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4구역만 벌써 몇 번짼지 모르겠다. 지금 다 근처 호텔로 대피했는데 명절이고 뭐고 무슨 의미가 있겠냐. 트라우마가 엄청 심할 거다"
20일 오전 11시 20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화재가 발생한지 5시간 가까이 지났음에도 4구역 인근에선 매캐한 냄새와 뿌연 연기가 가득했다. 이곳에서 30년간 거주 중인 이모 씨(74)는 "자다가 새벽 5시 40분에 불 났다는 연락을 듣고 급하게 마을회관으로 대피했다"며 "6지구인 우리 집까지 새까만 재가 뒤덮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어 "4구역만 벌써 네 번째 불이다. 매년 물난리, 불난리로 난리도 아니다"라며 "이러다 나도 여기서 죽을 것 같다"고 울먹였다.
[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20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4지구 화재 장소 인근. 매캐한 냄새와 함께 희뿌연 연기가 마을을 덮고 있다. 2023.01.20 allpass@newspim.com |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 사이로 좁은 골목길을 오르자 대모산 인근에서 화재를 진압 중인 소방대원과 구급차량들이 보였다. 연기는 시야를 가릴 정도로 거셌고 강한 탄내가 마스크를 뚫고 코로 들어왔다. 포크레인은 철근 등 무거운 잔해들을 계속 퍼나갔다.
이따금 주민들은 화재난 곳을 피해서 조심스레 자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땅이 울퉁불퉁하고 빙판길인 탓에 일부 고령 주민들은 미끄러지기도 했다. 벽을 짚고 이동하던 5지구 주민 최모(81)씨는 "아침에 전화 받고 나와보니 시꺼먼 연기가 나오고 바람까지 위로 올라와서 숨이 콱콱 막혔다"며 "서둘러 화재난 곳 반대쪽으로 돌아서 내려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나마 우리집은 피해가 거의 없지만 4지구 주민들은 설 앞두고 너무 힘들 거다"라고 했다.
화재 현장쪽으로 향하던 윤모 씨(64)는 "밤새 일하고 퇴근하는 길에 뉴스보고 소식을 알았다"며 "화재난 곳 근처에 지인이 살고 있어서 괜찮은지 확인하려고 한다"고 했다.
이어 "이게 설 직전에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다. 너무 안타깝다"며 연달아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구룡마을 화재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불길을 잡고 있다. 2023.01.20 allpass@newspim.com |
이날 화재는 오전 6시27분쯤 구룡마을 4지구 교회 인근에서 시작돼 5시간 만인 오전 11시 46분쯤 완전히 진압됐다. 이번 화재로 주택 60여채가 소실되고 이재민 62명이 발생했다. 인명 피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소실된 면적은 2700제곱미터(㎡)에 달한다. 당국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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