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 화려한 성공 이면엔 연구원 희생 감수
PBS 등 수탁사업 의존해야 하는 현실 '한숨'
임금피크제 적용에 연구의지 꺾인 연구원들
[세종=뉴스핌] 이경태 기자 = 터질 게 터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누리호의 화려한 발사 성공 속에서 연구원 인건비 문제가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만의 문제는 아니다. 과학기술 연구직 전반에 대한 인건비 불만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게 대부분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의 분위기다.
◆ 누리호 발사 이면에는 항우연 연구원들의 희생 있어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지난 21일 2차 발사에서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이번 발사 성공으로 우리나라는 7번째 우주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다만 누리호의 성공 발사에 이르기까지 연구원들의 희생도 적지 않았다. 문제는 인건비에 대한 희생이었다.
[서울=뉴스핌]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영상회의실에서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으로부터 '누리호(KSLV-Ⅱ)' 2차 발사 성공 보고를 받은 후 엄지 척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2022.06.21 photo@newspim.com |
항우연 노조측은 최근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2020년 결산기준으로 항우연 신입직원 초임 보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 25개 출연연 중 21번째이고 1000명 이상의 직원과 연 6000억 규모의 사업을 수행하는 주요 출연연 중에서는 최하위일 뿐 아니라 출연연 최고 수준에 비해 1000만원 이상 낮다는 점을 주장했다.
노조는 이어 "현재까지 항우연을 비롯한 연구개발목적기관의 특수성을 고려한 임금체계와 제도개선은 전혀 진전이 없다"며 "인건비 수권에 포함되지 못해 활용하지 못하는 기관이 수탁과제를 통해 확보한 사업 인건비를 임금이 상대적으로 낮은 기관의 특별임금인상과 시간외수당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조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여기에 달탐사사업단 소속 연구원들이 2019년 5개월 간의 총 연구수당 1억4238만7000원을 지급받지 못했고, 1심에서 원고 전부 승소했으나 항우연이 항소해 2심이 진행 중이다. 2심은 9월 6일 최종 변론을 남겨두고 있고 조만간 선고될 예정이다.
노조 관계자는 "누리호의 성공적인 발사와 달리, 이런 부분의 우주개발의 뒷면"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항우연 측은 노조와의 협의를 진행중이라고 전했다.
◆ 수탁사업으로 연명해야 하는 연구원들 '한숨'
과학기술분야 연구원들의 인건비에 대한 불만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었다. 정부출연금 비율이 각기 다른 상황에서 정부 및 민간 수탁과제에 인건비를 의존해야 하는 현실이 이들의 처우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29일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에 따르면 정부출연연구기관 25곳의 지난해 기관별 인건비 수입 등 결산 현황에서 출연연의 임금총액 한도인 인건비 수권은 2018년 1조2056억4300만원에서 2019년 1조3519억9600만원, 2020년 1조4164억2100만원, 2021년 1조4403억9000만원, 2022년 1조4725억9700만원 등으로 나타났다.
인건비 수권 자체적으로는 늘었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연구원들의 불만은 여전하다.
지난해 출연연의 인권비 수입 현황을 보면, 인건비 수입 중 정부출연금은 7505억6500만원, 정부수탁 5740억4300만원, 민간수탁 1455억9100만원으로 나뉜다. 정부출연금 51%, 정부수탁 39%, 민간수탁 9.9% 순이다.
인건비를 맞추기 위해서는 정부출연금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연구과제를 수탁해야 하는 부담이 커진다. 일부 출연연의 경우에는 실제 인건비를 집행한 뒤 남은 차액이 1억원 안팎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집행 후 차액이 낮은 순서대로 본다면 한국지질자원연구원 1000만원, 한국한의학연구원 7300만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1억원, 안전성평가연구소 1억원, 한국항공우주연구원 1억100만원,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1억4700만원 순이다.
NST 관계자는 "출연금 및 수탁 수입으로 인건비를 충당하고 있는데 인건비를 주지 않을 정도로 모자란다고 보긴 어렵다"며 "인건비 수권 대비 실 집행액이 낮은 상황에서 일부 반환하고 남은 상태여서 일부 기관의 차액이 적게 나올 수 있다"고 답했다.
차액은 각 기관의 연구개발 적립금으로 수용되는데, 차액이 적은 기관은 그만큼 재투자 여력이 그만큼 축소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출연연 한 관계자는 "연구과제중심제도(PBS)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연구현장에서는 외부 과제를 경쟁적으로 끌어와야 생존할 수 있는 구조가 돼 버렸다"며 "연구에 매진해야 할 연구원들이 외부 과제를 수탁해야 하는 영업맨으로 바뀌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도 과기부는 출연연의 연구성과가 미흡하다고 판단해 PBS에 대한 개선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분위기다. NST 이사장 자리를 3개월만에 박차고 나가면서 운좋게 과기부 수장에 오른 임혜숙 전 장관 역시 재임 기간동안 PBS에 대해서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놨다는 지적을 받는다.
한 출연연 연구원은 "정부는 성과를 내놓으라고 압박하고 현실은 과제를 따오느라 연구에 몰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이 얼마나 도약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또다시 선택과 집중으로 특정 분야에 대한 관심 속에서 비관심 분야는 외면을 받을까 우려된다"고 전했다.
◆ 임금피크제 도입에 연구의지 꺾인 고령 연구원
과학기술분야 연구원들의 인건비에 대한 불만은 임금피크제에서도 불거지고 있다.
지난달 26일 대법원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한 임금피크제 도입은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한국전자기술연구원(구 전자부품연구원) 퇴직자 A씨가 성과연급제(임금피크제)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을 위반해 무효라고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원심을 확정했다.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고령자고용법은 강행규정에 해당한다는 게 대법원의 생각이다. 이같은 임금피크제에 대한 불만은 출연연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지난달 31일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은 임금피크제 폐기를 강조하는 성명서를 냈다. 성명서에서 노조는 "2015년부터 줄기차게 임금피크제 지침 폐기를 주장해 왔으나 정권이 바뀌어도 지금껏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며 "정부는 비민주적이고 일방적으로 도입한 임금피크제를 당장 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임 연구원의 인건비 이외에도 퇴직을 앞둔 고령 연구원 역시 불만이 한가득하다.
고령의 한 연구원은 "사실상 초기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기반 마련에 열정을 쏟았던 것이 퇴직 무렵에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 배신감이 든다"며 "오랜 연구 경험을 토대로 후배 연구원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고 싶지만 위축된 상황에서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전했다.
임금피크제를 적용받은 뒤 퇴직한 출연연 연구원(정규인력 기준)은 2016년 88명, 2017년 116명, 2018년 200명, 2019년 194명, 2020년 276명, 2021년 285명 등 모두 1159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임금피크제가 폐기되지 않은 상황에서 고연차 연구원들은 제도를 적용받을 수 밖에 없다"며 "기관별로 퇴직후 재임용 등의 제도가 있으나 이미 연구에 대한 의지는 꺾인 상태여서 성과를 내기도 힘들다"고 지적했다.
과학기술계 한 원로는 "우리나라에 과학기술 분야 인재가 부족하다며 인재양성에 정부가 관심을 갖고 있으나 인재양성에 앞서 현직 연구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다"며 "과학기술인으로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길 때 인재들이 과학기술분야로 몰려들 것"이라고 전했다.
biggerthanseoul@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