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몰빵 아닌 적극적인 자산 다변화 필요한 시점
"위기 때는 대박 아닌 안전 수익 추구해야"
美 우량 회사채와 지방채 '인기'…관련 ETF에 시선집중
[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수익률 포착에 발빠른 월가 투자자들이 주식을 떠나 채권 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올해 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공격적인 긴축 속에서 주식과 더불어 채권 시장이 역대급 손실을 냈지만 그만큼 가격이 저렴해졌고, 인플레이션보다는 경기 침체 가능성을 염두에 둔 헤지 수단으로써 채권 매입 필요성이 커졌다는 판단 때문이다.
연준의 과도한 통화긴축이 경제 위축을 불러올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 경우 시장금리의 하락 압력은 커지므로 시장금리가 정점 부근으로 판단되는 지금이 국채를 사들일 적기라는 논리다. 전문가들은 TINA(There Is No Alternative, 미국 주식 말고 대체 자산이 없다) 시대는 이미 막을 내렸다며, 익숙한 주식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자산 다변화로 앞으로의 어려운 상황에 맞설 것을 주문하면서 채권이 가장 적절한 대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대표적인 '안전 자산'인 채권은 주식처럼 대박을 기대하고 투자하는 자산은 아니다. 주식과 달리 만기까지 보유하면 어느 정도의 소득을 기대할 수는 있지만 테슬라 초기 투자자들이 누린 것 같은 급격한 부의 증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채권은 당신을 부자로 만들어 주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가난해지지 않도록 당신을 보호하면서 그 중간에 일부 소득을 지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티 로 프라이스(T. Rowe Price)의 세바스찬 수석 투자책임자(CIO)도 최근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국채는 안전하고 주식과 다른 자산이 하락할 때 보험과 같은 기능을 제공한다"며 "채권의 기대 수익이 적고 과거처럼 다변화의 이점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안전 자산에 대한 선호가 극도로 치닫는 위기 속에서는 수익을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달러화 [사진=로이터 뉴스핌] 2022.06.08 kwonjiun@newspim.com |
◆ "채권시장 바닥 찍었다" 한 목소리
전문가들은 40년간 가장 빠르게 치솟는 인플레이션이 진정 기미를 보이면 결국 채권 금리의 추세적 방향도 반전할 것으로 판단하는 분위기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투자 노트에서 "우리는 현재 10년물 미 국채 수익률이 채권 매수에 나설 적절한 수준으로 보고 있다"며 "인플레이션은 이번 분기 정점을 찍을 것이고 2023년까지 꾸준히 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노무라 애셋 매니지먼트의 디키 허지 채권 펀드 매니저는 금리가 오르면서 장기채를 조금씩 담고 있다면서 "금리 고점을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중앙은행들은 현 수준에서 금리를 너무 많이 올리면 경기가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도이체방크의 스테파니 홀츠-옌 CIO는 "인플레이션 정점을 확인하면 중앙은행의 반응함수 및 공격적 긴축을 반영하는 정도가 정점에 이를 것이고 (채권) 손실도 되돌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장에서는 이미 반등 신호가 나오고 있다.
지난달 31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등급 채권시장은 지난 한 달 1% 가량 상승했다. 투자등급 채권이 월간 기준으로 상승한 것은 2021년 7월 이후 처음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 국채 시장은 지난해 11월 이후 최대 상승을 기록했다.
5월 글로벌 회사채 시장이 지난해 7월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을 나타낸 가운데 멕시코부터 말레이시아까지 이머징마켓 국채시장이 오름세로 돌아섰다. 시장 전문가들은 각국 중앙은행의 과격한 매파 정책으로 인해 경기 침체 리스크가 높아진 데 따라 채권시장으로 자금이 몰리고 있다고 해석했다. 더불어 금리인상 리스크가 채권시장에 충분히 반영됐다는 공감대가 투자자들 사이에 형성된 상황도 5월 반전의 배경으로 지목됐다.
[뉴스핌 Newspim] 홍종현 미술기자 (cartoooon@newspim.com) |
월가의 투자은행(IB) 업계도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JP모간 애셋 매니지먼트와 모간 스탠리, 핌코 등이 최근 투자 보고서를 내고 일제히 글로벌 채권시장의 투매가 종료됐다는 진단을 내렸다.
물론 저가매수론자들도 국채 금리가 단기적으로 추가 상승할 여지는 있다고 본다. 보통 10년물 금리는 명목금리를 의미하고 이는 10년물에 내재된 기대인플레이션(BEI)과 실질금리 대용 지표인 동일 만기 물가연동국채(TIPS) 금리의 합으로 구해지는데, BEI와 TIPS 금리 모두 최근 한 달 동안 정체된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추세 자체는 위를 향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 금리 수준은 투자하기에 매력적이라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예로 주식과 비교했을 때 3%를 기록한 미국 10년물 금리는 S&P500 배당수익률(트레일링; 올해 1분기까지 12개월 동안 지급된 배당액 기준) 1.37%보다 1.5%p이상 높다. 배당수익률을 포워드(현재 분기 포함한 향후 12개월 예상치)로 봤을 때는 그 격차가 2011년 이후 11년 만에 최다 수준이다.
앞서 코로나19 사태 때는 '제로(0)' 금리와 양적완화(QE) 등 연준의 이례적인 부양 조치로 시장금리가 크게 하락해 배당수익률이 국채 금리보다 높았지만 올해 들어서는 시장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주식의 상대적인 묘미가 떨어지는 한편 채권의 매력도는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TD증권의 제나디 골드버그 선임 금리 전략가는 "장기적인 시각에서 10년물 금리 3%는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며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자 다수가 매수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가 있다면 내일 금리가 추가로 올라 더 매력적으로 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뉴스핌 Newspim] 홍종현 미술기자 (cartoooon@newspim.com) |
◆ 미국 우량 회사채 "싸도 너무 싸"
채권 중에서도 투자 등급의 미국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가 유망 자산으로 떠오르고 있다.
투자 등급의 일명 '고퀄' 회사채는 연준의 대차 대조표 축소 및 금리 인상 신호 이후 대규모 매도세로 신음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줄도산 위기가 불거졌던 2008년과 현재 상황은 매우 다르고, 지나치기에는 너무 좋은 가격대로 내려왔다면서 우량 회사채 매수를 추천 중이다.
브레킨리지 캐피털 어드바이저스의 닉 엘프너 리서치 공동 책임자는 엘프너 책임자는 "2009년에는 은행업종의 신용 위험과 신용등급 강등, 상환 능력 위험이 반영됐었다"면서 "지금은 반대다. 등급 상향이 하향보다 많고 기업들은 풍부한 유동성을 들고 있으며 이자보상비율도 높다"고 강조했다.
KKR의 크리스 셸든 회사채 담당 공동 책임자는 경기 순환 주기 전환에 덜 노출된 기업들의 채권을 선호한다면서도 "다만 다소 불편해지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며 "시장은 계속 고르지 못한 길을 걸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변동성이 지속하더라도 신념과 펀더멘털(기초체력)에 집중하면서 기회를 찾으라는 것이다.
BofA의 회사채 담당 분석가들 역시 회사채 시장에서 매도세가 당분간 지속하더라도 이 시점에서는 위험을 감수해 기회를 노릴 것을 추천했다.
개인투자자의 직접 거래가 가능한 투자적격 회사채 상장지수펀드(ETF) 중에는 '아이셰어스 아이복스달러 투자등급 회사채 ETF(LQD)'가 추천 대상에 올랐다. LQD는 '마킷아이복스USD리퀴드투자등급지수'를 추종하는 상품인데 관련 지수를 통해 달러화 표시 투자적격 회사채에 투자한다. 보유 상품 및 채권 수는 2500개가 넘는다. 운용자산 규모는 330억4000만달러, 운용보수율은 0.14%다. 실효듀레이션은 9.3년이며, 올해 들어 14.8% 손실을 냈다.
또 저가 매수 관점에서 투자를 고려해 볼 만한 대표적인 상품으로는 아이셰어스 아이박스 달러 인베스트먼트 그레이드 회사채 ETF(LQD)가 있다. 또 아이셰어스 AAA-A 레이티드 회사채 ETF(QLTA)도 추천 대상에 올랐다. 모간스탠리와 JP모간, 뱅크오브아메리카, 골드만삭스, 씨티그룹, 웰스파고와 같은 대표적인 미국 은행이 발행한 회사채는 물론 애플과 아마존과 같은 우량 기업의 채권으로 구성돼 있으며, 운용자산은 11억8700만 달러, 운용보수율은 0.15%다.
◆ 美 지방채 시장도 '후끈'
금리 상승으로 인해 한파를 냈던 미국 지방채 시장에 매수 열기도 뜨겁다.
시장 조사 업체 리피니티브 리퍼에 따르면 5월25일 기준 한 주 사이 미 지방채 ETF로 18억달러에 달하는 자금이 유입됐다. 이는 2022년 초 이후 주간 평균치를 네 배 웃도는 금액이다. 지방채 뮤추얼 펀드에서는 자금 유출이 지속됐지만 매도 규모가 3월 이후 최저치로 둔화됐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지방채 시장은 5월18일 이후 2.9%의 수익률을 냈다. 금리 인상기 쿠폰 금리도 같이 올랐지만, 가격 하락은 앞으로 제한될 것이라는 기대가 부각된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말 이 같은 미국의 지방채 거래는 지난 2020년 팬데믹 이후 최대 규모로 늘었다. 웰스파고 코포레이트 앤드 인베스트먼트 뱅크의 크리스토퍼 리 지방채 세일즈 책임자는 "세금이 면제되는 수익률이 4%가 넘어 사람들이 이 자산에 다시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시장 상황이 크게 개선되면서 자산운용사들은 분주한 모습이다.
월가 최대 규모의 지방채 채권 펀드 업체인 누빈은 2021년 여름 이후 신규 고객 모집을 중단했던 펀드를 다시 개방하기로 했다. 2022년초 이후 지방채 시장이 7.99%의 손실을 기록한 사이 '바겐 헌팅' 기회가 발생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계절적으로 여름철부터 투자자들이 비과세 혜택이 주어지는 지방채를 적극적으로 사들이기 시작한다는 점도 투자자들이 '입질'에 나서는 배경으로 꼽힌다. 4조달러 규모의 지방채 시장에서 연초 이후 400억달러에 달하는 펀드 자금이 빠져나갔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반전을 예상하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2007년 블랙록이 출시한 아이셰어스 내셔널 뮤니 본드 ETF(MUB)를 추천한다. 총 운용 자산 규모가 290억달러에 달하는 펀드는 1200여개 지방채를 포트폴리오에 편입했다. 미국의 인프라 투자 확대를 겨냥해 지방채 전반의 상승 흐름에 베팅하는 데 적절한 상품이라는 분석이다. 연초 이후 펀드는 6%를 웃도는 손실을 기록했지만 최근 1개월 사이 1.47%의 수익률을 올리며 턴어라운드를 이뤘다.
면세 혜택을 극대화하는 데 중점을 두는 뱅가드 비과세 본드 ETF(VTEB)도 인기몰이다. 2015년 출시된 펀드는 1개월 거래량이 945만주에 달했다. 운용 자산 규모가 166억달러로 집계된 펀드는 연초 이후 약 7%의 손실을 기록한 반면 최근 1개월 사이 1.33%의 수익률을 올렸다. 이 밖에 2007년 출시된 스테이트 스트리트의 SPDR 누빈 블룸버그 뮤니시펄 본드 ETF(TFI)도 최근 반등에 성공했다. 자산 규모 43억달러를 웃도는 펀드는 연초 이후 약 9%의 손실을 냈지만 최근 1개월 사이 1.66%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