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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즈백] 무노동부분임금과 이인제 장관

기사입력 : 2023년04월28일 08:00

최종수정 : 2023년04월28일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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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범 한성대 명예교수

미국 코넬대학에서 경제학 공부를 한 박영범 교수는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 노동연구원에서의 10여년의 정책연구 활동이후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는 한성대학교 명예교수다.

최저임금제, 고용허가제, 고용보험 주요 고용노동 정책 수립의 초기단계에 참여했고,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원장으로 이명박 정부의 '선취업후진학' 정책,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으로서 박근혜 정부의 '능력중심사회 구축' 정책이 현장에서 작동하도록 지원했다.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회장, 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선진화위원회 위원장,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심판담당 공익위원 등을 역임했다.

박영범 교수의 고용노동정책의 정책 수립 과정에 얽힌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나라 고용노동시장 현실을 곱씹어 보고자 한다.

박영범 교수.

국회가 의장단 구성이나 상임위원장 배정과 관련된 여야 충돌로 개원이 늦어지면 '무노동무임금'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가 국회가 정상화되면 슬그머니 없던 일도 된다.

1987∼1989년 노사관계 격변기에 '무노동무임금', 즉 파업에 따른 임금손실 보전은 노사간 큰 쟁점의 하나였다. 파업에 따른 임금 손실을 보전하여 주면 노조는 파업을 조기에 마무리할 유인동기가 없어진다. 그러나 민주화 열기 속에서 파업 발생 후 교섭을 마무리하면서 노조는 격려금 등의 명목으로 전액 보전을 요구하고 전액은 아니더라도 부분적으로 임금을 보전하여 주는 기업이 많았다.

정부는 과격하고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파업이 많았던 당시의 노사관계를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는 파업에 대해 '무노동무임금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는데,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자가 신동아에 '무노동무임금은 위헌이다'라는 제하의 장문의 글을 게재하면서 서울대 교수직을 잠시 내려놓고 한국노동연구원 설립을 주도하신 배무기 초대 원장은 큰 곤욕을 치루셨다.

'무노동무임금' 공방은 김영삼 정부의 실세 노동부 장관으로써 권위주의 정부에서 해고되었던 5000여 명의 근로자 복직을 추진하고, 현대정공 파업에 대한 긴급조정권 요구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이인제 노동부 장관이 물러나는 단초가 되었다. 이인제 장관은 1993년 3월 "정부가 무노동부분임금지급이라는 대법원판례와 어긋난 지침을 운영해 왔으나 판례와 일치하도록 지침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고 밝혀 큰 논란이 되었다. 경제부처, 재계에서 강력히 반발하면서 정부의 '무노동무임금' 지침은 수정되지 않았다.

필자는 1993년 6월 이인제 장관의 자문관 자격으로 이장관의 ILO총회 참석을 수행하였는데, 이장관의 ILO 총회 참석기간 중에 재계에서 기습적으로 비판 성명을 발표하고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이장관의 제네바 일정은 중단되었고 필자는 이장관과 같이 레만호 등 주변지역을 4시간 정도 둘러보았다. 이장관은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나게 될 것을 예감하였고 필자에게 본인은 "정치적으로 반드시 돌아 온다"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이인제 장관은 1996년 6월 경기도 지사로 중앙정치에 화려하게 복귀하였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전국금속노동조합 조합원들이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금속노조 1만 간부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04.19 mironj19@newspim.com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아직은 제 궤도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도 파업을 마무리하면서 파업에 따른 손실 보전을 노조가 요구하고 일부 기업에서는 들어준다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2021년 7월 말 1년 넘게 끌어온 르노삼성자동차의 임금 및 단체협상의 타결에 마지막 걸림돌의 하나가 '무노동무임금 원칙'의 적용여부였다. 노조 측이 파업 기간 중 임금 손실에 대한 보전을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노조는 아직 걸음마 단계여서 재정적으로 취약하다', '기업별 노조이다', '노동법이 파업을 합법적으로 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등등이 노조 측에서 (불법분규를 포함하여) 파업에 대해 무노동부분임금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던 논거였다. 이제는 노조원이 200만 명이 넘고 보수가 상당하고 안정된 대기업, 공공부분 중심의 노조이고 산별 소속 노조원이 50%가 넘는 등 재정적으로 취약한 노조에서 파업이 발생시 연대를 통해 파업 노조원의 임금을 보전하여 줄 수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노조는 성장하였다. 노사현장에서 무노동부분임금과 관련된 갈등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박영범 교수 약력= △1956년 서울 출생 △한국외대 영어학·경제학 학사, 미국 코넬대 대학원 석·박사 △산업연구원 초빙연구위원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및 연구조정실장 △국가기술자격정책심의위원회 위원 △교육인적자원부 정책자문위원회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 △노동부 자체평가위원회 위원장 △한성대 교무처장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선진화위원회 위원장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원장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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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문의 화랑담배] 제2회 광복군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1940년 9월 17일 중국 중경 가릉호텔에서 성대한 행사가 열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창설식이었다. 미국 한인 동포들이 보내온 돈 4만원으로 조직한 군대였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20억 원 정도 된다. 총사령관 이청천 장군, 참모장 이범석 장군, 제1지대장 이준식, 제2지대장 고운기, 제3지대장 김학규, 제5지대장에 나월환을 임명했다. 지대장은 지금의 사단장에 해당한다. 모두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를 비롯하여 남북 만주에서 전개된 항일무장투쟁에 직접 참여하여 활동한 독립군 출신이었다. 한국광복군 훈련반 제1기 졸업사진. [사진= 독립기념관]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포고문을 통해 "국내외 동포들에게 알립니다. 1940년 9월 17일부로 대한민국 광복군을 창설하였습니다. 광복군은 1907년 8월 1일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한 날이 바로 광복군 창설일임을 선언합니다. 광복군은 구 한국군의 후신으로 33년간에 걸친 의병과 독립군의 항일무장투쟁을 계승한 전통 무장 조직입니다"라고 했다. 대한제국 국군-의병-독립군의 군맥(軍脈)과 군혼(軍魂)을 분명하게 잇고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부대 편성은 소대, 중대, 대대, 연대, 여단, 사단 6단으로 편성하였다. 총 3개 사단을 조직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인원이 적은 상황에서 우선 지대를 만들고, 각 지대를 구대와 분대로 연계한 전투부대를 구성했다. 임시정부에서 1940년 9월 19일 중국 국민당 정부에 통보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직원 명단'에 의하면, 부대 규모가 총사령부와 4개 단위부대, 여기에다 조선혁명군 부대까지 포함하여 5000여 명이었다. 임시정부에서는 1941년 12월 연합국의 일원으로 일본에 선전포고했다. 1942년에는 미국 측에 "미국이 제주도를 해방 시켜 주면,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를 제주도로 옮긴 후, 광복군이 미군과 함께 한반도 상륙작전을 전개하겠다."라고 제안하였다. 이 제안은 실제로 미국 OSS 부대(지금의 CIA)와 1945년 4월부터 8월까지 강도 높은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다. 주요 훈련은 3개월 기간에 고공낙하, 암살법(권총에 특수장치를 하여 소리 없이 암살하는 방법), 통신(암호의 작성 및 해독법, 무전기 조작 및 수리), 교란 행동, 정보수집, 폭파 등 이었다. 일과는 07:00∼12:00 오전 훈련, 13:00∼18:00 오후 훈련, 19:00∼22:00 야간 훈련이었다. 주요 임무는 대한민국으로 낙하산과 잠수함으로 침투하여 미 공군 공습에 필요한 지형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일본군 군사시설 탐지 및 파괴 지하 유격대를 조직하여 연합군 상륙작전 시 제2선에서 연결하는 작전이었다. 마침내 1945년 8월 7일 모든 훈련을 마치고 국내진공작전 출정식을 개최했다. 개시일은 8월 10일이었다. 출정식 때 장준하 경기도 공작 반장은 "나는 조국광복을 위해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내가 나의 죽음을 지불하면, 내 능력껏 그 대가가 조국을 위해서 결제될 것입니다. 나의 각오는 한 장의 정수표입니다. 발생인은 장준하, 결제인은 조국입니다"라는 유서까지 작성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5-09-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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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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