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에서 프란츠 카프카까지, 공자에서 백석까지
평생 읽은 책에서 가려낸 문장에 자신의 생각 담은 에세이
"읽고 쓰는 일과 담 쌓은 인생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시인이자 전업작가인 장석주가 '어둠 속 촛불이면 좋으련만'(인물과 사상사)을 펴냈다. '내 인생의 문장들'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독서광이자 편집자였던 그가 평생 읽었던 책에서 가려 뽑은 명문장에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인 에세이집이다.
'평생 읽고 쓰며 산 걸 후회하지 않는다. 읽고 쓰는 일과 담 쌓은 인생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마 끔찍했을 테다. 내가 책에서 구한 것은 앎과 지혜가 아니라 순수한 몰입과 기쁨이다.'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장석주 시인의 에세이집 '어둠 속 촛불이면 좋을텐데' 표지. [사진 = 인물과 사상사 제공] 2024.03.15 oks34@newspim.com |
장석주 시인은 서문에서 책을 읽을 때 불안에서 해방되면서 자신과 세계가 하나로 결합한다고 말한다. 시인은 책이 자신을 빨아들이는 그 찰나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급기야 자신은 책에게 삼킴을 당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시인은 책에게 살과 피와 시간을 바쳤다. 교실, 카페, 화장실, 기차 안, 비행기 안, 풀밭, 무덤가, 바닷가, 휴양지, 영안실, 도서관, 여관, 여행지 같은 세상의 모든 장소에서 새벽과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책을 읽었다. 그 속에서 시인은 순수한 몰입과 기쁨을 느꼈다.
이 책에서 장석주 시인은 66편의 문장을 소개한다. 이 책은 시인의 망각에서 꺼낸 문장들, 권태와 나른함에 빠져 있던 심장에 화살처럼 박힌 문장들, 두개골을 빠갤 듯 울림이 컸던 문장들을 모았다. 이 문장들은 생의 경이와 기쁨을 맛보게 해준 문장들이다. 그 문장의 주인공들은 니코스 카잔차키스, 샤를 보들레르, 오스카 외일드, 브레히트에서부터 공자와 백석, 전혜린과 기형도, 가수 정훈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말한다. 이 문장은 유교에서 지혜와 삶의 지침을 구하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지금 여기 삶 속에서 작동하는 오래된 지혜이고 규범이다. 공자의 가르침은 우리의 삶과 의식, 도덕관념 속에 스미어 동화된 채 우리 마음의 DNA로 작동한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도는 사람이 따라야 할 궁극의 길이다. 교양의 원동력은 '읽는다'는 행위에서 산출된다. 읽는 것은 배움의 기초적인 행위다. 인간은 '읽는' 행위를 통해 의미의 존재로 나아가고, 자신을 세계에 매인 자가 아니라 주체적인 사유의 존재로 자신을 발명한다. 이것은 앎의 추구와 실천, 즉 인문학과 예술에 대한 기초 소양을 배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제 삶을 빚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시인이자 전업작가인 장석주. [사진 = 장석주 시인 제공] 2024.03.15 oks34@newspim.com |
다비드 르 브르통은 "본질적으로 예민하고 관능적인 걷기는 감각적 습관의 변화이고, 길을 걸으면서 의미와 가치의 지표들을 끝없이 깨닫고 쇄신한다는 확신이다"고 말한다. 걷기는 삶을 돌아보고 의미를 곱씹게 한다는 점에서 철학 행위다. 걷기는 시간과 공간을 새로운 환희로 바꾸어놓는 가장 느리고 고즈넉한 방식이다. 산책자들은 거리의 역사와 기억을 채집하고, 신기한 것, 놀라움, 황홀한 사건들, 삶의 기쁨과 의미들을 얻는다. 그래서 장석주 시인은 "나는 산책자"라고 말한다. 걷기는 세계를 온몸으로 맞는 관능으로 초대하는 것이고, 눈의 활동만을 부추기지 않고 온몸으로 세계를 끌어안도록 이끈다.
미시마 유키오는 "진짜 위험한 것은 산다는 것, 바로 그거야.……이렇게 위험한 일은 어디에도 없어. 존재 자체에는 불안한 것이 없는데 산다는 것이 그것을 만들어내는 거지"라고 말한다. 인간은 불안을 먹이 삼아 실존을 이어가는 존재다. 애초에 인간 실존은 불안과 고독을 내포한다. 우리가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다는 것은 불멸의 진리다. 우리가 지상에 와서 제 생을 마치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는 가슴을 주고, 아름다움과 추를 가려서 보는 눈과 심미적 이성을 준 이 생에 진심으로 감사해야 한다. 당신은 최선을 다해 살았는가? 당신이 웃을 때 누군가는 흐느끼고 있음을 알고 있었는가?
이 책을 쓴 작성주는 1979년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다. 현재는 아내와 반려묘 두 마리와 함께 파주에서 산다. 산책과 고전음악, 동네 카페에서 시간 보내는 걸 좋아한다. 시집과 에세이집, 평론집 등 100여종의 저서를 펴냈다. '일상의 인문학', '나를 살리는 글쓰기', '이상과 모던뽀이들', '은유의 힘', '마흔의 서재', '에밀 시오랑을 읽는 오후' 등이 있다. 348쪽. 값 1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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