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챗GPT에 이어 영상 생성형 AI(인공지능) 소라 등이 등장하면서 콘텐츠 제작 업계에도 AI 활용이 일상화되고 있다. CG에 AI기반 VFX 기업이 협력하는가 하면,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해 성인 배우의 어린 시절을 구현해낸다.
최근 끝난 KBS 1TV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 귀주대첩 신을 비롯해 방송 초반부터 다양한 전투신이 화제를 모았다. KBS는 이번 사극의 기획 단계부터 첨단 기술력을 갖춘 버추얼 프로덕션 전문 기업 AI 기반 콘텐츠 아크테크 기업 비브스튜디오스와 함께 했다. 작품의 촬영 전부터 그림을 그리고, 적절한 AI 기반 VFX 기술을 접목해 볼 만한 그림이 다수 완성됐다. 시청자들은 공중파 사극에서 높은 퀄리티의 CG를 만날 수 있었고 호평이 이어졌다.
'살인자ㅇ난감' 속 손석구 아역배우. [사진=넷플릭스]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살인자ㅇ난감'에서도 AI 활용 이슈가 있었다. 딥페이크 기술로 극중 배우 손석구의 어린시절을 연기한 아역배우의 얼굴을 성인 배우 실물과 가깝게 구현했다. 이창희 감독은 인터뷰에서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얘기한 분들도 있었지만 리얼리티를 살리고 싶었다"고 해당 기술을 활용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 작품에선 손석구 아역 뿐만 아니라 배우 김요한이 연기한 노빈의 과거 시절과 불법 촬영 피해자를 연기한 배우의 성형 전 모습 등도 딥페이크로 구현됐다.
지상파 드라마부터 종편, OTT 등 방송사를 가리지 않고 콘텐츠 제작 단계에서 AI 기술의 활용이 도드라진다. 앞서 지난달 종영한 JTBC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에서도 '국민 MC' 송해의 얼굴을 구현하기 위해 딥페이크 기술이 활용됐다. 쿠팡플레이가 유튜브를 통해 공개했던 SNL 코리아 시즌5 예고편에서도 딥페이크와 유사한 CG 기술을 활용했다. 크루 신동엽, 안영미, 이수지, 정이랑 등의 얼굴이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시대' 등장인물로 합성된 채 등장했다.
윤여정 광고 영상. [사진=KB라이프생명] |
배우 윤여정은 한 광고 영상에서 20대로 돌아갔다. KB라이프생명 광고에서는 윤여정의 신인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모습을 담았다. 이를 위해 할리우드 영화에서 주로 사용되는 딥러닝(Deep learning) 기술과 디에이징(De-aging) 기술이 적용됐다. 광고사는 버추얼 휴먼 루이(Rui)를 만든 디오비스튜디오와 손잡고, 디오비엔진을 활용한 AI 딥러닝 기술을 적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2월 공개됐던 디즈니+ 오리지널 '카지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필리핀 카지노왕으로 변신한 차무식의 인생 여정을 담은 작품으로 30대 시절부터는 주연 배우인 최민식이 직접 연기했다. 그리고 그의 젊은 시절 얼굴을 시각특수효과(VFX)로 구현했다. 씨제스걸리버스튜디오는 AI 기술을 활용한 페이스 디에이징과 음성 합성기술을 통해 60대 최민식을 30대 얼굴로 만들어냈다.
이처럼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이같은 분위기를 쉽사리 반기기도, 낙관하기도 어렵다. 먼저 현재까지 딥러닝과 디에이징, 딥페이크 등의 AI 기술 활용에 들어가는 제작비가 여느 인건비보다 적지 않다는 점에서다.
MBC 예능 PD가 사라졌다. [사진=MBC] |
콘텐츠 제작 업계 종사자들은 AI를 활용한 방법이 현재까지는 새롭고 신선한 느낌은 주지만 아주 일부를 제외하곤 경제적이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이미 영화 후반 작업이나, 드라마에서 오래도록 정착해온 여느 VFX 작업 방식과 더불어 신기술을 적용할 때의 적지 않은 예산 문제는 이미 모두가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또 하나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대중이 극과 극의 반응을 보인다는 점에 달려있다. 딥페이크 기술을 통해 구현한 콘텐츠가 반드시 호평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살인자ㅇ난감'의 손석구 아역을 연기한 실제 아역배우의 경우 자신의 얼굴이 작품에서 지워진 것이 아니냐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약간의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할리우드 배우 조합(SAG)이 지난해 꽤 오랜 기간 파업을 벌이며 줄줄이 대형 영화, 드라마 작품의 공개가 늦어진 이유도 비슷하다. 유명 배우들을 본딴 AI 트윈 배우로 일부는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지만 스턴트 대역이나 단역 배우들의 일자리가 줄어들 위협에 대응하며 조합 소속 배우들이 제작작업과 홍보 활동을 멈췄다.
김이나의 비인칭시점. [사진=KBS] |
최근 MBC에서는 AI버추얼 PD의 일상을 담는 예능 'PD가 사라졌다'를 선보이는가 하면 KBS 김이나와 AI가 함께하는 스토리텔링 프로그램 '비인칭시점'을 시작했다. 다수의 방송계 종사자들에게 AI를 통해 콘텐츠를 생산하는 흐름 자체는 거스를 수 없다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그럼에도 고민은 남아있다. 버추얼 PD의 일거수 일투족 뒤에 실제 제작 인력이 존재한다는 점은 물론, 작사가 김이나와 대화하는 AI 스토리텔러의 원고마저 AI가 썼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AI 기술 발전이 이미 콘텐츠 제작 환경을 바꾸어놓기 시작한 만큼, 제작 주체와 시청자들의 적절한 활용과 변별있는 판단이 필요한 때다.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