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제 96회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이 때 아닌 차별 논란으로 얼룩졌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엠마 스톤이 수상 무대에서 아시안 배우 패싱 의혹에 휩싸였고 수상 결과를 두고도 불공정했다는 평가가 흘러나온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10일(현지시간) 진행됐다. 이날 최고 영예상인 작품상과 주요 부문인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가 무려 7관왕을 차지했다. 여우주연상은 '가여운 것들'의 엠마 스톤에게 돌아갔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10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뒤 시상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2024.03.12 jyyang@newspim.com |
남우조연상, 여우주연상 수상자가 호명된 후, 문제가 불거졌다. '오펜하이머'로 남우조연상 수상에 성공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지난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동상을 수상한 베트남계 미국인 키호이콴에게 트로피를 건네받으며 인사나 포옹, 악수도 하지 않고 트로피만 받은 채 그를 지나쳤다. 다른 백인 배우와는 악수를 하고는 주먹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여우주연상 엠마 스톤 역시 비슷했다. 지난해 수상자인 말레이시아계 배우 양자경(미셸 여) 앞에서 트로피를 잡은 채 지체하던 그는 옆에 있던 제니퍼 로렌스가 끼어들어 건네주는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이 두 장면을 본 전 세계 시청자들은 "전형적인 아시안 인종차별"이라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논란이 계속되자 양자경은 12일(한국 시간) SNS를 통해 엠마 스톤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며 해명했다. 양자경은 "축하해 엠마! 당신을 혼란스럽게 했지만, 절친 제니퍼와 함께 오스카를 당신에게 넘겨주는 영광스러운 순간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엠마 스톤과 포옹하는 사진을 올렸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양자경의 메시지 이전에 해명조차 하지 않았다며 두 배우를 비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10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배우 양자경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엠마 스톤과 포옹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2024.03.12 jyyang@newspim.com |
[사진=양자경 인스타그램] |
아카데미의 '인종차별' 의혹은 두 배우의 행동에 국한되지 않는다. 올해 시상식에서는 전례 없이 주요 부문에 기존 수상자들을 5명씩이나 섭외해 다 함께 무대에 오르게 했다. 항간에서는 지난해 '에에올'이 무려 7관왕을 휩쓸며 다수의 시상자들이 아시안계 배우들로 채워질 기회를 박탈한 것이라는 추측이 흘러나왔다. 여기에 글로벌 스타인 두 배우가 기름을 부은 격이다.
이번 시상식에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플라워 킬링 문'이 무관에 그치면서 이 역시 인종차별적 심사 결과가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랐다. '플라워 킬링 문'은 북미 대륙에서 과거 백인들이 무참하게 원주민 오세이지족을 학살했던 역사적 사실을 다룬 영화로, 주역 릴리 글래스스톤이 유력한 여우주연상 후보였으나 수상이 불발됐다.
이날 시상식 현장에는 고령의 스코세이지 감독이 직접 참석했고 릴리 글래스스톤을 응원하기 위해 오세이지족 원주민들이 직접 방문하기도 했으며, 축하공연에 나서기도 했다. 이 부문 트로피는 '가여운 것들'의 엠마 스톤에게 돌아갔다.
앞서 2021년 한국계 미국인인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가 후보에 올랐을 당시에도 수상 결과를 둘러싸고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다. 당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음악상, 여우조연상, 남우주연상까지 6개 부문 후보에 올랐음에도 윤여정의 여우조연상 수상에만 그쳐 아쉬움을 자아냈다. '미나리'의 경우엔 당시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도 '미국 영화'로 분류되고도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라 더욱 논란에 불이 붙기도 했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10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배우 유태오 [사진=로이터 뉴스핌] 2024.03.11 jyyang@newspim.com |
올해 한국계 영화인들이 참여한 '패스트 라이브즈'의 결과 역시 예외가 아닐 수도 있다. 이 작품은 오스카 각본상, 작품상 후보에 올랐으나 무관에 그쳤다. 유태오 역시 영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에 실패했고, 오스카 후보 입성에는 실패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패스트 라이브즈'의 작품상 노미네이트 과정에서 아카데미가 작품의 다양성을 고려하는 기준을 신설했다는 점이다.
인종이나 국적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심사 기준이 확립돼가는 과정인 만큼,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도 현지 영화인들과 업계의 자각이 필요하다. '오펜하이머'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킬리언 머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훌륭한 작품으로 이룬 생애 첫 오스카 수상이 괜한 오명으로 얼룩지 않기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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