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승현 기자 = 백의종군(白衣從軍), 벼슬이 없는 말단군인으로 전쟁터에 나간다는 뜻이다. 이름난 장수가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최일선에서 전쟁을 치르겠다는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의지를 표현한 말이다.
지금 여의도 정치권에는 20대 대통령 선거라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권력은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사활을 걸고 전투를 치르고 있다.
특히 국민의힘은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 네 번의 전국 단위 큰 선거에서 연패 중이다. 지난 4·7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2030 세대의 표심을 잡으며 간신히 회복의 기회를 잡긴 했지만 정식 승리라고 말하긴 부족하다.
내년 대선에서도 패배해면 당 자체가 와해될 것이라는 위기감 속에 대장은 윤석열 후보로 결정했다. 이제 선거 전쟁을 치르기 위한 조직을 짜야 하는 상황에서 '총사령관' 역할을 맡을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합류가 더디다.
전권이 주어져야 제 실력을 발휘하는 김 전 위원장과 다양한 인재와 함께 하고 싶은 윤 후보 사이의 '밀당'이 치열하다. 선거 캠프에서 '명함'은 상당히 중요하다. 명함이 곧 공신록이고, 대선 공신은 장관 등 명예로운 자리에 갈 가능성이 높다.
자리는 한정돼 있고, 원하는 사람은 많다 보니 당연히 경쟁이 생긴다. 경쟁을 넘어 암투도 치열하다. 홍준표 의원이 자주 비유하는 '이전투구'(泥田鬪狗,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라는 뜻으로, 자기 이익을 위해 볼썽사납게 싸우는 것)이 벌어진다.
선대위 출범이 늦어지며 윤 후보의 '컨벤션 효과'도 약해지는 상황에서 중진 김태호 의원이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다른 중진들의 결단을 촉구했다.
김 의원은 지난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선거대책위원회 구성 논의가 한창이지만, 언뜻 벌써부터 자리다툼하는 것으로 비춰질까 걱정이 된다"며 "이제 중진들이 길을 터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최연소 민선 광역단체장(경남지사), 최연소 총리 내정자의 경력을 가진 3선 의원이다. 그는 윤석열 예비후보 시절 캠프에서 공동 선대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비슷한 생각들이었을까. 같은 날 4선 나경원 전 의원도 "선대위에 내 자리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내 작은 자리라도 내어놓고 싶다"며 "그 자리가 한 표라도 가져올 수 있는 외연확대를 위한 인사영입에 사용되길 소망한다"고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높은 인지도를 가진 나 전 의원은 원내대표를 역임한 바 있고, 선대위에서 공동 선대위원장 하마평이 돌고 있었다.
김종인 전 위원장과의 갈등으로 비쳐지자 윤 후보의 자타공인 '최측근'인 3선 장제원 의원도 같은 뜻을 밝혔다. 장 의원은 권성동 의원과 함께 윤 후보가 정계 입문을 할 때부터 돕고 함께 한 바 있다. 윤 후보 주변에선 장 의원에 대한 윤 후보의 애정이 깊다고 말한다.
장 의원은 자신이 윤 후보의 비서실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자 지난 23일 페이스북에 "저의 거취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제 스스로 결심할 시간인 것 같다. 윤 후보 곁을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장 의원은 이어 "후보님 마음껏 인재를 등용하시고 원탑이 되셔서 전권을 행사하라"며 "그래서 내년 3월 9일 우리 모두가 꿈꾸고 염원하는 압도적 정권교체를 실현해 달라"고 응원했다.
중진들의 잇따른 백의종군 선언에 대해 '후배'들도 환영의 뜻을 밝혔다. PK(부산·울산·경남) 한 초선 의원은 뉴스핌과 통화에서 "중진들이 스스로 물러나주는 모양을 보여주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제 그런 흐름을 보이는 것"이라며 "아주 잘 한 결정"이라고 환영했다.
TK(대구·경북)의 한 초선 의원도 "김종인 전 위원장 선대위 합류 문제도 복잡한데 중진들까지 신경쓰지 말고 부담을 덜라는 차원 아니냐"며 "후보한테 부담을 덜어주고 국민들한테도 진정성을 보여주는 액션"이라고 평가했다.
kims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