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오래도록 한국 영화계를 지켜온 김성수 감독이 '서울의 봄'으로 마음 속 오래도록 품고있던 이야기를 들춰낸다. 어린 시절 직접 경험했던 1979년 그날 밤, 9시간 동안의 이야기다.
김성수 감독은 22일 '서울의 봄'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를 통해 이 시점에,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야 했던 이유를 얘기했다. 정우성, 황정민은 물론이고 한국의 대표 영화배우들이 줄줄이 나오는 실제 역사를 담은 영화의 모든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전두광은 여러 사람들의 투표로 뽑은 이름이에요. 좀 희화된 느낌이라 자연스러운 게 낫지 않나 했는데, 저희 10년 넘게 해온 팀들이 다 그게 좋다고 하니까. 실제로도 영화 속에서도 그 인물 때문에 모든 일이 벌어지는 거고 원래의 인물로부터 완전히 별개일 순 없겠죠. 그 이름이 어떤 지시어로서 좋은 이름이라면 괜찮았어요. '아수라'도 그랬지만 영화 안에서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해야 만족하는 못된 버릇이 있는데 이름을 바꾸니 여지도 좀 생기고 운신의 폭이 좀 넓어졌죠."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서울의 봄'의 김성수 감독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2023.11.16 jyyang@newspim.com |
'서울의 봄'의 가장 큰 매력은 실제 사건의 결말을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하다는 점이다. 극중 전두광의 승리도 결코 쉽지 않았음을, 그리고 그를 저지하려던 인물들이 분명히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관객들은 저도 모르게 손에 땀을 쥐고 이 사건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흥미진진하게, 또 조금은 참담한 마음으로 관전하게 된다.
"이 이야기에 늘 관심이 많았으니까 시나리오가 저한테 왔을 때 좀 놀랐어요. 기어코 나를 찾아오는구나 싶었죠. 그래서 재밌었어요. 했던 영화 중에 가장 어려웠고, 모든 면에서 골머리를 썩었지만 촬영장에서 시나리오와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만들어 나가면서 감흥이 새로웠죠. 역사를 그대로 재현한다기보다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제 의구심과 상상력으로 빚어낸, 그때 이랬을까 저랬을까 했던 것들을 풀어내는 시간이었죠. 어릴 때부터 품었던 생각들의 결정체가 이 시나리오로 이렇게 다 응집돼 있었기 때문에 만드는 과정에선 좀 흥분 상태였어요."
시나리오가 찾아왔을 때 여러 감정이 교차했던 만큼, 영화 속에선 김성수 감독이 고민하고 신경쓴 부분들이 눈에 띈다. 영화의 톤을 지나치게 감정적이거나 드라마틱하게 연출하기보다 다큐멘터리가 생각날 만큼 건조하게 유지하기도 한다. 권력욕에 휩싸인 전두광과 대척점에 선 이태신은 오히려 실제 인물과 거리를 둬서 상식적인 군인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서울의 봄'의 한 장면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2023.11.09 jyyang@newspim.com |
"가물가물하긴 해도 감히 말하길 '나만큼 아는 사람이 있어?'라고 할 정도로 자부심이 있었어요. 누구 못지않게 내 안에 충분히 녹아 있으니까 마음대로 하더라도 근간은 벗어나지 않을 거란 자신감도 있었죠. 그래도 삽질은 했어요. 극은 확실히 공방전이 돼야 했고 다 예측되면 재미없으니까 역사적 정황을 좀 넘어서야 되는 게 많았죠. 아예 이태신은 캐릭터도 바꾸고 자유롭게 움직이게 하자. 그렇게 맘 먹었죠."
김성수 감독이 그려낸 극 중 전두광은 욕망으로 가득한, 그리고 그 욕망에 결국은 잠식돼버린 인간이다. 군인으로서 본분에 충실한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를 막아서려 했는지, 또 소규모 사조직이 어떻게 군 전체를 장악했는지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경각심을 일깨운다.
"전두광은 욕망을 위해 모든 걸 동원하고 주변을 다 이용하고 승리에 도달했을 때 탐욕에 완전히 먹혀버리는 거예요. 그렇게 우리가 아는 현대사의 유명한 악당이 탄생한 거죠. 영화는 거기서 끝나지만 그 뒤에 훨씬 더한 악행을 벌이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할 수 있죠. 활화산 같은 전두광에 비해 이태신은 정말 오히려 부드럽고 노장 철학에 나오는 물 같은 사람이었음 했어요. 강력한 마초들의 리더십이 아니라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고 책임감과 신념이 있는, 선비같은 사람이라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거라고. 늘 평정심을 유지하는 이태신을 통해 이 영화를 볼 때 관객들이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이태신 역에 김 감독의 페르소나인 정우성을 캐스팅하기도 쉽지는 않았다. 다른 역 배우들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를 보다보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한국의 유명 배우들이 다 모였을까. 놀라울 지경이다. 황정민과 정우성, 박해준, 김성균, 박훈, 이준혁, 정해인, 안내상 등 자주 보인 배우들 외에도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아들인 배우 남윤호, '나는 자연인이다'의 성우로 활약한 정형석까지 매 신에서 빛나지 않은 배우가 없었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서울의 봄'의 김성수 감독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2023.11.16 jyyang@newspim.com |
"정우성 씨 시나리오 주고 그때 '헌트' 끝나고 나서 그런지 안한다고 했어요. 계속 스토커처럼 괴롭혔죠. 신 안에서 모두가 움직이고 있고, 얘기를 주고받고 에너지가 흘러가는 그림을 계속 만들어야 했어요. 일부러 연극 쪽을 많이 하신 분들을 모셨고 알아서 잘 해주시니까 더 군무가 되고 이렇게 막 군상들의 어떤 아귀다툼, 이합집산이 잘 표현이 됐죠. 유명세에 비해 분량이 적어도, 이 이야기가 그분들을 끌어당긴 것 같아요. 그냥 대사 한마디 없이 뒤에서 벌떡 일어서고 소리나 내다가 가야하는데도 굉장히 우리가 뭔가 중요한 거를 만드는데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졌나봐요. 편집하면서도 그 자리에서 똑같이 계속 연기하는 걸 보면서 좀 감동적이라고 할까요. 보이지 않게 이 영화를 위해 서로 헌신하고 있구나 싶었죠."
항간에선 영화는 픽션이니, 시원하게 실제와 달라진 결말을 이제는 보고싶어하는 관객들의 목소리도 있다. 김 감독은 그래도 "그건 너무 쉬운 결론"이라면서 '서울의 봄'이 그래도 보여주고 싶었던 그때 당시 나라와 본분을 지킨 군인들의 가치있었던 행동들을 짚었다.
"영화에서처럼 많은 군인들이 막기 위해 너무도 노력했어요. 그리고 너무 큰 비극과 불행을 겪었죠. 자신들을 위한 선택이 아니었는데도요. 인생에서 보상받을 수 없는 걸 겪은 이들을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그런 사람이잖아요. 젊은 분들이 이 영화를 보고 능동적으로 역사를 돌아보고 상상할 수 있다면 아마 뭔가를 스스로 건져올릴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 있었고 또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저의 평생의 수수께끼와 의구심들이 지금 젊은 관객들의 호기심과 딱 접점이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