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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운구가 길어올린 예술가의 그때…불멸의 초상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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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 154명의 초상, 이 땅의 예술사 구현
시각예술가는 강물, 문인은 산맥으로 구분
전시실 구비구비 흐르다 종국엔 하나로 만나

[서울=뉴스핌] 이영란 편집위원 = 한 사진가의 타임캡슐이 마침내 열렸다. 50여년간 꾹꾹 담아온 인물초상들이 봉인해제돼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에 여간해선 한자리서 만나기 어려운 귀한 인물사진들이 새 단장을 하고, 미술관 화이트큐브에 내걸렸다. 우리 문화예술계에 큰 족적을 남긴 인사들과 오랫동안 교류하며 그들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찍어온 다큐멘터리 사진가 강운구(80). 그가 자신의 방대한 흑백 인물사진들을 일일이 선별하고, 디지털로 변환해 인화한 뒤 전시로 꾸렸다.

강운구로 하여금 타임캡슐을 열게 한 곳은 부산 해운대의 고은사진미술관이다. 미술관측은 작가에게 제안했다. 오랫동안 찍어온 인물사진들을 한자리에 모아 제대로 조명해보자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강운구의 '사람의 그때'전이다.

고은문화재단(이사장 김형수)이 주최하고, 고은사진미술관이 주관한 이번 전시에는 강운구와 연을 맺어온 문인, 화가 등 문화예술계 인사 154명의 인물사진 163점이 출품됐다. 한 작가가 이토록 많은 예술가들의 모습을 찍었다는 것도 범상치 않은 데다, 예술가들의 내밀한 세계와 개성을 정곡을 찌르듯 절묘하게 포착해낸 심미안도 특별하다. 출품작들은 왜 문화예술계에서 그가 '최고의 포츄레이트 사진가'로 꼽히는지 말해준다. 사진의 완성도와 깊이감, 배경과의 조화,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아우라는 강운구표 초상사진이 보여주는 빛나는 세계다. 그는 문학, 미술 뿐 아니라 여러 장르의 예술인들을 찍었지만 이번에는 문학과 미술로 범위를 좁혔다.

해운대 고은사진미술관의 전시실에 발을 들이면 기찻길처럼 길게 늘어선 두개의 벽면이 관객을 맞는다. 작가는 오른쪽으로 시작되는 벽에 화가 윤형근을 필두로 시각예술가들을 일렬로 배치했다. 그리고 왼쪽 벽면에는 소설가 김원일, 박경리를 시작으로 문인들의 사진을 걸었다. '문인은 산맥, 시각예술가는 강물'로 본 강운구는 긴 벽면의 인물들이 구비구비 흘러 종국에는 만나도록 했다. 이에 미술관 제일 안쪽 벽면에는 문인과 화가들의 초상이 하나로 어우러졌고, 50여년에 걸친 강운구의 끈질긴 작업은 반세기 이 땅의 예술사로 정갈하게 직조됐다.

[서울=뉴스핌] 이영란 기자 = 소설가 최인호, 서울 신사동 1976  [사진=ⓒ강운구, 고은사진미술관] 2021.11.2 art29@newspim.com

강운구는 154명의 예술가를 한두 번, 또는 여러 번 촬영했는데 전시에는 첫번째 찍은 사진들을 내걸었다. 따라서 대부분 젊은 시절의 싱그런 모습들이다. 소설가 최인호, 한수산, 황석영의 30대 초반 모습은 "아, 저들에게도 저런 때가 있었구나"하고 탄성을 지르게 한다. 특히 황석영의 경우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낯선 모습이다. 또 김승옥 김원우 김주영 송영 양귀자 오정희 윤후명 윤흥길 이문구 정현종 조해일 최일남의 모습도 싱그럽기 그지없다. 그런가 하면 고은 김지하 박두진 서정주 이문열 이청준 조세희 한승원 등 기라성같은 문인들의 사진들도 "참 좋네!"라는 찬사가 절로 나오게 한다. 문학평론가, 저술가, 출판인도 여럿 찍었는데 김병익 김화영 박종만 백낙청 염무웅 이기웅 한창기가 그들이다.

[서울=뉴스핌] 이영란 기자 =화가 장욱진, 충북 수안보 1983  [사진=ⓒ강운구, 고은사진미술관] 2021.11.2 art29@newspim.com

강운구는 화가와 조각가, 사진가, 도예가, 디자이너와도 자주 교류하며 그들을 찍었다. '산의 화가' 박고석, 솔직담백한 조형세계를 구축한 장욱진, 군더더기 없는 단색화로 유명한 윤형근, 푸른 추상을 개척한 남관, 흐드러지게 핀 꽃을 그리는 김종학, 실험적 미술을 펼쳐온 김구림, 대담한 필선의 화가 오수환의 초상은 요즘도 미술도록 등에 자주 등장하는 '명품 인물사진'이다. 특히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는 장욱진의 초상사진과 굵은 면으로만 이뤄진 추상화처럼 간결한 윤형근의 초상사진은 이 구역(?)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강운구는 장욱진처럼 포토그래퍼가 뭘 하든 개의치 않고 '나는 내 할 일을 한다'는 사람이 사진 찍기 가장 좋다고 했다. 더러는 찍으려는 대상이 '내놓고 연기를 할 때'도 있어 거슬리지만 그것도 그 사람의 성격을 말하는 것이기에 그대로 받아들였다.

[서울=뉴스핌] 이영란 기자 = 함박눈이 내리는 12월의 어느 날 출판사에 모인 문인들. 왼쪽부터 신경림 방영웅 염무웅 백낙청 이호철. 서울 청진동 1973 [사진=ⓒ강운구, 고은사진미술관] 2021.11.2 art29@newspim.com

사진은 기록인 동시에 예술적 가치도 지닌다. 강운구의 인물사진은 거기에 더해 이 땅의 예술이 걸어온 이야기들을 오롯이 품고 있어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그 이야기들이 켜켜이 모여 문학사와 미술사가 되니 말이다. 이를테면 1973년 겨울 광화문 신구문화사 앞에서 찍은 사진이 그렇다. 신경림, 방영웅, 염무웅, 백낙청, 이호철이 함박눈을 맞으며 출판사 입구에 나란히 서있는 단체사진은 1970년대 우리 문단의 한 장면을 압축해 보여준다. 백낙청이 만든 문예지 '창작과 비평'은 당시 신구문화사에서 제작을 대행했는데 알만한 문인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자 강운구는 "눈도 오는데 기념사진 찍어줄 테니 서보라"며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그러자 사진을 많이 찍어본 이호철과 신경림은 자연스런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반면에 등단한지 얼마 안된 방영웅은 살짝 긴장된 표정이다. 문학평론가인 백낙청과 염무웅은 양복을 쫙 빼입고 포즈를 취했다(미끄러지지 말라고 건물 입구에 가마니를 깔아놓은 것도 눈에 들어온다). 그날 강운구는 중학동 한국일보 뒷골목에서 연탄배달부가 수레를 끄는 장면을 촬영한 후 '뭔가 대단한 걸 찍은 것같다'는 충만감에 길을 걷다가 우연히 문인들을 만난 것이다. 그는 신경림과 이호철, 백낙청의 독사진도 찍었다. 눈 내리는 거리에 선 신경림과 이호철의 초상사진은 훗날 각자의 시집과 소설집에 실리는 등 작가를 대표하는 초상사진이 됐다. 또 그날 강운구가 찍은 연탄배달부 연작(4점)은 강운구 사진의 초기 대표작으로 꼽히며, 전시와 책자를 장식했다. 1973년 12월 23일은 이래저래 작가에게도 잊을 수 없는 날이 됐다. 

[서울=뉴스핌] 이영란 기자 = 소설가 박경리, 서울 정릉 1976  [사진=ⓒ강운구, 고은사진미술관] 2021.11.2 art29@newspim.com

1976년에 찍은 소설가 박경리의 사진 또한 특별하다. 박경리의 정릉집을 찾은 날은 마침 공사가 한창이었다. 소설가는 집에 창문을 낸다며 붉은 벽에 커다란 구멍을 뚫었다. 벽 아래로는 벽돌조각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몹씨 을씨년스런 풍경이었지만 박경리는 개의치않고 뻥 뚫린 구멍 속에서 정면을 주시했다. 그 무렵 작가는 대하소설 '토지'의 1부를 책으로 펴냈을 때다. 굴곡진 시대를 대서사로 엮은 작가의 투지가 신산스런 공간과 묘하게 어우러지며 독특한 신이 탄생했다. 강운구는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라 글 쓰다 막히면 뭔가를 때려부수고, 가구도 이리저리 옮겼다"고 회고했다. 훗날 사진가는 불세출의 역작을 써내려간 박경리의 손을 클로즈업한 사진도 찍었다.

강운구는 소설가 박완서도 두어 번 찍었다. 이번 사진전에는 가락동 아파트의 집필실에서 촬영한 1990년 사진이 나왔다. 박완서는 1970년 월간지 '여성동아'의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란 작품으로 당선되며 마흔에 데뷔했다. 늦은 등단이었다. 미리 그를 만나고온 담당 기자는 "아줌마야, 아줌마"라고 외쳤다. 며칠 후 하얀 저고리를 입고 동아일보를 찾은 '아줌마 작가'의 프로필 사진을 찍은 게 강운구였다. 그리고 20년이 흘러 1990년, 작가의 집으로 찾아가 사진을 찍었는데 '등단사진을 찍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초창기 박완서는 한복을 즐겨 입었으나 20년 뒤 만난 예순의 작가는 블라우스에 니트를 곁들인 차림이었다. 상기됐던 표정도 한결 원숙해졌다. 시절이 그새 많이 바뀐 것이다. 

강운구는 자신과 동시대에 살았던 예술가들을 주로 찍었다. 유명하다는 이들을 억지로 찾아다니기 보다는, 살면서 이런저런 인연으로 스치게 되는 이들을 촬영했다. 어딘가를 지긋이 응시하며 담배를 피우는 소설가 최일남의 사진에는 인물의 내면이 잘 투영돼 있다. 문학평론가인 김병익의 1975년도 사진은 엄혹한 시대를 여실히 보여준다. 신문사 편집국의 낡은 의자를 이어붙인 뒤 신문을 덮어쓰고 쪽잠을 자는 김병익을 강운구는 냉정하게 담았다. 당시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이자 한국기자협회 회장이었던 김병익은 서슬퍼런 유신독재에 항거하며 동료들과 1974년 '자유언론수호 실천'을 선언했다. 이후 탄압은 더욱 거세졌고, 이듬해 3월 기자들은 편집국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여러 날 농성을 하던 김병익의 탈진한 모습을 동료인 강운구가 포착한 것. 얼마나 고단했으면 양복차림에 신문지를 이불 삼아 골아떨어졌을까. 그리곤 며칠 뒤 새벽, 기자들은 회사에서 동원한 괴한들에 의해 쫓겨났고, 강운구를 포함해 113명이 해직됐다. 이들은 동아투위를 결성했는데 그 투쟁은 오늘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시각예술가들의 사진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거리가 가득하다. 파리를 무대로 활동하던 화가 한묵이 1976년 잠시 귀국하자 단짝친구인 박고석(화가)은 설악산 여행을 제안했다. 고은 시인까지 불러내 내설악을 찾았다. 그러나 비가 추적추적 내렸고, 일행은 화전민 집의 옹색한 방에서 뭉개야 했다. 오후가 되자 한묵과 박고석은 비좁은 방에서 포개지듯 단잠에 빠져들었고, 강운구는 그 모습을 찍었다. 그리곤 이런 주석을 달았다 "오랜 두 친구는 설핏 잠에 빠져들었다. 꾸는 꿈은 서로 달랐으리라". 

사진가 강운구 주위에는 늘 많은 화가들과 조각가, 디자이너들이 있었다. 가족처럼 가까웠던 박고석 화백 외에도 '심플심플'을 외쳤던 장욱진 화백, 호미와 낫, 연탄집게를 구부려 해학이 넘치는 호랑이, 새 조각을 만들던 조각가 이영학, 맑고 단아한 수묵화를 그리는 송영방, 아름답고 쓸모있는 책을 디자인하는 정병규 등이 그들이다. 강운구는 그들이 오래 머물러, 고유한 공간이 되버린 장소 속에 있는 모습을 찍음으로써 '그 사람다운 사진'을 완성했다. 

[서울=뉴스핌] 이영란 기자 = 운보 김기창 화백, 충북 청주 1984  [사진=ⓒ강운구, 고은사진미술관] 2021.11.2 art29@newspim.com

이리저리 세워진 동양화붓 사이로 파이프담배를 문채 카메라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운보 김기창 화백의 사진이라든가, 완성을 앞둔 그림 아래에서 눈을 지긋이 감은 천경자 화백의 사진은 공간과 화가가 절묘하게 합일을 이룬 작품이다. 물감과 캔버스가 어지럽게 널려 있는 스튜디오에서 작업에 여념이 없는 변종하, 박고석, 한운성, 오세열 화백의 사진도 마찬가지다. 또한 오지호 박생광 백남준 이대원 유영국 김흥수 서세옥 이경성 박노수 최영림 최욱경 류병엽 정강자 등 작고 미술인들의 초상사진은 작품으로서의 가치도 뛰어나지만, 자료적 가치도 각별하다. 또 정상화 하종현 윤명로 심문섭 서승원 최종태 최인수 김수자 등의 사진도 예술적, 기록적 측면에서 공히 귀한 사진들이다.

문인들의 공간이 빼곡히 들어찬 책들이 주된 배경이라면 미술가들의 공간에선 그림과 조각이 그들의 세계를 대변해주는 배경이다. 그래서 강운구는 예술가들을 스튜디오로 불러내기 보다, 힘들더라도 그들의 공간을 직접 찾아 사진을 찍었다. 인물사진은 '그 사람의 그때'를 증명해주는 증명사진이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번 사진전에는 가슴 아픈 사진들도 나왔다. 건축가 김수근이 자신이 설계한 파주의 한 건물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그러나 거장은 의외로 의연했다)을 찍은 사진(1986년)이라든가, 잡지 '뿌리깊은 나무'를 만든 출판인 한창기가 모자를 눌러쓰고 충주호를 응시하는 사진(1996)은 그들이 이생에서 찍은 '마지막 한 컷'이란 점에서 안타까움을 전해준다. 

이렇듯 우리 문화예술계에 저마다의 궤적을 남긴 예술가들의 초상을 한자리에서 음미할 수 있는 것은 관객으로선 더없는 안복이다. 강운구는 수많은 아티스트들을 찍으면서 '언젠가는 전시를 꾸리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970, 80, 90년대에 찍었던 사진들을 선보이는 전시는 이토록 늦어져, 154명의 예술가 중 절반이 세상을 뜨고 말았다. 작가 스스로도 '좀 일찍 전시를 만들었어야 했다'고 아쉬워 했다. 

강운구는 작가노트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에겐 다시보기 키가 없다. 30,40대들은 이번 전시에 나오는 사람들을 대부분 모른다. 다 돌격하는 병사들처럼 뒤돌아볼 이유도, 겨를도 없다. 그래서 이 사진들은 소용이 없겠다. 슬프다"라고. 그러나 강운구의 이번 사진들이야말로 지나간 우리 문화예술계를 구비구비 증언해주는 값진 사진들이다. 그 사진마다에 시인과 소설가, 화가와 조각가의 진솔한 순간들이, 예술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진가는 사진들마다 때와 장소를 꼼꼼히 메모하고 정리해왔기애 우리는 그 정확한 시점과 장소를 알 수 있고, 그때 그 시절 우리 문화예술계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강운구의 이번 사진전은 흘러간 시대를 증언하며 아름답고도 풍성한 하모니를 선사하고 있다. 

[서울=뉴스핌] 이영란 기자 = 화가 윤형근, 서울 서교동 1986  [사진=ⓒ강운구, 고은사진미술관] 2021.11.2 art29@newspim.com

고은사진미술관 이재구 관장(경성대 교수)은 "강운구의 초상사진은 평범한 것 같지만 독창적인 아우라가 느껴진다. 촬영할 인물의 느낌 그대로, 그 사람답게 찍는 한결같은 일관성을 50년간 유지한 사진들이다. 사진의 지시적 기능과 추상적 가치탐구를 통해 발현된 그의 작품들은 더없이 인상적이다"라고 했다. 이에 작가는 "사람들 얼굴 위로 빛과 그늘이 부단히 교차한다. 시간은 시계 속에 그대로이고, 사람들은 지나갔다. 흐르는 것은 사람이다"라고 화답했다. 

사진가 강운구는 우리의 시각언어로 포토저널리즘과 작가주의적 영상을 개척한 다큐멘터리 사진거장이다. 경북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1966년 조선일보(편집국 사진부)에 입사해 포토저널리스트가 됐고, 1970년 동아일보로 옮겨 출판국 사진부 기자로 일했다. 이후 월간 '뿌리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의 사진편집위원으로 일했고, 현재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개발독재의 강압적 분위기 속에 산업사회로 급변하는 과정을 기록해온 그는 경주 남산의 석불을 비롯해 이 땅의 귀한 문화유산들을 담은 작업도 꾸준히 펼쳐왔다. 국내외에서 여러 차례 개인전을 가졌고 사진집으로 '내설악 너와집'(1978), '경주남산'(1987), '우연 또는 필연'(1994), '모든 앙금'(1998), '저녁에'(2008) '오래된 풍경'(2011), '네모그림자'(2017) 등이 있다. 사진이론을 엮은 '강운구 사진론'과 사진과 글을 함께 담은 산문집 '시간의 빛'(2004) 등도 펴냈다. 공저로는 '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1999), '능으로 가는 길'(2000), '한국 악기'(2001)가 있다.

'강운구 사진전, 사람의 그때'는 오는 12월26일까지 계속된다. 고은사진미술관은 전시에 맞춰 360페이지에 달하는 대형도록 '사람의 그 때, 강운구'를 출간했다. 무료관람.

art29@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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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범, 이제 판잔러 잡으러 간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한국 수영에 또 하나의 '수영 대박'이 아닐까. 불과 1년 전 세계선수권 탈의실에서 중국 수영의 상징 판잔러에게 키링을 받고 기뻐하던 소년이 이제는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단거리 샛별' 김영범(20·강원특별자치도청)의 성장세가 눈부시다. 김영범은 21일 일본 도쿄 아쿠아틱스센터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수영 남자 자유형 50m 결선에서 21초66의 대회 신기록을 작성하며 가장 먼저 터치패드를 찍었다. 이로써 전날 자유형 100m에서 판잔러와 접전 끝에 0.04초 차 아쉬운 은메달에 머물렀던 한을 풀고 생애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품에 안았다. 이번 금메달은 이번 대회 대한민국 경영 대표팀이 획득한 첫 금메달이기도 하다. [도쿄 로이터=뉴스핌] 박상욱 기자=김영범이 21일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경영 남자 자유형 50m 결선을 마친 후 기뻐하고 있다. 2026.9.21 psoq1337@newspim.com 예선부터 기세가 매섭틀렸다. 김영범은 이날 오전 열린 예선에서 21초71을 기록해 3년 전 항저우 대회에서 지유찬(대구광역시청)이 세웠던 종전 대회 기록(21초72)을 0.01초 앞당겼다. 이어 불과 몇 시간 뒤 펼쳐진 결선에서 자신의 기록을 다시 0.05초 줄이며 정점에 올랐다. 2006년생으로 한국 남자 계영 대표팀의 막내인 김영범은 전날 자유형 100m 결선에서 반환점을 1위(22초81)로 돌며 세계 정상급 스타 판잔러를 위협했다. 비록 막판 추격을 허용해 47초65로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으나 세계적인 강호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하루 만에 아쉬움을 털어낸 그는 50m 결선에서 누구에게도 역전을 허용하지 않으며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도쿄 로이터=뉴스핌] 박상욱 기자=김영범이 21일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경영 남자 자유형 50m 결선을 마친 후 기뻐하고 있다. 2026.9.21 psoq1337@newspim.com 김영범의 가파른 성장은 압도적인 신체 조건과 대담한 승부욕에서 비롯된다. 195㎝, 체중 90㎏에 발 크기 300㎜, 윙스팬 216㎝에 달하는 축복받은 피지컬은 폭발적인 스피드가 요구되는 단거리 종목에서 강력한 무기다. 큰 무대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자신감을 장착한 그는 '단거리 박태환'의 탄생을 알리며 한국 수영의 새로운 전성기를 예고하고 있다. psoq1337@newspim.com 2026-09-21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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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홉킨스 음반 영국차트 1위 [서울=뉴스핌] 김용석 선임기자 = "제 삶 전체가 하나의 꿈입니다." 영화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로 널리 알려진 배우 앤서니 홉킨스(88)가 작곡가로 낸 첫 데카 클래식스 음반 'Life Is A Dream'으로 발매 1주 만에 영국 오피셜 클래식 차트 1위를 차지했다. '라이프 이즈 어 드림' 녹음 현장의 앤서니 홉킨스. [사진= 유니버설뮤직] 홉킨스는 "평생의 영광"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명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비르투오소 솔리스트인 첼리스트 그레고리오 니에토 및 클래식 피아니스트 세르히오 티엠포와 협업할 수 있었던 것은 특권이었다"고 밝혔다. 음반은 지난 4월 13일과 14일 런던 알렉산드라 팰리스에서 녹음됐다. 그래미상 수상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이끌었고, 바흐 합창단과 윈체스터 대성당 소년 합창단도 참여했다. 홉킨스의 자작곡 12곡이 실렸으며 연주 시간은 1시간 7분이다. 앨범 제목에는 삶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담겼다. 홉킨스는 "이 앨범의 제목은 Life Is A Dream으로, 삶에 바치는 러브레터다. 저는 이것을 하나의 긴 작별로 본다.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와 작별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록곡은 웨일스와 가족의 기억에서 나왔다. '마르감'은 그가 태어난 포트탈봇의 지명에서 따왔고, '나의 조국'은 제빵사였던 아버지와 웨일스에 대한 헌사다. '스텔라 아리아'는 아내를, '타라'는 조카를 위한 곡이다. 홉킨스는 어린 시절과 부모, 웨일스에 대한 기억이 작품에 영감을 줬다며 "놀라울 만큼 선명하다"고 말했다. 2012년 앨범 '컴포저'에 실렸던 '마르감', '1947 모음곡', '앤드 더 왈츠 고즈 온'도 이번에 새로 녹음돼 다시 수록됐다. 이번 프로젝트는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홉킨스는 "모든 것이 예상치 못했지만 하나로 모였다"고 했다. 바턴은 2006년 영화 '슬립스트림' 음악 작업 이후 홉킨스와 협업해 왔고, 이번 음반에서도 여러 곡의 관현악 편곡을 함께 맡았다. 홉킨스는 두다멜에 대해 "우아하고 정밀한 지휘봉으로 각각의 음에 깊고 지워지지 않는 의미를 부여했다"라며 감사를 전했다. 음반에 대한 평가도 나왔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금관 중심의 팡파르에서 우아한 왈츠까지 폭넓다고 평하며 홉킨스의 화성 감각을 높이 샀다. 로라 몽크스 데카 사장은 차트 1위 소식에 "작곡가로서의 재능과 클래식 음악에 대한 헌신을 인정받은 일"이라며 축하했다. 홉킨스는 베네수엘라 국민 지원을 위해 CD와 바이닐 판매액의 일부를 기부하기로 했다. 창작 과정에 대해 홉킨스는 "제 마음의 구조는 이미지로 생각하도록 되어 있다"라며 "이것이 제 영감의 근원이다"고 말했다. 다음 계획으로는 "요즘 즉흥적으로 새 곡들을 만들고 있고, 그 곡들을 이제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발전시켜 보고 싶다. 영화음악을 작곡해 보고 싶다"고 했다. 앤서니 홉킨스의 앨범 'Life is a dream(라이프 이즈 어 드림)' 커버. [사진=유니버설 뮤직] 홉킨스는 1937년 12월 31일 웨일스 포트탈봇 마르감에서 제빵사 리처드 아서 홉킨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왕립웨일스음악연극대학을 1957년 졸업하고 왕립연극학교에서 연기를 배웠으며, 1965년 로런스 올리비에의 초청으로 영국 국립극단에 합류했다. 1987년 대영제국 지휘관 훈장(CBE)을 받았고 1993년 기사 작위를 받았다. 1992년 제6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양들의 침묵'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2021년 제93회 시상식에서는 '더 파더'로 같은 상을 다시 받아 83세의 나이로 이 부문 역대 최고령 수상자가 됐다. 영국 아카데미(BAFTA) 4회, 에미상 2회 수상 기록도 갖고 있다. 작곡가로서의 이력도 길다. 1964년 쓴 왈츠 '앤드 더 왈츠 고즈 온'은 2011년 네덜란드 바이올리니스트 앙드레 류가 앨범으로 내놨고, 이 앨범은 2012년 클래식 브릿 어워즈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다. 홉킨스는 2008년 바턴과 공동 작곡한 '마스크 오브 타임'과 '스키조이드 살사'가 댈러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초연됐다. 2012년 1월에는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 마이클 실 지휘로 클래식FM과 함께 첫 작곡 음반 '컴포저'를 냈다. fineview@newspim.com 2026-09-2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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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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