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배우 박해일이 '한산: 용의 출현'에서 전 국민이 사랑하는 이순신 장군으로 변신한다. 그의 이순신은 뜨거운 열정의 기세등등한 장수가 아닌, 침착하고 절제하면서도 지략에 뛰어난, 선비같은 영웅이다.
박해일은 '한산: 용의 출현' 개봉을 앞두고 종로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한민 감독의 전작이자, 최민식 주연의 '명량'이 1700만 관객을 끌어모은 이후 두 번째 주인공으로 낙점된 그는 이 영화를 시작하고 경험한 이야기를 천천히 들려줬다.
"'명량'에서 최민식 선배의 불같은 면을 활용하셨다면, 저의 어떤 기질을 통해 한산 해전만의 이순신 장군을 감독님과 함께 도전해보고 잘 해볼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나가려 했어요. 말수도 적고 희노애락의 표현도 잘 드러내지 않았다고 해요. 7년 전투라는 긴 시간 속에 그런 게 충분히 와닿았고 난중일기도 참고했죠. 고단한 일상 속에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는 각 수장들과 술도 마시고 심지어 병사들도 불러 모으고요. 그 날은 꼭 비가왔다고 마침표를 찍고, 닭이 울 때 여느 때처럼 일어났다고. 자기 절제와 주변을 보듬는 그런 시야가 대단한 분이라는 것도 살려보고 싶었죠."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한산: 용의 출현'에 출연한 배우 박해일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2022.07.21 jyyang@newspim.com |
박해일이 언급한 것처럼 '한산'의 이순신은 올곧고 침착한, 극도의 자기절제가 몸에 밴 사람이다. 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무서운 기세와 에너지로 부하들을 통솔하기보다 차분하면서도 조용한 카리스마와 인내로 대응하고 분명한 지시와 전술로 자신만의 전투를 이끈다.
"이순신 장군은 7년 전쟁 동안 부인을 한번도 보지 못하고 만나지도 못했다고 해요. 그런 의지만 봐도 보통 사람이 갖고 있을만한 기질은 아니죠. 쓰러져가는 나라를 버텨내는 강인한 기운이 유달리 더 느껴져요. 표현하기보다도 혼자 삼켰을 것 같죠. 그걸 글로 쓰셨고 시로도 옮기는 감성적인 면이 풍부한 무인이었어요. 단순히 한 가지 면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인물이긴 했죠. 그러다보니 감독님은 3부작으로 각 해전에 어울리는 배우와 드라마도 달리 해서 구상을 하게 된 게 이해가 됐어요."
박해일은 '한산'을 준비하며 이순신을 오래 연구한 사람들이 '수양을 많이 쌓은 단단한 선비같은 기질이 있다'고 분석한 점을 눈여겨봤다. '최종병기 활'에서 잡아봤던 활쏘기와 더불어, 대포를 쏘는 방식의 조선 수군의 공격 방식도 그런 이순신의 면모와 맞닿은 부분이 있었다. 자연히 맹렬하게 돌진해오는 왜군들의 캐릭터와는 대비되는 효과가 상당했다.
"붓이 잘 어울리는 군자, 선비의 느낌과 동시에 활이 잘 어울리는 무인의 느낌도 가져갔죠. 그렇게 하면 한산만의 개성을 살리면서 명량과 차별점도 둘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상대적으로 조선 수군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침착하게 그려지는데 그 방식을 더 편하게 느끼는 편이에요. 배우마다 개성과 기질이 다르죠. 외려 득달같이 달려드는 왜군들의 기운이 더 인상적이었어요. 그게 더 사실적이기도 했죠. 조선을 찬탈하고 명으로 가야 하는 목표가 있으니 야욕과 힘, 에너지가 터져나올 수밖에요. 그 복장과 색감, 모두 그나라의 문화잖아요. 선악으로 구분됐다면 그렇게 못했을텐데 양쪽 군대의 성격이 선명하게 드러나요. 또 정해진 역사이기 때문에 그 기세가 등등하고 강한 에너지로 달려들수록 승리의 역사가 돋보이는 효과도 있었죠."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한산: 용의 출현'에 출연한 배우 박해일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2022.07.21 jyyang@newspim.com |
'한산'을 촬영하며 김한민 감독은 전작 '명량'의 노하우를 토대로 물 위에 배를 띄우지 않고 해전 신을 촬영했다. 실제 비율의 판옥선, 안택선 2-3척이 들어갈 초대형 규모의 실내 세트를 조성해 CG처리를 염두에 두고 배우들이 연기하게끔 하는 촬영장이었다. 박해일은 "고생도 했지만 '명량'보다는 분명히 수월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찍을 때 처음 해봤죠. 크리처의 모습과 액션을 배우들이 상상해서 연기를 해야 했어요. 이번엔 해상 전투의 상황, 물길, 수세 등 여러 가지를 감안해야 했어요. 배우의 감정도 CG와 따로 놀지 않게 적절한 선을 끄집어내야 했죠. 감독님은 촬영 전에 동영상 콘티를 미리 만들어서 애니메이션 보듯이 구현해 주셨어요. 하나의 네비게이션처럼 매 순간 배우와 스태프들이 찾아나가는 경험을 처음 해봤죠. 큰 세트장이지만 최소한의 무대 세트를 가진 연극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실제로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완성된 장면의 압도감이 대단했고 허공에 대고 연기했던 것들이 살아 숨쉬면서 흘러가는 게 놀라웠죠. '명량'을 통해 얻은 노하우로 그때보단 수월하게 촬영한 것 같아요. '노량'은 아마 더 수월하겠죠."
언젠가 박해일은 대본을 보면서 어려운 신에 별표를 한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이와 관련해 '한산'에서는 그에게 '별표'를 받은 중요했던 신이 어느 것이었는지 물었다. 그는 이순신이 막상 해전에 나섰을 때보다도, 그것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을 펼쳐내는 데 온 힘을 쏟았음을 고백했다.
"이순신 장군이 도대체 이 전투를 어떻게 어떻게 이끌어가야 할 것인가 고민하는, 처소에서 꿈꾸는 장면이 있어요. 과거 전투가 꿈에 나타나서 거대한 벽에 맞닥뜨리고 학익진을 떠오르게 만드는 그 장면이 중요했죠. 그때의 이순신의 얼굴, 감정, 눈빛, '아 이거구나' 하고 떠올리게 하는 그 장면을 찍을 때 잘 해내고 싶었어요. 그 신이 전투로 연결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고리라고 생각했죠. 전투는 역시 '명량'보다 더 대단할 거라 의심치 않았기 때문에 제가 해내야하는 연기적 부분을 거기서 잘 해야하는 과제가 있었죠. 또 학익진 전법을 혼자 써내려가는 각 수군들의 포지션을 정하고 지략을 짜는 그 장면. 이순신의 그런 면이 또 '명량'과 다른 점이었죠."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한산: 용의 출현'에 출연한 배우 박해일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2022.07.21 jyyang@newspim.com |
'한산'에서는 박해일을 비롯해 배우 안성기, 손현주, 변요한 등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박해일은 왜군 수장 와카자키 역의 변요한을 언급하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존재 자체로 든든히 의지가 됐던 안성기, 자신만의 방식으로 선배 노릇을 톡톡히 해준 손현주 역시 잊지 못할 인연이다.
"상대 수장으로 변요한 씨가 캐스팅돼서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개인적으로 알진 못했지만 '목격자의 밤' 같은 다양성 영화, '보이스' '자산어보'에서도 연기가 참 좋았어요. 연기톤이 굉장히 날 것에 대한 기운이 느껴져요. 또 상대편은 일본어로 연기를 하니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기도 했어요. 그들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더 촘촘히 준비하고 다져야겠다는 자극도 받았죠. 상업영화를 안성기 선배님과 작업한 건 처음이었는데 한국 시네마의 상징적 배우를 만나길 고대했었죠. '무사'에서 안성기 선배가 활을 든 모습을 참고했었는데 잊을 수가 없어요. 정말 기분이 든든했고 손현주 선배님은 정말 담백하게 보고만 있어도 찰지게 연기를 해주셨어요. 리액션만 잘하면 되겠다는 게 저의 큰 숙제였죠."
'한산' 이전에도 박해일은 '남한산성' '최종병기 활' 등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이 어려움을 겪었던 사건을 담은 영화에 자주 등장했다. 그는 "인조 때, 또 선조 시대를 영화 속에서 겪었다"고 말하며 필모그래피를 돌아봤다. 그가 '이순신 영화'에 기꺼이 참여하고 승리의 역사를 관객들에게 펼쳐놓는 이유는 모두가 이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까닭과 다르지 않다. 알아야 하고, 또 무언가를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은 감독도 배우도 관객까지도 어쩌면 똑같다.
"어려운 시기, 위태로웠을 때의 시대상에 궁금함이 있나봐요. 이순신을 다룬 영화는 60년대부터 나왔고 드라마도 책도 셀 수 없어요. 앞으로도 나오겠죠. 잊지 말아야 할 역사를 여러 문화 콘텐츠로 계속 만들어내는 이유가 있을 거예요.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알려줘야하는 건 물론이고요. 광화문에도 이순신 동상, 또 통영에 가면 제승당이라는 이순신 장군 모신 곳이 있어요. 작은 섬들 사이에 있어서 공격해오기 힘든 천혜의 요새거든요. 많은 공직자들이 큰 일을 앞두고, 큰 의지를 갖고 간다고도 해요. 저도 아이들과 이순신 동상 앞에 갔던 적이 있고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다 아는 위인을 연기한다는 건 부담이었지만 지금은 마쳤고 어떻게 보시든 후회는 없어요. 이 작품을 준비하고 촬영하면서 한 경험이 배우로서도, 한 사람으로서도 살아가는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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