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적분할과 재상장, 신속한 자금마련과 투자에 효과
반도체·배터리 등 '쩐의 전쟁'...투자 적기 놓치면 도태
소액주주 보호방안 마련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무한경쟁 시대에 돌입한 기업들의 생존 전략은 투자다. 최대한 많은 금액을, 가장 빠르게 투자하는 쪽이 그 시장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배터리 같이 하루가 다르게 새 기술이 나오는 성장 단계의 산업에서는 말 그대로 '쩐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반도체 산업설비 투자는 지난해 보다 24% 증가한 229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특히 상위 13개 반도체 기업들이 투자하는 금액만 111조원. 여기에 파운드리 절대강자인 대만의 TSMC가 올해 투자하는 금액만 50조원이다. 경쟁사인 삼성전자나 인텔이 이와 비슷한 규모의 투자를 하지 않고선 TSMC를 따라잡을 마땅한 방법이 없다.
삼성과 인텔이 경쟁적으로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이유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서울=뉴스핌] 김민지 기자 = LG에너지솔루션 공모주 일반 청약 마지막 날인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KB증권 종로지점에서 고객들이 청약 상담을 받고 있다. LG엔솔은 지난해 4월 SK아이이테크놀로지 청약 증거금 80조9017억원을 넘어서 역대급 기업공개(IPO) 기록을 세울 것으로 보이며, 상장 예정일은 27일이다. 2022.01.19 kimkim@newspim.com |
배터리 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배터리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과 함께 우리나라 핵심 산업 중 하나로, 급성장하는 중국업체와 패권다툼을 벌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CATL의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32.6%로 글로벌 1위를 기록했다.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20.3%·SK온 5.6%·삼성SDI 4.5%)의 점유율을 모두 합쳐도 CATL에 미치지 못했다. 올해 중국 업체의 공세는 더욱 거세질 전망으로, 이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 역시 '선제 투자'가 꼽힌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은 초과수요 시장이다. 초과된 수요에 가장 빨리 물량을 공급하는 기업이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다. 지금 설비투자를 하지 않으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배터리 시장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기업들이 선택한 방법이 물적분할과 재상장을 통한 투자금 확보다.
물적분할은 기업이 특정 사업을 떼어내 법인을 새로 설립하고, 그 법인의 지분 100%를 모회사가 갖는 기업분할 방식이다. 분할된 회사는 기업공개(IPO)를 통해 투자금을 확보한다. 수주형 사업인 배터리사업을 육성하기 위해 대규모 자금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마련해야 하는 측면에서 볼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LG화학이 LG에너지솔루션을 떼어내 재상장하고, SK이노베이션도 SK온을 물적분할해 IPO를 앞두고 있는 이유다. 물적분할과 재상장의 성공 사례는 배터리 뿐만 아니라 삼성바이오로직스, SK바이오사이언스 등 바이오 산업 등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LG화학을 비롯한 물적분할을 선택한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거나 인적분할을 선택했을 경우 자금조달 수단은 유상증자나 회사채 발행 등으로 한정돼 투자재원 확보에 한계가 따른다. 증자나 회사채는 규모가 1조원 안팎에 그치고 특히 회사채는 부채비율을 높여 재무건전성에 적잖은 부담을 안겨줄 수 있다. 특히 과거처럼 은행 등 금융권에서 대규모 자금조달이 힘들어진 것도 기업들이 자본시장으로 눈을 돌린 이유다.
IPO로 조달한 자금은 고스란히 생산기지 증설과 연구개발에 쓰인다. LG에너지솔루션은 IPO로 조달한 10조원 가량을 글로벌 배터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을 확보하는데 사용할 계획이다. 제품설계와 생산공정을 고도화하는 것은 물론 생산공정 전반에 걸쳐 완전 자동화된 인라인(In-line) 전수검사를 도입한다. 스마트 팩토리를 통해 축적해온 빅데이터를 통해 신뢰성과 품질관리능력도 높이기로 했다. 또 최고품질책임자(CQO)를 신설하는 등 품질관리에도 적극 투자하기로 했다.
LG에너지솔루션 5각 생산체제 현황 [자료=LG에너지솔루션] |
문제는 물적분할이 소액주주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최근 물적분할이 이슈가 되면서 대선 후보들은 소액주주들의 요구를 수용해 물적분할 개선 공약을 제시했고, 금융당국도 제도 개선에 나선 상황이다. 다만 최근 이슈는 개인투자자 입장에서 주가 하락이 크게 부각된 측면이 있다. LG화학의 경우 지난 2020년 9월 물적분할을 발표한 뒤 2021년 초 주가가 100만원을 돌파하기도 했고, 지난해 6월 LG에너지솔루션이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한 이후에도 주가는 80만원대 후반까지 오르기도 했다.
기업들은 소액주주들이 우려하는 모회사의 미래 계획에도 소홀하지 않다. LG화학의 경우 LG에너지솔루션 상장 과정에서 구주매출 약 2조5000억원을 투자 재원으로 확보했다. 이 재원은 LG화학의 성장사업을 본격 육성하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 LG화학은 지난해 7월 지속가능성(바이오 소재·재활용·신재생에너지), 전지소재 사업, 신약 개발을 3대 신성장 동력으로 선정하고 2025년까지 총 1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물적분할과 상장을 통해 LG에너지솔루션이 대규모 적기 투자를 단행하면 LG에너지솔루션의 기업가치가 높아지는 동시에 모회사인 LG화학의 기업가치도 올라 결국 LG화학 주주에게도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이슈를 통해 소액주주들의 보호장치 마련은 숙제로 남았다. 투자자 보호 장치로 언급되는 방식은 주로 주식매수청구권, 구주주 대상 청약기회 우선 부여(공모주 우선 배정), 신주인수권 부여, 현물배당 등이다. 하지만 현행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물적분할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공모주 우선 배정도 금융투자협회의 증권인수업무규정을 변경해야 한다.
결국 물적분할을 둘러싼 최근 이슈의 본질은 향후 예정된 물적분할과 재상장 때 소액주주들을 보듬을 수 있는 합리적 장치들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산업화는 물론 자본시장의 경험이 짧다. 이제부터라도 국회와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미흡한 부분들을 개선하고 바람직한 해결책을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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