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배우 이병헌이 '콘크리트 유토피아'로 또 다시 처음 보는 얼굴을 꺼내든다. 90년대부터 한국 영화사의 상징적인 배우가 된 그는 여전히 가장 신선하고 새로운 얼굴로 관객들과 만난다.
이병헌은 오는 9일 개봉하는 '콘크리트 유토피아' 인터뷰를 통해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던, 하지만 꼭 하고 싶었던 인물 영탁을 연기한 소감을 말했다. 폐허 속 유일하게 살아남은 주민들의 대표로서 그는 리더십과 방종을 오가며 영화의 톤을 쥐락펴락한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출연한 배우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2023.08.03 jyyang@newspim.com |
"네 번쯤 영화를 봤어요. 개봉까지 오래 걸렸지만 오히려 득이 된 것 같아요. 감독님이 후반 작업을 공들여 하신 티가 나요. 굉장히 완성도있게 느껴져요. 편집도, 음향도 계속 작품이 진화해왔구나. 시나리오 봤을 때 좋았어요. 이후 아주 디테일한 부분들이 다듬어져가고 촬영해나가면서 원래보다 더 발전되기도 했어요. 블랙코미디 장르다보니 감독님하고 정말 많은 대화를 하면서 디테일들을 만들어나갔죠. 그러면서 더 좋아진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받기 전부터, 이병헌은 엄태화 감독의 구상을 듣자마자 흥미를 느꼈다. 이병헌은 큰 재난이 일어나서 황궁아파트 하나만 우뚝 솟아있는 초기 설정부터 많은 가능성을 봤다고 했다.
"설정만 보고도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가 됐고 호감이 갔어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인간성을 드러내는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요. 누구 하나가 절대악이거나 절대선이 아니에요. 상식적인 선에서의 인간들이 서로 규칙을 정하지만 그 안의 갈등이 생기고 인간성의 밑바닥을 보여주게 되는 게 무섭게 느껴졌죠. 상황은 비현실적이지만 어떤 인물을 보면서 '나라도 저럴 것 같다'는 공감대가 생겨요. 사실 재난보다 더 무서운 건 사실 인간이죠."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출연한 배우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2023.08.03 jyyang@newspim.com |
이병헌이 연기한 영탁은 초기 시나리오에서 꽤 스트레이트한 인물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를 만나고 영화 속에서 더없이 입체적인 캐릭터가 됐다. 그는 "준비 과정에서부터 촬영하면서도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나눴다"고 했다.
"저를 만나 입체적으로 변했다, 어떤 한 지점이 달라졌다고 얘기할 순 없겠지만 연기할 때 이 사람이 극단적인 특이한 사람은 아닐 수도 있다고 봤어요. 우리가 상식선 안에서 만나는 보통 사람, 다만 굉장히 루저이고 우울하고 내 집 하나 마련하려고 발버둥쳤던 사람이죠. 우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축 처진 소시민의 모습을 떠올렸어요. 감정적으로든 캐릭터든 너무 상식 밖으로 벗어나지 않는 일반적인 사람인데 펼쳐지는 상황들이 극단적이다보니 계속 변화를 겪죠. 또 예상치 못했던 신분 상승으로 권력의 맛을 보게 되는 과정들이 보이면 재밌지 않을까 했어요."
1991년 데뷔한 이병헌은 '공동경비구역 JSA'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광해: 왕이 된 남자' '내부자들' '마스터' 등 지금의 K무비 발전의 한 가운데에서 함께해온 한국영화계 산증인이다. 업계의 베테랑인 그가 입봉 후 두 번째 작품을 만든 엄태화 감독과 호흡을 맞추며 새롭게 느낀 점도 있었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출연한 배우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2023.08.03 jyyang@newspim.com |
"엄태화 감독이 디렉션을 잘 안주는 편이에요. 때론 난감한 면이 있죠. 신인 배우들은 갈 길을 모를 때 누군가가 디렉을 주면 어떻게든 끌고 가기도 하고 어떤 감독님들은 직접 연기를 보여주고 이렇게 해달라는 분도 있어요. 오히려 반대의 캐릭터니까 일부러 말을 많이 걸었죠. 여기서 표현하고자 하는 게 뭐예요? 이 말을 하는 의도가 이런 걸까요? 계속 얘기를 많이 하려고 했고 나서서 '이렇게 해볼까요' 하면 잘 받아주셔서 새로운 것들이 발견되고 만들어나갈 수 있었죠. 질문을 계속 하면서 조금씩 그 감정에 맞는 확신을 갖고 연기하고, 그렇게 찾아나갔어요."
어딘지 없어보이고 고집스러워 보이는 영탁의 외관부터, 영화 속 장면의 디테일들까지 이병헌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은 없었다. 심한 M자형 탈모 분장을 감수하는가 하면 이름을 쓰는 장면에서 없던 클로즈업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엄태화 감독은 영탁이 노래부르는 신에선 별 말도 없이 가장 베스트였던 테스트컷을 가져다 쓰기도 했다.
"ㅁ을 먼저 쓰는 게 제 아이디어였어요. 감독님이 너무 좋아하셨죠. 노래부르는 장면도 테스트컷이었고요. 조금 답답할 수도 있지만 나름의 룰과 생각이 뚜렷한 분이셨죠. 또 어쩔 수 없이 기다리는 시간 동안 매일 후반작업에 매달려 완성도를 올리려 얼마나 고민하고 노력했는지 여실히 느꼈어요. 이번 영화는 시나리오 읽으면서 처음부터 신났었고 촬영도 재밌었고 결과물도 마음에 들어요. 맞다 내가 블랙코미디를 참 좋아했었지, 오랜만에 느꼈죠. 어떤 장르 영화가 성공하면 계속 유행이 되고 시류를 타서 비슷한 장르와 장면만 나와요. 블랙코미디가 없던 장르도 아닌데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영화를 접한 지 얼마 안된 세대에겐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드는, 새로운 정서의 영화로 다가갈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