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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가문의 흑막] ④ 日 역사 교과서 왜곡, 아베로부터 비롯됐다

기사입력 : 2022년07월15일 10:19

최종수정 : 2022년07월19일 15:28

호소카와 총리의 '침략전쟁' 발언에 강력 반발
자민당 '역사검토위'에서 일하며 극우적 역사관 굳어져
'일본의 앞날과 역사 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 모임' 사무국장 맡으며 역사왜곡 주도

[편집자]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사망함으로써 한일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예상된다. 아베의 사망은 단순히 일본 보수우익 아이콘이 사라졌다는 사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본 자민당 최대 파벌 아베파와, 이의 지지로 자리에 오른 현 기시다 수상은 기존의 아베 노선을 따를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최근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선을 확보함으로써, 아베의 필생 숙원이었던 평화헌법 개헌론이 일본 정가를 점차 뜨겁게 데우고 있다. 일본은 과연 과거 군국주의로 회귀하는가. 일본 정가의 풍향계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아베 가문과 아베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이에 아베 가문과 일본 정치사의 흑막을 알아보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논설위원 = 아베 신조의 친할아버지는 아베 간(安倍寛, 1894~1946)이다. 서민 눈높이에 맞춘 정치를 펼친 사람으로 도리를 벗어난 권력의 전횡에 거역하고 전시 중에 반전을 외쳐 사후 70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인들에게 사랑받는 인물이다.

아베 신조 아버지 아베 신타로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 '리버럴 보수'를 추구하는 정치가가 되고자 했다. "내 아버지는 대단한 분이셨다"가 입버릇이었던 신타로는 평생 간의 아들인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아베 신조 친할아버지 아베 간의 1937년 중의원 선거 선전물. 빈부격차를 분노하고 실업자 대책의 필요성을 호소하며, 생활이 불안정한 근로자나 농가, 중소기업 경영자등을 배려하는 내용이다. 반면 대자본과 재벌 특권층에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2022.07.15 digibobos@newspim.com

그러나 아베 신조는 자신을 신타로의 아들이 아니라 기시의 손자라고 소개하기도 할만큼, 외할아버지 기시에 대해서는 경애심을 드러내는 한편 친할아버지 아베 간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 국회 의사록에 남겨진 아베 총리의 유일한 언급은 "할아버지는 아베 간이라는 분이다. 반(反) 도조 히데키 정권의 입장을 일관되게 지켜온 의원이었다"고 한 것뿐이다.

[아베 가문의 흑막] 글싣는 순서

1. 재일교포가 아베 父子를 키웠다 
2. 아베 가문과 통일교의 유착
3. 칼맞은 외할아버지와 총맞은 아베의 평행이론
4. 日 역사 교과서 왜곡, 아베로부터 비롯됐다
5. 아베는 이토 히로부미 '적자', '야마구치 정권' 끝나나
6. 日 평화헌법 개헌될까...한일 관계의 미래

아베의 극우적 이데올로기는 총리가 되기 이전에도 나타났다 종종 우파 논단에 등장해 좌익 비판과 편향된 역사인식을 보였다. 그러다가 제2차 내각 출범 1년 후인 2013년 12월 26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총리대신 이름으로 헌화를 하면서 자신의 색깔을 분명하게 노정했다.

아베는 언제부터 극우 이데올로기를 갖게 됐을까. 또 그 계기나 원인은 무엇일까. 사실 이 물음에 대해 정확히 답하기는 어렵다. 아베가 의원이 되기 전의 발언이나 사상, 신조에 대한 것은 거의 글로 남아 있지 않아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분명치 않다.

그러나 그 수수께끼는 부자 관계의 문제로부터 일단 풀어볼 수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 아버지 신타로는 보수이면서도 리버럴한 자세를 견지했다. 그런 정치적 자세는 재일교포들에게도 지지를 얻어 폭넓은 신뢰와 공감을 획득했다. 신타로에게는 아들 신조와 분명히 다른 덕목, 마이너리티에 대한 배려가 있었고, 결코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않는 정치적 균형 감각, 협량이나 독선에 빠지지 않는 넉넉한 품의 깊이가 있었다.

신타로는 평화헌법에 대해서도 옹호하는 자세를 보였다. 신타로를 따라 중앙 정계에 입문했고, 자민당 대표도 지낸 다케무라 마사요시(武村正義, 1934~)는 신타로가 "기본적으로 리버럴한 편에서 진정한 비둘기파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 활동에 쫓기던 신타로는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 아들과의 관계가 소원했다. 1954년 차남으로 태어난 신조는 "철이 들고부터 아버지가 놀아 주었다는 기억이 거의 없다"고 회상하고 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세이케이학원(成蹊学園)을 다닌 신조는 집 근처에 또래 친구들이 거의 없었고 형과 가정교사, 유모와 노는 일이 많았다.

그런 신조를 맹목적으로 사랑한 사람이 바로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였다. 특유의 노회함과 천운으로 A급 전범으로서의 소추를 면하고 권력의 정점에 올라, 맹렬한 비판을 받으면서도 미일안보조약 개정을 이끈 '쇼와의 요괴'는 휴식을 취하러 간 온천 숙소와 별장에서는 오로지 손자 신조에게 애정을 쏟는 자상한 할아버지였다.

그런데 친할아버지는 아베 신조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망했다. 아베 간은 중의원 시절 평화주의자로 반전 주장을 펴면서 도조 내각의 방침에 정면으로 맞섰다. 권력의 전횡에 모든 힘을 다해 항거하는 반골로 지역 주민의 존경과 애정을 받았다. 1942년 총선에서는 도조가 주도하는 대정익찬회(大政翼賛会)에 항거해 익찬회의 추천 없이 출마, 특고경찰 등의 혹독한 탄압과 감시를 받으면서도 당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패전 후인 1946년 4월 총선에서 일본진보당 출마를 준비하던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향년 51세.

따라서 아베 신조에게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일종의 '부재 상태'다. 할아버지는 아예 기억에 없고, 아버지는 같이 놀아주지 않았고, 친구도 거의 없다. 그런 '외로운 아이' 아베를 챙긴 것이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다. 그러니 아베 신조는 필연적으로 외가 쪽으로 기울어갔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기시 노부스케와 아베 신조(왼쪽). 기시는 손자와 잘 놀아주는 자상한 할아버지였다. 2022.07.15 digibobos@newspim.com

신조는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 그저 '평범한 아이(いい子)'로 이렇다 할 에피소드가 전무하다. 좋든 나쁘든 기존 질서에 대한 회의와 반발이 거세지는 소년기부터 청년기까지의 일화가 신조에게는 없다.

일본 언론들이 그가 다녔던 세이케이학원 동급생, 선후배, 교사들을 찾아다니며 물어보아도 돌아온 답은 판에 박은 듯 똑같다. 평범했다는 것이다.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고, 잘했던 스포츠도 없어서 더욱 그렇다. 그렇게 특별한 인상이 없었던 신조를 총리가 될 그릇으로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고교·대학시절의 아베도 마찬가지였다. 어디를 둘러봐도 젊은 나이에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정치의식을 키운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하물며 나중의 정치적 입장은 찾아볼 수도 없다. 기껏 엿볼 수 있는 것은 외할아버지 기시에 대한 경모뿐. 인간으로서의 본질이 공소(空疎), 공허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대학 졸업 후 신조는 낙하산으로 고베제강소(神戸製鋼所)에 입사해 무난히 일을 해냈지만 형이 정계 입문을 거부함에 따라 신조가 아버지의 비서를 맡게 됐다. 아버지 비서관이 된 신조는 열심히 아버지를 도왔다. 외무장관이던 아버지를 따라 해외출장도 자주 다녔다. 신타로는 총리 직전이었다. 그러나 1991년 암으로 병사(향년 67세)함에 따라 신조가 선거구를 물려받고 1993년 총선에 출마했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1987년 고향 야마구치에서의 아베 가족. 신타로 옆은 장남 히로노부(寛信) 부부, 오른쪽이 1987년 결혼 직후의 아베 부부. 부인 마츠자키 아키에(昭恵)는 일본 최초의 제과주식회사인 모리나가(森永) 제과 마츠자키 아키오(松崎昭雄) 회장의 딸로 두 사람은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가 중매를 섰다. [사진=데일리신초(デーリー新潮)] 2022.07.15 digibobos@newspim.com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1993년 8월 초선 의원에 당선되고 뱃지를 다는 아베 신조 [사진=지지통신(時事通信)] 2022.07.15 digibobos@newspim.com

1993년은 격동의 해였다. 리크루트 사건 등의 부패 스캔들로 정치 개혁의 기운이 높았다. 선거 결과는 자민당이 과반에 훨씬 모자라는 패배로 8월 9일 야당 세력이 결집하는 호소카와(細川) 내각이 성립했다. 그 5일 전에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가장 전향적으로 사과한 '고노(河野)담화'가 나왔다.

총선은 자민당 패배로 정권을 잃었지만, 이 선거에서 신조는 초선 의원이 됐다. 여기서부터 신조의 우파 이데올로기에 대한 급진전, 급접근이 시작된다. 8월 10일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1938~) 총리는 취임 후 첫 기자 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호소카와 총리는 태평양전쟁에 대해 "나 자신은 침략전쟁이었던, 잘못된 전쟁(間違った戦争)이었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그릇을 빚는 호소카와 전 총리. .호소카와는 유명한 도예인으로 한국에 와서 도자기를 배우기도 했고, 몇년마다 개인 도예전시회를 연다. 2022.07.15 digibobos@newspim.com

호소카와 총리는 나중 《주간 아사히(週刊朝日)》(2010년 8월 21일호)와의 인터뷰에서 이 발언의 배경에 대해 다음처럼 말했다. 매우 중대한 내용이므로 중요 대목을 게재한다.

"나의 (외)할아버지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麿, 1891~1945) 전 총리는 돌아가시기 전날 밤 유서를 남겼는데, 그 내용 중에 중일전쟁의 확대, 인도차이나 침공은 자신의 정치적 오류였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지난번 세계대전은 침략전쟁이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발언이다"

"당시 그 책임을 맡은 사람이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 그 말은 무겁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차원에서 (내가) 수상에 취임한 1993년 8월의 첫 기자회견에서 기자질문에 '지난번 세계대전은 침략전쟁이고, 잘못된 전쟁이었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총리로서 처음으로 말했다. 내가 말하지 않았다면 무라야마(村山) 담화도 고이즈미(小泉 ) 담화도 거기까지 깊이 파고들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전까지 역대 총리들은 전쟁을 통해 막대한 손해를 끼친 것에 대한 진지한 반성의 마음을 기술하고 있었지만, '침략'에 대해서는 정권의 내외에서 어금니에 무엇이 낀 듯 석연치 않은 발언이 반복되어왔다. 그러나 나는 명확한 역사 인식을 보여줌으로써 인근 국가들이 대일 불신을 씻어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있었다"

"아베가 전후 70년 담화를 낸다고 하는데, 내 생각은 매우 간단하다. 무라야마와 고이즈미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면 된다는 것이다. 내 발언이나 무라야마 담화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그 정신을 해치는 것이라면 그것은 해로운 것이 될 것이다. '침략'이나 '식민지'라는 몇 개의 키워드를 계승해 가지 않으면, '미래 지향'이라고 말해도 의미가 없다... 일본과 한국,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평화우호 이외의 선택지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호소카와 총리의 발언에 강력 반발한 자민당은 8월 23일 당내에 '역사검토위원회(歴史検討委員会)'를 설치하고, 10월 15일 제1차 위원회를 개최했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취지'를 발표한다.

"호소카와 총리의 '침략전쟁' 발언이나 연립정권의 '전쟁책임 사죄 표명' 의도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쟁에 대한 반성의 명분으로 일방적인, 자학적 사관의 횡행은 간과할 수 없다. 우리는 공정한 사실에 근거한 일본인 자신의 역사관 확립을 긴급 과제로 확신한다"

이 취지는 또한 일본의 역사인식은 "점령정책과 좌익편향에 입각한 교육"에 의해 부당하게 왜곡되고 있다며, "이래서는 아이들이 자기 나라의 역사에 자부심을 가질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일방적으로 일본을 단죄하고 자학적인 역사인식을 강요하는 범죄적 행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도 말하고 있다.

현재 일본이 역사교과서에서 침략전쟁이라는 사실을 지우고, 독도를 자신의 영토라고 기재하는 과거사 왜곡 행위의 출발점이 바로 여기다. 이 같은 극우적 역사관을 강조하는 위원회에 초선의원 아베 신조가 참여했다. 그러니 아베 신조의 역사 인식은 자민당의 야당 시절에 역사검토위원회에 참여하면서부터 생성되기 시작했다고 봐야 한다. 이는 지금까지 어떤 국내 어떤 데서도 밝혀지지 않은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아베 신조의 발언이 처음 기록된 것은 1994년 4월 21일에 열린 제9차 위원회다. 여기서 신조는 일왕이 진주만 공격의 위령 시설인 애리조나 기념관에 헌화를 예정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 그리고 이런 일왕의 행동이 호소카와 총리의 '침략 발언'과 같은 '일련의 흐름'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낸다. 채 일 년도 지나지 않아 그가 급속히 우파적 가치관으로 기울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뒤 1997년이 되면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가 대표를 맡는 '일본의 앞날과 역사 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 모임(日本の前途と歴史教育を考える若手議員の会)'이 발족하고 신조가 사무국장에 취임한다. 여기서 그의 우파적 역사인식은 결정적으로 굳어졌다. 그리고 그의 이런 사고의 뿌리는 바로 외할아버지, 진주만 공습이 침략이 아니라 자위행위였다고 주장한 기시였다.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의 전위를 담당하고 나선 우익단체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新しい歴史教科書をつくる会)'이 같은 해인 1997년 결성된 것도 매우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이는 결국 자민당의 역사 모임과 긴밀하게 행보를 맞추고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아베의 자민당 '역사검토위원회' 참석은 급격한 극우 성향으로 기우는 계기가 됐다(왼쪽 사진은 역사검토위 위원 일람). 오른쪽은1997년에 결성한 우익단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에서 만든 역사왜곡 교과서. 2022.07.15 digibobos@newspim.com

이 모임은 '후소샤(扶桑社)'를 통해 《개정판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출판하였는데, 난징 대학살을 '난징 사건'이라고 바꾸어 부르고, '위안부'라는 용어를 계속 사용하는 등 일제 시절의 전시 활동을 빠뜨리거나 축소하고 있다. 또한 독도와 센카쿠 열도, 쿠릴 열도 남단 4개 섬의 영유권을 강조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오늘날 일본 역사 교과서 과거사 왜곡의 시발은 바로 아베가 참여한 '역사검토위원회'다. 이후 '일본의 앞날과 역사 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 모임'의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아베는 혐한론의 선봉이자 예봉(銳峰)이 됐다. 아베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도 정한론 주장의 태두 격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다.

digibobo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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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동행카드, 고양·과천도 30일부터 [서울=뉴스핌] 이경화 기자 = 서울시는 '기후동행카드'가 오는 11월 30일 첫 차부터 고양시와 과천시까지 서비스를 확장한다고 21일 밝혔다. 이로써 서울~고양~과천을 오가는 시민들도 월 5만~6만원대로 기후동행카드의 무제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지난 1월 27일 서울 지역을 대상으로 출발한 기후동행카드는 3월 30일 김포골드라인, 8월 10일 진접선·별내선까지 확대됐다. 서울 공동생활권인 인구 100만의 대규모 도시 고양시와 지리적으로 서울시와 경기남부의 길목에 위치한 과천시까지 연결됨에 따라 수도권으로 본격 확대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시는 기대한다.  서울 외 지역 기후동행카드 이용 가능 도시철도 구간 [이미지=서울시] 서울시와 고양시, 과천시는 지난해 2~3월 기후동행카드 참여 업무협약을 체결한 이후 후속 논의를 통해 구체적인 시행방안을 마련하고 11월 30일 고양시(3호선·경의중앙선·서해선), 과천시(4호선)의 기후동행카드 참여를 확정지었다. 관계기관들과 함께 시스템 개발·최종 점검을 완료했다. 이번 확대로 3호선은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역에서 서울시 송파구 오금역까지 모든 역사(44개)에서 기후동행카드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경의중앙선은 고양시 일산서구 탄현역에서 구리시 구리역까지 34개 역사, 서해선은 고양시 일산서구 일산역에서 서울시 강서구 김포공항역까지 7개 역사, 4호선은 남양주시 진접역에서 과천시 정부과천청사역사까지 34개 역사에서 기후동행카드를 이용할 수 있다. 이에 더해 현재 기후동행카드 서비스 범위에 이미 고양시를 경유하는 서울 시내버스 28개 노선과 과천시를 경유하는 6개 노선이 포함돼 있음을 고려하면 서울과 고양·과천을 통근·통학하는 약 17만 시민의 이동 편의가 더욱 증진될 것으로 보인다.  또 이용범위가 대폭 확대되면서 과천·고양 등 시민들도 기후동행카드의 다양한 문화 혜택을 동일하게 누릴 수 있다. 과천시 4호선 확대로 대공원역도 기후동행카드를 이용할 수 있는 만큼 방문 시 서울대공원 50% 할인 등 혜택을 참고하면 된다.  기후동행카드는 올해 1월 23일 서비스 시작 이후 70일 만에 100만 장이 팔리는 등 시범사업 단계부터 큰 호응이 확인된 바 있다. 7월부터 본사업에 들어가면서 청년할인권·관광객을 위한 단기권 등 다양한 혜택이 더해졌다. 평일 최대 이용자가 65만명이 넘어가는 등 인기가 지속되고 있다. 서울시는 고양·과천 지하철 적용을 시작으로 수도권 시민들에게도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할 수 있도록 관련 협의·시스템 개발 검토를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향후 기후동행카드의 무제한 확장을 위한 타 경기도 지자체와의 논의 역시 급물살을 탈 것으로 기대된다고 시는 덧붙였다.  기후동행카드를 이용하려면 안드로이드 기반 휴대전화에서 '모바일티머니' 앱을 무료로 다운받아 충전하면 된다. 실물카드는 서울교통공사 1~8호선 고객안전실, 지하철 인근 편의점 등에서 구매한 후 서울교통공사 1~8호선, 9호선, 신림선·우이신설선 역사 내 충전기에서 권종을 선택·충전 후 사용할 수 있다.  기후동행카드의 고양시, 과천시 확대 등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고양시(031-909-9000), 과천시(02-3677-2285), 서울시 120 다산콜센터로 문의하면 된다. 윤종장 서울시 교통실장은 "김포·남양주·구리에 이어 고양·과천 확대로 경기도 동서남북 주요 시군까지 기후동행카드의 무제한 대중교통 혁신이 이어지고 있다"며 "교통비 절감·생활 편의·친환경 동참 등 일상 혁명을 수도권 시민들까지 누릴 수 있도록 수도권 지역 서비스 확대·편의 향상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kh99@newspim.com 2024-11-2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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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 회장, 시흥R&D캠퍼스 첫 방문 [서울=뉴스핌] 김아영 기자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지난해 5월 공식 출범한 한화오션 사업장을 처음 찾았다.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이 20일 '한화오션 중앙연구원 시흥R&D캠퍼스'를 방문했다고 밝혔다.  김승연 회장(가운데)이 한화오션 시흥R&D캠퍼스를 방문해 임직원들과 오찬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한화그룹] 현장을 둘러본 김 회장은 미국 등 글로벌 시장 선점을 위한 초격차 기술경쟁력 확보를 강조했다. 해양 탈탄소 시대를 선도할 그린십(Green Ship) 기술과 방산 기술 혁신으로 조선·해양 분야에서 지속가능한 글로벌 강자로 자리매김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이날 행사에는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김희철 한화오션 대표이사, 손영창 한화오션 제품전략기술원장도 참석했다. 김승연 회장과 김동관 부회장이 한화오션 시흥R&D캠퍼스의 상업용 세계 최대 공동수조를 방문해 시연을 지켜보고 있다.[사진=한화그룹] 한화오션 시흥R&D캠퍼스는 상업용 세계 최대 규모의 공동수조와 예인수조, 국내 유일의 음향수조 등 첨단 시험 설비를 갖추고 있다. 이를 통해 조선·해양·방산 분야 친환경 초격차 기술 개발을 선도하는 핵심 연구 거점이다. 기술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김승연 회장이 시흥R&D캠퍼스를 찾은 이유이기도 하다.  김승연 회장은 먼저 공동수조(Cavitation Tunnel)를 방문해 연구진의 시연을 지켜봤다. 상업용 세계 최대 규모의 한화오션 공동수조는 길이 62m, 높이 21m의 대형 터널로, 최대 출력 4.5MW 모터와 3600톤의 물을 통해 최대 15m/s의 유속을 형성할 수 있다. 특히, 선박의 추진력을 높이고 수중 방사 소음을 줄이는 연구 성과는 함정의 은밀성과 생존성을 강화하는 방산 기술 개발에도 활용되고 있다. 예인수조를 방문한 김 회장은 임직원들과 함께 수조 내 모형선을 끄는 예인전차에 탑승해 고품질 선박 성능 시험을 참관했다. 한화오션의 예인수조는 길이 300m·폭 16m, 담수량 3만3,600톤으로 세계 최대 규모 최신 시설을 자랑한다. 상선, 함정 등 다양한 선박의 저항, 운동, 조종 성능 등에 맞춤식으로 시험할 수 있다. 김승연 회장이 한화오션 시흥R&D캠퍼스 예인수조를 둘러본 후 임직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한화그룹] 김 회장은 이 날 임직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여러분은 한화그룹의 자산이자 대한민국 산업의 자산"이라며 "대한민국의 국익과 국격에 기여한다는 뜨거운 사명감을 갖고 연구에 임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더 밝게 빛날 한화의 미래에 조선해양 부문이 가장 앞에 서 있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한화 가족 모두는 우리 그룹의 일원으로서 함께 나아갈 한화오션의 미래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다. 여러분이 가진 무한한 잠재력과 기술 역량으로 새 시대를 선도해 나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승연 회장은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동일한 형상으로 축소된 프로펠러 모형을 제작하여 다양한 성능을 예측·평가하는 모형제작워크샵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이곳에서 김승연 회장은 한화오션이 수출형 모델로 독자 개발한 2000톤급 잠수함 모형에 'K잠수함 수출로 글로벌 No.1 도약을 기원합니다'라고 적고 친필 서명하며 해외 수출 성공을 기원했다. 한화오션의 2000톤급 잠수함은 현존하는 디젤 잠수함 중 최고로 평가 받는 장보고-III 플랫폼에 기반해 자체 개발한 중형급 잠수함으로 최신 기술과 다양한 요구사항을 적용한 모델이다. 김승연 회장은 직원 식당에서 임직원들과 오찬도 함께 했다.  김승연 회장이 한화오션 시흥R&D캠퍼스를 방문해 임직원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사진=한화그룹] 김 회장은 이 날 한화오션 임직원들에게 "한화는 여러분들이 마음껏 연구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거친 파도를 막아주는 든든한 방파제가 될 것"이라며 굳건한 신뢰의 뜻을 전했다. 한화오션은 시흥R&D캠퍼스의 첨단 인프라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해양 솔루션을 개발하고 미래 해양 산업의 변화를 주도하는 글로벌 오션 솔루션 프로바이더로 도약하기 위한 행보를 이어갈 예정이다.  aykim@newspim.com 2024-11-20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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