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해자 분리도 안 해…청원휴가만 보냈다
사건 발생 두 달 뒤에야 다른 부대로 전출시켜
[서울=뉴스핌] 하수영 기자 = 상관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의 고(故) 이 모 중사가 세상을 떠나기 약 한 달 전 군 상담관에게 "자살하고 싶다"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공군이 3일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사건 관련 보고 내용에 따르면 지난 3월 2일 회식을 마친 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상관인 장 모 중사에게 신체접촉 등 성추행을 당한 이 중사는 지난 4월 15일 상담관에게 "자살하고 싶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지난 2일 오후 공군 부사관 성추행 피해 사망사건 피의자(사진 왼쪽에서 세 번째)가 국방부 보통군사법원 소법정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국방부] |
사건이 발생한 지 약 한 달여 만의 일이었다. 이 중사는 사건 발생 다음 날인 3월 3일 신고를 했지만, 가해자인 장 중사와의 부대 분리 조치는 사건 발생 두 달여 뒤인 5월 18일에야 이뤄졌다.
공군은 의원실에 "(사건 발생 이틀 뒤인) 3월 4일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피해자의 청원휴가에 따른 것일 뿐, 부대 전출 같은 실질적인 조치는 아니었다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다. 이 중사는 3월 4일부터 5월 2일까지 60일간 청원휴가를 사용했다.
방혜린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은 "군에서 피·가해자를 분리한다고 하면 건물만 다르게 한다든지 그렇게 분리를 하는데 이건 분리라고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물론 가해자 장 중사가 사건 발생 15일 만인 3월 17일 본래 근무하던 서산의 제20전투비행단에서 김해의 제5비행단으로 옮기기는 했지만, 전출이 아닌 '파견' 형식이었다. 피해자로서는 '청원휴가를 끝내고 가면 가해자와 부대에서 다시 마주칠 수도 있다'고 여길 수도 있다.
해당 부대에는 장 중사 외에도, 이 중사에게 "그냥 넘어가라"는 취지로 회유 압박을 한 노 모 중사와 노 모 준위도 근무하고 있었다. 이들은 유족으로부터 고소를 당한 6월 3일에야 보직해임됐다.
게다가 가까스로 성남의 제15전투비행단으로 옮긴 뒤에도, 부임 첫 날부터 홀로 야근을 하는 등 고충을 겪었다는 게 유족측 전언이다. '관심병사'로 취급을 받았다고도 한다.
결국 이 중사는 5월 21일 같은 부대(20전비)에서 근무했던 약혼자와 혼인신고를 마친 뒤 20전비로 이동, 이튿날인 5월 22일 남편의 관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15전비로 옮긴 지 불과 4일 만의 일이었다.
이 중사는 사망 직전에 그간의 피해 사실 등을 휴대전화 동영상으로 촬영해 남기고, 휴대전화 메모에는 "내 몸이 더럽혀 졌다"고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suyoung071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