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관리 책임 막으려 현장 막고 윽박지르기 '급급'
"1호는 피하자"…'잠정 휴업' 택한 대형건설사
자금난 겪는 중소형 건설사 극심한 인력난에 '패닉'
[인천·경기=뉴스핌] 유명환 기자 = "건설현장은 각종 사고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데 중소형 건설현장에 적용 될 지 의문스럽네요. 대형사가 진행하고 있는 현장은 각종 안전장비가 구비 돼 있지만, 작은 곳은 여전히 위험에 노출된 상태로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A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 김모씨(57))
"광주서 발생한 붕괴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은 안전점검에 책임이 있는 국토부(국토교통부) 아닌가요? 그리고 원가절감에만 혈안이 된 시공사와 조합 사람들에게도 있죠. 3년만에 1000가구 이상의 대단지를 건설할 수 있는 곳은 우리나라뿐이에요. 안전하고 튼튼하게 지으려면 최소 4년은 걸려요. 그런데 그게 되나요? 공기를 맞추다보면 안전은 '유명무실'하죠."(대형 건설사 현장직 직원 박모씨(43))
"현장 근로자들 대부분 하루 벌어 하루를 생활하는 일용직 근로자들이라 안전관리를 신경 쓴다고 하지만 공사현장 대부분 안전관리직원이라고 해봐도 한 두 명인데, 그걸 어떻게 다 어떻게 찾나요. 대형사들은 다르겠지만 중소형 건설사들은 곡소리 나요."(중소형 건설사 산업안전관리기사 한모씨(39))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시행 첫날 서울과 인천 등 건설현장은 한산한 모습이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와 인천 검단 신도시 아파트 공사현장은 흙먼지와 작업자들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들은 곳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일부 현장은 '잠정 휴업'을 택한 건설사들로 인해 철문이 굳게 잠긴 곳들도 있었다. 몇 블록 이동한 후에야 인부들이 움직이는 현장을 찾을 수 있었다.
[인천‧경기=뉴스핌]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첫날 경기도 고양시 향동 지구 일대 건설현장 모습. [사진=유명환 기자] |
◆ "현실성 없는 법에 일용직 근로자만 길거리로 내몰려"
27일 오전 7시에 안전교육을 받고 나온 일용직 노동자 최동환(57)씨는 "평소에는 20분 내외로 안전교육이 끝났지만 오늘은 1시간 정도 받았다"며 "오늘 무슨 법이 시행돼 가림막 설치와 시멘트 운반, 작업장 안전 고리 설치 등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고 말했다.
최 씨는 "일용직한테 그런 교육을 해도 지키는 사람이 몇몇이나 될지 의문"이라며 "하루 종일 안전모와 안전 고리를 매달고 시멘트와 철근, 지지대(동바리) 설치를 하다보면 땀으로 '벅벅'되는 일이 허다한데 그걸 언제 다 지키면서 작업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 법을 다지키지 못한 사람은 길거리로 나가라는 내모는 것과 똑같다"고 목소릴 높였다.
실제 현장에서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는 근로자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서울 지역에서 토목공사가 이뤄진 한 현장에선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은 채 현장을 오가는 이들이 무거운 시멘트를 어깨에 짊어지고 이곳저곳 분주하게 공사자제를 나르는 이들이 있다.
이들과 대화를 나누기위해 현장에 진입하려고 하자 관리자로 보이는 한 직원이 앞길을 막고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는 이들에게 윽박 질렀다.
이 관계자는 안전모 미착용에 대해 묻는 기자에게 "업무 방해로 고소하겠다"며 "여기는 사유지이기 때문에 사진 촬영과 근로자들의 인터뷰도 할 수 없다"고 현장에서 떠밀어내면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인천‧경기=뉴스핌]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첫날 경기도 고양시 향동 지구 일대 건설현장 모습. [사진=유명환 기자] |
◆ "1호 될라"…굳게 잠진 아파트 공사 현장 속출
서울과 인천 등 주요 건설현장은 중대재해법 직후 현장 문을 걸어 잠궜다. 이는 혹시 '1호 처벌 기업'만은 되지 말자는 위기감이 커지면서 작업을 중단하는 게 났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국내 건설사 도급순위 1위인 현대건설은 동절기 주말에 안전사고가 많은 점을 고려해 내달까지 주말과 공휴일 작업을 전면 금지했다.
또 중대재해법 시행에 따라 '현장 환경의 날'로 정해 전국 현장의 공사를 중단하고 현장에는 정리 정돈을 위한 최소한의 인원만 남길 계획이다. 다음날인 28일에는 임직원과 협력사 직원이 참여하는 안전 워크숍을 진행한다.
현대건설은 아울러 설 연휴가 끝나는 시점도 내달 2일에서 4일로 이틀 연장해 휴무를 이어간다.
대우건설은 공사 현장에 한해 설 연휴 시작 시점을 이틀 앞당겼다. 또 현장의 자체 판단에 따라 내달 3∼4일까지 휴무를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DL이앤씨는 안전 워크숍 일정 이외에 작업이나 공사가 잡힌 것은 없다. 설 연휴 휴무일도 내달 3일까지 하루 연장됐다.
포스코건설도 설 연휴를 앞두고 '이틀간 휴무 권장' 지침을 전국 현장에 내려보냈다. 또 설 연휴 전후에도 본사의 승인을 받은 경우에만 제한적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해 사고 가능성을 최소화했다.
중견 건설사인 한양 역시 현장소장의 판단에 따라 본사 안전실과 협의를 거쳐 꼭 필요한 공사만 진행하기로 했다. 또 이틀간 현장별로 안전 결의대회, 안전교육, 안전 점검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인천‧경기=뉴스핌]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첫날 인천시 검단신도시 일대 건설 현장 모습. [사진=유명환 기자] |
◆ 몸값 높아진 안전관리 직원…"대형사에 밀려 인력 채용 못해"
대형사들은 중대재해법 시행에 대비해 안전관리 조직 개편 및 신설하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현대건설은 경영지원본부 산하 안전지원실을 안전관리본부로 격상하고 전무급 CSO를 임명했다.
삼성물산은 종전 2개 팀이었던 안전환경실을 7개 팀으로 구성된 안전보건실로 확대 개편하고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부사장급 최고안전책임자(CSO)를 신규 선임했다.
포스코건설은 안전관리 조직을 2개 그룹에서 5개 그룹으로 확대하고 인력을 대거 충원했다. 대우건설은 품질안전실을 전무급인 안전혁신본부로 확대 개편했다. 롯데건설은 안전보건부문을 안전보건경영실로 격상하고 각 사업본부 내에 안전팀을 신설했다.
GS건설, DL이앤씨, SK에코플랜트 등도 안전분야 조직을 확대하고 CSO를 임명하는 등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조직을 정비했다.
반면 중소형 건설사들은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중대형 건설사와 달리 자금력과 인력 충원이 쉽지 않은 중소형 건설들은 안전관리 인력을 채용에 나서고 있지만, 중대형 건설사들이 해당 인력을 '싹쓸이'하면서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 지방건설사 대표는 "지난해 중대재해법 통과 이후 사업을 접는 회사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대부분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영세한 건설사들인 법안 통과 이후 안전관리 인력을 채용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 채용하고 싶어 할 수 없는 회사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실제 안전관리인력에 대한 수요는 늘어나고 공급은 부족한 상황이다. 안전관리기술자는 현재 1만명 수준에 불과하다. 안전관리기술자는 매년 500명가량 배출돼 당장 중소형 건설사의 채용도 힘든 상황이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중대재해법 통과 이후 안전관리자가 추가로 필요해진 사업장은 5000곳 가량 늘지만 공급은 1000명 수준"이라며 "대형 건설사는 자금력과 인력확충을 통해 안전관리 체계를 만들고 있지만, 중소형 건설사들의 경우 자금난을 겪고 있는 가운데 전문 인력을 채용하고 싶어도 인력이 없어서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ymh753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