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정태선 기자 = 근대는 교통수단의 발달 등으로 인해 이전의 힘들고 위험했던 '여행'이 즐겁고 편안한 '관광'으로 바뀐 시기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근대관광은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이 만들어갔고, 그 주도 세력은 식민지 정부였다. 수많은 일본인이 부산으로 들어와 경성을 관광했으며, 평양을 거쳐 만주까지 돌아보기도 했다.
이 책은 역사지리학자인 저자 정치영씨가 수년 동안 수집한 당시의 기행문 80여 편, 관광안내서, 지도와 사진 등 개인의 발자취와 기관의 기록을 분석해, 식민지를 배경으로 한 근대 산물인 관광이 어떤 명암을 드러냈는지 살펴본다. 공급자 측면에서 다룬 여느 근대관광 연구서와 달리, 비록 일본인이지만 관광소비자 측면도 함께 다룬 한국 근대관광 연구서라는 의의가 있다.
정치영/ 사회평론아카데미/2023년 08월 31일/쪽수 506/ 정가 28,000원 |
◇그들의 눈에 비친 서울, 평양 그리고 부산
책에서는 근대 관광공간 가운데 서울·평양·부산 등 3개의 도시에 주목한다.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방문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세 도시는 관광지로서 각기 나름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식민지 조선을 대표하는 관광지는 금강산이라고 할 수 있으나, 세 도시를 통해 세계의 형성과정에 제국주의, 자본주의, 산업발전, 도시화의 진전 등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식민지의 수도였던 경성, 즉 서울은 조선을 식민지화하고 발전시킨 제국 일본의 정당성을 상징하는 관광공간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평양은 조선의 전통문화가 잘 보전된 관광공간이었으나, 그 이면에는 평양이 임진왜란·청일전쟁의 전적지여서 일본제국의 확대 과정을 기념할 수 있는 관광지라는 성격도 지니고 있었다. 일본인의 식민지 조선 관광의 출발점이자 종착점 역할을 했던 부산은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진 관광지가 특히 많았으며, 시간에 따라 변화가 컸다.
일제가 제안한 관광지 중 상당수는 조선 역사 속에서의 의미보다는 일본 역사 속에서의 의미 때문에 선정되었다. 이 책은 '관광지'로서 서울, 평양, 부산이 어떻게 조성되었고, 시간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였으며, 구체적인 장소들이 관광지로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지를 고찰했다.
◇한국 근대관광을 말할 때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
한국에서 근대관광이 시작된 것은 일제강점기라 할 수 있다. 이를 주도한 것은 일본 제국주의였다. 일본은 1905년의 러일전쟁 승리 이후 자국민들의 해외여행을 적극적으로 장려하였고, 특히 조선총독부는 식민지 관광개발을 통해 경제적인 이익을 획득하고, 제국의 우월성과 제국주의의 정당성을 홍보하고자 했다.
이 책의 시간적 범위는 1905년부터 1945년까지의 41년간으로 하는데, 일제강점기는 1910년부터이나, 관부연락선과 경부선철도가 개통된 1905년을 기점으로 일본인의 한국 여행이 급증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인의 관광은 대부분 현장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현지인과 만날 기회가 배제된 오늘날의 단체 패키지 해외 관광과 매우 닮은 여행이었다. 그들이 남긴 기행문 속 한반도를 바라보는 시각은 낙관적인 전망이 배어 있으며, 특히 한국인들의 모습은 피상적이고 소략하게 설명되었다.
저자는 이 책이 경성·평양·부산이라는 세 도시를 주로 다루고 있어 지역적 제한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인이 만든 자료 위주로 분석하였기 때문에 당시 한국인의 관점과 상황을 담은 후속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며 소회를 밝히고 있다.
한편 정치영 교수는 고려대학교 지리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지리학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일본 교토대학교 초빙학자 등을 역임하였고,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인문지리학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과거를 대상으로 하는 지리학"인 역사지리학을 전공한 저자는 과거의 경관이나 지리적 상황을 복원하고, 각 지역의 환경에 적응해 사람들이 만들어 낸 지역 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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