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배우 윤여정이 애플TV+ 오리지널 '파친코'로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이민자들의 삶과 애환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본다. 미국 제작진, 애플이 주목한 한국의 아픈 역사와 자이니치(재일교포) 여성의 한 세월을 그려냈다.
윤여정은 18일 온라인 화상 인터뷰를 통해 '파친코'에 출연하고 오는 25일 전 세계에 선보이게 된 소감을 말했다. 인터뷰에는 극중 선자의 손자 솔로몬 백 역을 맡은 배우 진하가 함께 했다. 영어와 한국어를 오가며 진행된 인터뷰는 미국에서 작품을 선보이게 된 두 사람이 걸어온 여정만큼이나 차별화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파친코'에 출연한 배우 윤여정 [사진=애플TV+] 2022.03.18 jyyang@newspim.com |
'파친코'는 동명의 미국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시리즈로 수 휴 총괄 프로듀서가 각색을 하고 재일교포, 재미교포, 한국인, 일본인 등 다양한 국적의 배우들이 참여했다. 1900년대 초반 일제강점기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지 역동의 시대를 살아온 주인공 선자의 인생을 관통하며 이민자들과 가족, 또 여성들의 극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애플이 시리즈로 각색한단 판권을 샀다는 소식을 접하고 원작 소설을 읽었어요. 오래 전부터 친구들이 추천해줬었지만 약간 너무 개인적으로 느껴지거나 감정적으로 읽기 힘들까봐 망설임이 있었죠. 책장을 넘기면서 제가 틀렸음을 깨달았고 집어삼키듯이 빠른 시간에 이걸 다 읽었어요. 사실 일본어를 못해서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을 거라 생각 못했었죠. 특히 애플에서 이 작품을 만들어서 기뻐요. 자이니치 커뮤니티에 대한 이야기가 이전에 많지 않았고 이정도 수준으로 다룬 적이 없었거든요."(진하)
"사실 선자가 저희 엄마세대 이야기예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스크립트를 받았으니 경험상 당연히 하는 거라 생각했었죠. 각색을 해서 그런지 그녀의 강인함과 살아남아야 하는 정신에 감동했고, 내가 잘할 수 있겠다 싶어 하겠다고 했어요. 2일 만에 단숨에 읽을 정도로 좋았죠. 근데 오디션을 보라는 거예요. 감독은 그냥 와서 한번 읽어봤음 좋겠단 뜻이었지만 이 일을 오래했는데 한국인들에게 오디션이란 단어가 익숙진 않잖아요. 윤여정이 오디션 봐서 떨어졌대 하면 내 50년커리어를 이 한 역할 때문에 잃을 수는 없어서 못하겠다고 했죠. 영어로는 또 내가 세게 말하는 편이기도 하고 스크립트 온 걸 버릴 지경이었어요. 그랬더니 아니라고 하자고 해서 하게 된 거예요."(윤여정)
영어와 한국어로 병행되는 인터뷰에서도 윤여정 특유의 직설 화법은 빛을 발했다. 진하 역시 시종일관 웃으며 그의 말을 받았다. 극중 솔로몬과 선자 역으로 열연한 이들은 부모 세대, 또 자식-손자 세대가 직면하는 오해에 관한 장면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서로의 말에 깊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윤여정이 일본어 대사를 준비하는 과정을 들으면서는 모두가 웃음이 터지면서도 그의 여전한 열정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부모세대 같은 경우엔 자식에게 가장 좋은 걸 주기 위해 희생으로 결정했지만 자식이나 손자 세대에서는 '왜 이런 일을 내게 겪게 했느냐'는 두 세대의 다른 입장이 담긴 것 같아요. 자식 세대를 위해 하는 부모의 결정과 희생을 잘 이해 못하고 오해해서 펼쳐지는 상황들이 있는 거죠."(진하)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파친코' 스틸컷 [사진=애플TV+] 2022.03.18 jyyang@newspim.com |
"부모들은 다 그렇잖아요. 좀 나은 세상을 살게 해주려고. 자이니치로 사는 게 싫어서 너는 다른 세상에 가서 살아라 하고 보낸 거죠. 촬영 땐 그 상황이 힘들긴 했어요. 일본어 하나도 못하는데 대사를 했더니 오사카 방언이 아니라 도쿄 방언이라는 거예요. 나는 틀릴 때 제일 당황해요. 한국인 의상팀이 머리를 써서 적어서 보여줬어요. 층계를 올라가면서 하려니 또 눈이 너무 나빠서 안보여요. 굉장히 고문이었어요. 술 먹고도 연습하고 혼자 베란다에 나가서도 해보고 한국말로 뜻을 넣어서 감정을 담아서도 해보고. 연습을 해서 제 아들 역 소지하고 가호 상 앞에서 어떠냐 물으니 소지가 우는 거예요. 너무 정확히 우리 할머니 말투라고. 말을 모르니까. 배우는 대사가 가장 중요해요.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게 대사인데 그걸 남의 나라 말을 모르는 상황에서 심각한 신을 하려니 힘들었죠."(윤여정)
전작 '미나리' 이후 한국의 격변의 시대상,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윤여정은 '파친코'를 통해 OTT 시리즈에 처음 도전했으며 일명 '미드'에도 진출하게 됐다. 이와 관련해 그는 "그냥 이 역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지 미드든 한드든 별 상관은 없다. 그 역을 어떻게 해석해서 내가 하느냐만 열중한다"고 심플하게 답했다.
"OTT인지 이런 것도 사실 잘 몰라요. 굉장히 좁은 시야를 갖고 있는 늙은 여인이고 50년 넘게 해서 이것밖에 할 줄 몰라요. 그냥 제 방식으로 어떻게든 해내는 게 미션이지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죠. 현장에서는 한국 사람들이 일 잘한다 싶었어요. 우리는 굉장히 일이 빠르게 진행되고 눈치가 있잖아요. 부르러 오는 사람이 내가 무슨 신 찍는지 이미 다 알아요. 근데 여긴 너무 큰 프로덕션이라 서너명쯤 거쳐서 오고 상황을 몰라요. 한국사람은 눈치가 대단하니까 어디 가서도 성공하겠다 싶어요. 욕이 아니라 다른 거죠. 서양은 눈치가 없으니까 한국에서 일하는 게 훨씬 편하긴 해요. 한국에선 저 늙은여자 언제 불러야 좋아할지 고려해주니까요. 여기선 내가 노바디예요. 미안하지만 애플이라면 아주 욕을 얼마나 했는지 몰라요.(웃음)" (윤여정)
윤여정은 이같은 상황을 일본 배우들에게도 물어봤다며 "일본 배우들은 집에 간다더라"면서 또 한차례 큰 웃음을 선사했다. 진하 역시 "서둘러 그리고 기다려"가 미국에서 영화, 드라마 찍는 이들이 늘 하는 말이라고 덧붙였다. 쉽지만은 않은 현장이었지만 '파친코'가 공개되고 난 뒤 각종 외신들의 호평이 쏟아지면서 모든 배우들의 노고는 모두 해소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파친코'에 출연한 배우 진하 [사진=애플TV+] 2022.03.18 jyyang@newspim.com |
"다루는 주제가 너무나 보편적이고 전세계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얘기라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역사적으로 강제점령기를 거친 나라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동시에 한 가족을 이루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 만한 감정이죠. 모든 선자들, 모든 모자수, 모든 가족의 솔로몬의 이야기니까요. 제 가족에 있는 여러 솔로몬 중에 한 명이 저이기도 하고요. 작품 속 모든 상황이 구체적이고 인간적이고 모든 사람에게 공감이 가는 면이 있어서가 아닐까 해요."(진하)
특히 윤여정은 '파친코'를 통해 극중 선자에게 깊이 감명받고 매료됐음을 털어놓았다. 일제강점기와 동떨어진 현재의 우리나라 국민들도 잘 모르는 자이니치의 삶과 격동의 세월을 접하고 놀라고, 안타까웠던 마음도 얘기했다. 윤여정은 그 세월을 50년간 해왔던 연기를 통해 늙은 얼굴에 담고 싶었던 이유를 천천히 설명했다.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담겼죠. 자이니치의 존재와 삶에 역사적인 배경이 있잖아요. 부모님 세대는 나라와 언어를 잃은 걸 굉장히 부끄러워했을 것 같아요. 그걸 빠르게 극복하느라고 우리 나라에서도 동떨어져버린 사람들이죠. 전에는 몰랐어요. 작업하면서 자이니치 친구들 만나면서 너무 울컥하는 순간이 많았어요. 나라를 잃고 점령당했던 과거가 이렇게 오래도록 영향을 끼치는구나. 평소에 역할 외적인 것에 포커스를 두는 편은 아닌데도 이 역을 잘했다 싶어요. 그 여자의 역사를 내 늙은 얼굴에 표현할 수 있어 좋은 기회였죠. 그 여자는 선택을 했어요. 한 남자의 정부로 한국에서 편히 살 순 있었지만 그렇게 살 수는 없다면서 일본으로 건너갔죠. 그건 끼끗한 선택이에요. 극복도 비굴하게 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선자는 끼끗해요. 품위와 존엄을 지켰죠. 그렇게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을 표현하고 싶었고 그 여자들을 대표해서 보여주고 싶다고 굉장히 오랜만에 생각했어요. 아마 한국 사람이라서 그랬나봐요. 이건 배우거나 가르쳐서 아는 게 아니고 어떤 깊은 데서 나오는 게 맘을 음직였죠. 존엄성을 지키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어요."(윤여정)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파친코'에 출연한 배우 윤여정 [사진=애플TV+] 2022.03.18 jyyang@newspim.com |
미국에서 뮤지컬 '해밀턴'과 드라마 '데브스' '러브 라이프'로 활동한 진하는 한국에선 아직 낯선 얼굴의 배우다. 그는 '파친코'가 스스로에게 왜 의미있는 작품인지를 설명하며 향후 스티븐 연처럼 한국 작품에서도 활약하길 바라는 마음을 드러내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2016년 뉴욕대 연기로 석사를 받고 연기를 시작했는데 대부분 공연을 했어요. 브로드웨이에서 '해밀턴'을 2주 전까지 올렸고 '데브스' '러브 라이프' 이후에 드라마는 '파친코'가 세 번째예요. 저와 제 가족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죠. 아버지는 일본어, 한국어를 하시고 영어를 조금 하시는데 제가 출연한 작품 중에 아버지가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첫 드라마예요. 그동안은 자막으로 보셔야 했지만 이번엔 완전히 이해하실 수 있죠. 우리 아버지 입장에서, 또 아버지 부모님 세대도 가까이 느낄만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그 여정에 함께할 수 있어 너무나 큰 자부심을 느끼고 정말 운이 좋았죠. 스티븐 연의 '옥자' '버닝' 등의 작품을 좋아하는데 저도 한국에서 활동하고 싶고, 그걸 목표로 삼고 싶어요."(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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