련
지역과도 연 닿아 도서관과도 협업
"손님 한분한분 귀하게 생각할 것"
[서울=뉴스핌] 방보경 기자 = 영등포 청과시장에는 하루종일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소가 있다. 24시간 내내 운영하는 무인서점 '새고서림'이다.
옆 가게 비닐에 묻혀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손님은 꾸준히 방문한다. 서점은 영등포구청역과 영등포시장역, 문래역 한가운데 자리 잡아 주민들에게 안식처로 통한다. 실제로 새벽 기차를 기다리다가 새고서림에서 쉬고 가는 방문객도 있다고 했다.
지난달 뉴스핌이 방문한 새고서림 곳곳에는 이런저런 설명이 쓰여 있었다. 손님이 헤매지 않도록 붙인 설명이었다. 왜 이 책을 추천하는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등 내용이 담겨 있다.
[서울=뉴스핌] 방보경 기자 = 영등포 청과시장에 위치한 새고서림 전경 2024.04.11 hello@newspim.com |
최수민 사장은 처음부터 무인서점을 꾸릴 생각은 없었다고 술회했다. 첫 시작은 편의를 위해서였다. 1인 출판사를 운영하다 보니 서점을 비우는 날이 많았기 때문이다. 최수민 사장은 "일일 책방지기를 구하자니 어렵고 아르바이트생을 뽑자니 적자였다"며 "고민 끝에 무인 결제 방법을 적어놓고 자리를 비웠다. (손님들이) 규칙을 잘 지켜서 괜찮겠다 싶었다"고 했다.
요새 유행하는 무인점포는 절도로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새고서림에는 아직 그런 문제가 없다. 최수민 사장은 "굳이 계단을 올라와서 가져가시겠나 싶다"며 "물건이 한두번 없어지는 건 내 착오라고 생각하는 게 낫다"고 답했다.
그보다도 고민되는 건 공간을 어떻게 꾸려갈지다. 그는 '문 하나만 열면 다른 우주가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새고서림을 꾸리기 시작했다. 기타나 잡지, 라디오 등 그간 소중하게 모은 잡화들을 서점 한켠에 전시해놨다.
책 내용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형태의 책도 만들었다. 팬데믹 때 여행하지 못해 답답한 경험을 통해 비행기 티켓 모양의 책을 출간했다. 책에는 12장의 포토카드가 엮여 있고, 뒷면의 QR코드를 인식하면 사진 속 영상과 함께 에세이도 들을 수 있다.
[서울=뉴스핌] 방보경 기자 = 새고서림의 라디오의 서재를 통해 사연을 나눌 수 있어 소통의 창구가 되고 있다. 2024.04.11 hello@newspim.com |
엽서 모양으로 생긴 '프로젝트 메이지', 카세트 모양의 '시간을 꺼내 듣는 책', 편지 형식의 '유서의 일부로부터' 등도 최수민 사장이 직접 만들었다. 그는 "책 안의 편지글을 읽는 것과, 직접 편지를 재현해 독자가 뜯어서 읽는 건 완전히 다르다"며 "책을 직접 듣거나 손으로 만지게끔 하면 내용이 더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여러 활동을 하다 보니 지역과도 연이 닿았다. 2022년에는 도림천 일대에서 북페어 기획을 성공적으로 꾸려 관악문화재단에서 표창장을 받았고, 영등포평생학습관의 '시인이 사랑하는 시인을 읽는 밤' 프로그램을 돕기도 했다. 고명재, 오은, 안희연, 김민정 시인과 지역주민들이 한꺼번에 들어와서 시를 읽을 만한 공간을 마련해 준 것이다.
모임을 지속하면 독자가 늘 거라는 게 최수민 사장의 생각이다. 그는 "독립서점에는 독립서점을 좋아하는 사람들만 방문하기 쉽다"며 "하지만 꾸준히 모임을 열면 책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유입될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이 책방을 오래오래 이어갈 수 있냐는 질문에 최수민 사장은 일본에서 만난 서점 사장님의 말을 인용했다. 책방을 하면서 왜 돈이 되지 않을까 고민이 많았는데,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잘 대해주면 된다'는 말을 우연히 듣고 반성하게 됐다고 술회했다.
그는 "책이 돈이 안 된다는 걸 전제로 해서 일하고 있으니 당연히 안 되는 거였다"며 "한분 한분을 귀하게 생각하면 책방을 유지하는 힘이 될 것"이라고 했다.
[서울=뉴스핌] 방보경 기자 = 새고서림 최수민 사장의 일본 현지 신문 인터뷰. 2024.04.11 hello@newspi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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