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준희 기자 = "시장 이기는 선수 없다."
최근 증권가에서 다시 언급되는 얘기다.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경기침체 위기가 드리우며 자금시장도 빠르게 경색되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가 8~9월 신문 경제면을 달궜다면, 10~11월은 회사채 시장이 타깃이다. 레고랜드부터 둔촌주공, 흥국·DB생명, 한전채 등 다양한 이름이 오르내렸다.
김준희 금융증권부 기자 |
지난해 억대 성과급을 받았던 선수들도 시장 앞에 고개를 숙였다. 특히 부동산 PF의 위기는 올 하반기로 들어 증권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모두가 알고 있지만 누가 나서서 얘기하는 순간 위기는 현실이 되고, 시장이 도미노처럼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회사도, 선수들도 발만 동동 구르며 알아서 위기가 지나가기를 바랐다.
비밀은 여의도 밖에서 터져 나왔다.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법원에 강원중도개발공사(GJC) 회생 신청을 내겠다"고 밝히면서다. GJC는 춘천 레고랜드 운영사다. 당초 강원도 보증으로 레고랜드 PF 대출 기반 채권이 발행됐는데, GJC가 이를 상환하지 못하자 지자체마저 "빚을 갚지 않고 부도 처리하겠다"고 했다. 안전하다고 여겼던 지자체 채권마저 무력화되면서 채권 시장이 망가졌다. 부동산 PF의 위태로운 현실도 재조명됐다.
현실을 고려하면 터질만한 일이 터졌다. 금리 상승, 원화 약세 시기에는 채권 시장도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다만 레고랜드를 시작으로 신용 문제까지 불거지며 악재를 키웠다. 자본시장의 중심에 있는 증권사도 올해 실적 악화를 피할 수 없었다. 증시 부진에 따른 거래대금 급감과 채권손실평가 확대, PF딜 감소 등의 영향으로 실적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역대급 실적을 기록한 지난해와 비교하면 평균이 반토막이다. 여기에 향후 PF 부실이 추가로 드러난다면 주관사를 맡았던 증권사들의 실적 타격도 커질 전망이다.
상황이 이렇자 증권가에서는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소리가 나왔다. 케이프투자증권이 이미 출발선을 끊었다. 케이프투자증권은 법인영업과 리서치사업부를 폐지하고 투자전문회사로 조직을 재정비하겠다고 밝혔다. 두 부서 소속이었던 임직원 30여명 가운데 일부가 일자리를 잃었다.
구체적인 감축 계획이 담긴 '증권가 구조조정 리스트'도 시장을 휩쓸고 갔다. 초대형 증권사, 올해 유일한 흑자행진을 이어간 증권사도 명단에 올랐다. 대부분의 증권사는 '사실무근'이라고 했다. 부동산 PF 대출 비중이 높아 지라시에 포함됐을 뿐, 구체화된 감축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지라시에 담긴 분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다올투자증권이 실적을 이유로 1년 계약직이었던 채권구조화팀 6명에 대해 '재계약 불가'를 통보했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IB(투자은행) 부문을 조직개편할 예정인데, 이 과정에서 감원 가능성이 거론된다. 성과중심주의가 뚜렷한 증권가에서 '계약연장', '조직개편'은 매년 있었다지만 전반적인 분위기가 냉랭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밖에도 자기자본 10위권 증권사 두 곳에서 비용 감소, 계약 만료 등으로 인력 감축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문이 돈다.
일각에서는 이번 구조조정의 화살을 부동산 PF부서로 돌리기도 한다. 특히 "주식과 채권은 사이클이 있다지만, PF는 부문별한 딜 소싱이 문제였다"고 꼬집었다. 부동산 호황기에는 통했던 고수익 고위험 대출 등이 위기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리스크 관리를 외치던 회사도 결국은 돈 버는 PF쪽 목소리를 들으며 위기 대응을 뒷전으로 미루더라"며 "다른 부서에서 보기에는 위험한 딜들도 많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징후 없는 위기는 없었다. 꼬리를 타고 올라가보니 '근거 있는 소문'도 상당했다. 위기 발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어느 누가 '사실 무근'이라고 당당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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