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에서 쓴 시편들 묶어 '꿈 속에서 우는 사람' 내놔
생명 가진 것들에 대한 연민을 꾹꾹 눌러 담아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대추 한 알)라고 노래한 시인 장석주가 새시집을 내놨다. 5년 만에 내놓은 시집 '꿈속에서 우는 사람'(문학동네)은 시인의 말에서 밝혔듯이 경기도 파주에서 전업작가로 살면서 쓴 시들을 묶었다. 시인은 "파주의 날씨와 계절들, 고양이들과 저녁의 쓸쓸함이 만든 멜랑콜리가 시를 일으켰을 테다"라고 적었다.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시인 장석주. [사진 = 작가 제공] 2024.04.08 oks34@newspim.com |
'주식시장과 가상화폐를 화제에 올리지 말고/ 가을의 멜랑콜리와 파주 날씨를 이야기하자./ 감자튀김과 재테크로 말씨름을 하느니/ 난민과 기후변화를 이야기하자.' -'올해 가을은 정말 바빴지' 일부.
그가 그리고 있는 파주의 시간은 아름답거나 즐거운 나날과는 거리가 멀다. 인간 정신 활동의 극지까지 다다라본 시인은 현대인의 내면에 뿌리박힌 권태와 우울을 들여다본다. 그 스스로가 권태와 우울의 희생자이자 수혜자로서 현대인이 '회의주의자'가 아니라 삶의 기쁨을 순정히 찬미할 줄 아는 '낭만주의자'라는 사실을 꿰뚫어본다.
'봄이 오면 잘 살아봐야겠다. 우리는 기린을 보러 동물원에 간 적이 없지. 봄이 오면 당신은 초록 화관을 쓰고 거리를 걷겠지. 잘 웃는 당신, 당신은 겸손하고 시금치를 좋아한다. 시금치를 먹을 때 소량의 철분이 당신의 핏속으로 녹아든다. 하루 치의 고독이 녹아서 스며들 때 당신은 밤의 별채 같은 고독을 끌어안으며 웃는다.' -'밤의 별채 같은 고독' 일부.
문학평론가 류신은 해설에서 "멜랑콜리가 이상과 현실 사이의 아득한 괴리감에서 비롯된 감정이라면, 장석주는 멜랑콜리커이다"라고 정의한다. 이어 "다른 누구보다도 세계와 인간의 삶을 깊이 통찰하는 시인은 자신이 늘 폐허나 다름없는 우울한 세계에 내던져진 현존재임을 예민하게 인식한다. 그래서 늘 시인의 수심(愁心)은 깊다"라고 분석한다.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장석주 시집 '꿈속에서 우는 사람. [사진 = 문학동네 제공] 2024.04.08 oks34@newspim.com |
'고양이들이란 달밤의 창백한 철학자! 바람과 속력을 편애하고, 난간에서 무언가를 잔뜩 노려보는 고양이의 자태는 예사롭지 않아.' - '당신과 고양이' 일부.
마치 시집의 주인공처럼 등장하는 동물이 있다. 바로 고양이다. 시인은 '고양이는 노조를 결성하지 않는 유일한 야간 노동자'(밤의 별채 같은 고독)라고 규정한다. 망망한 밤의 한가운데서도 오히려 안광(眼光)을 발하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고양이의 모습에서 시인은 고독한 인간의 지향점을 발견한다.
시인은 "아름다운 것을 보면 슬퍼지곤 한다"면서 "생명 가진 것들을 향한 연민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독자들이 제 시를 읽을 때 나른한 권태와 우울한 기조에서도 사랑이나 아름다운 것들이 주어질 때 벅차오르는 생명의 환희 같은 걸 붙잡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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