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잃은 전세 세입자…일 년 새 27.5% 상승
매맷값 추월 하는 단지 속출…'반포 리체' 17억원 계약
[서울=뉴스핌] 유명환 기자 = "몇 달 뒤면 집을 빼줘야 하는데 집 얻는 게 이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어요. 이제 서울 전세를 포기하고 경기도로 나갈 계획이에요."(서울 마포구 전세 세입자 김모(39) 씨)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서울 아파트 전세시장에 빨간불이 켜졌다. 새 임대차법 시행으로 전세 매물 자체가 귀해지면서 가격은 더욱 오르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 일부 지역은 전셋값이 매매값을 추월하는 아파트 단지도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탈(脫) 서울 행렬이 늘어나는 양상이다.
◆ 각종 규제에 전세매물 수급불균형 심화 조짐
29일 KB국민은행이 발표한 주택가격동향 시계열 통계에 따르면 이달 서울의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6억 2678만원이다. 지난해 6월 4억9148만원에서 27.5%가 올랐다. 강남 지역 아파트 평균 전셋값 역시 7억3138만원으로 1년 전보다 27.2% 상승했다.
소형 면적의 전셋값도 뛰고 있다. 이달 서울 소형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4억130만원으로 4억원대를 넘어섰다. 강북 소형 아파트도 3억 206만원으로 3억원 이상이다. 서울 강북 지역 평균은 5억778만원, 경기도 평균은 3억4938만원에 달하는 수준이다.
가격 상승은 물량 감소에서 비롯됐다. 보통 이사철을 제외하고 전셋값은 보합권에서 움직이지만 시장에 풀리는 물량이 수요를 따라지 못하면서 가격까지 덩달아 상승하고 있다. 지난 25일 기준 서울의 전세매물은 2만 562건으로 한 달 전보다 3.4% 줄었다. 올 1분기 말(3월31일)과 비교하면 2만3616건에서 12.93% 감소한 수준이다.
[서울=뉴스핌] 유명환 기자 = 2021.06.29 ymh7536@newspim.com |
서울의 신규 입주물량이 크게 줄면서 전세매물이 가파르게 감소하는 모습이다. 특히 이달부터 전월세신고제가 시행되며 임대차3법이 본격화됐고, 각종 규제 및 세제 강화로 반전세·월세의 가속화도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대규모 재건축 이주수요가 맞물리면서 서울의 전세매물 수급불균형이 심화하는 상황이다. 시장에 나오는 매물이 줄면서 품귀현상에 따른 전셋값은 꾸준히 오름세를 나타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21일 기준 서울의 아파트 전셋값은 일주일 전과 비교해 0.09% 상승했다. 2019년 7월 첫째 주부터 104주 연속 상승세를 유지했다.
업계에선 하반기에도 전셋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을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 때문에 서울 외곽지역, 수도권 저가 아파트로 매수세가 몰리고 있다.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의 차이가 크지 않은 단지를 중심으로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갭투자로 매매에 나서는 수요자들이 많아진 셈이다.
일부 지역에선 전셋값이 매맷값을 추월하는 단지까지 속출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 리체' 전용면적 60㎡형은 지난해 12월 최고가인 13억원에 전세 계약됐으나 지난달 14일에는 4억원 오른 17억원에 계약이 이뤄졌다. 2년 전 최저 매매값(13억 4500만원)과 비교하면 현재 전셋값이 3억 5500만원 더 비싸다.
성북구 길음동 '래미안 길음센터피스' 전용면적 60㎡형은 지난달 29일 7억원에 세입자를 맞이했다. 이는 2019년 계약된 매매값과 같은 금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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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전세난민 행렬에 수도권 지역 가격도 급등세
서울 지역의 전세값 상승은 외곽지역으로 번지고 있다. 이는 기존 전세수요에 '탈 서울' 전세수요가 더해지면서 수도권의 아파트 전세매물도 줄어들고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 아실에 따르면 경기 광명시는 최근 한 달간 아파트 전세 매물이 887건에서 568건으로 36.0% 감소했다.
과천시도 165건에서 106건으로 35.8% 줄었다. 수원시 팔달구와 고양시 덕양구의 아파트 전세 매물도 한 달 새 각각 23.9%, 20.9% 감소했다. 남양주시(850건→695건)와 의왕시(590건→484건)도 18% 가량 매물이 줄어들었다.
전세매물이 줄어들면서 가격은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하남과 용인, 화성 등은 최근 1년간 3.3㎡(평)당 전세가격이 40% 이상 올랐다.
KB리브부동산 주택가격동향 자료에 따르면 하남시는 지난해 3.3㎡당 아파트 전셋값이 1245만원 수준이었지만, 올해 5월에는 1865만원으로 1년간 49.8%나 상승했다.
이어 용인시가 3.3㎡당 아파트 전셋값이 같은 기간 1085만원에서 1539만원으로 41.9% 상승률을 보였고, 화성시도 859만원에서 1207만원으로 40.5% 올랐다.
판교 등 수도권 신도시에서는 중대형 아파트 전세가격이 10억대를 기록하는 등 신고가를 경신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에 따르면 경기 과천시 중앙동 과천푸르지오써밋 84㎡형은 지난 3월 전세가격이 10억 원을 기록한 뒤 5월에는 11억 원에 계약됐다. 불과 두 달 만에 전세 보증금이 1억 원 오른 것이다.
성남시 분당구 판교푸르지오그랑블 98㎡형은 지난 3월 15억 원(17층)에 계약됐다. 수원시 광교중흥에스클래스는 84㎡형은 지난 2월 보증금 8억5000 만원(30층)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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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전셋값 상승…경기권 인구 유입 늘어나"
이는 서울의 유입인구가 늘어나면서 전셋값은 끌어올린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서울에서 다른 지역으로 전출한 57만5000명 중 41만5000명이 경기도(37만5000명)와 인천(4만 명)으로 이동했다. 전체 전출인원의 72%에 달한다.
경기도 중 서울시민들이 가장 많이 향한 곳은 고양시로 4만3000명(11.6%)이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남양주시(3만명), 김포시(2만9000명), 성남시(2만9000명), 용인시(2만6000명) 등 서울과 접근성이 높은 지역으로의 이동이 많았다.
전문가들은 탈 서울행렬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여경희 부동산 114 수석연구원은 "계속된 서울 전셋값 상승으로 경기권에 일시적으로 수요가 몰리게 되면 경기도의 전셋값도 불안정해진다"며 "그러면 부담을 느낀 수요자들이 다시 서울로 되돌아 가 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악순환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서울 전세물량 감소는 지속될 전망이다.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입주 물량이 부족하고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 중과로 매물이 잠기면서 수급 불균형이 가시화함에 따라 매매·전셋값이 동반 상승하고 있다"며 "여기에 철도 개발 호재 등이 매수심리를 더욱 부추기고 단기적인 가격 상승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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