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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의 공포] 전세계 중앙銀, 물가관리 '낙제점'...30년 저물가 씨름 '일본화' 우려

기사입력 : 2019년10월29일 10:58

최종수정 : 2019년10월29일 13:59

[편집자] 지금 한국경제를 '서서히 데워지는 솥 안의 개구리'에 비교하는 지적이 많습니다. 두 자릿수 성장은 먼 얘기가 됐고, 3%대에서 2%대로 떨어지더니 이제 '2% 성장'도 지켜내기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물가상승률도 0%대로 고착되는 양상입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디플레이션 악몽'이 한국경제에도 공포로 엄습합니다. 종합뉴스통신 뉴스핌이 '디플레이션 공포(D의 공포)'를 피하기 위한 각 경제주체의 노력을 점검하고 짚어봅니다.

[서울=뉴스핌] 이홍규 기자 = 전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물가 목표 달성에서 낙제점을 받고 있다. 10년 동안 대규모 통화 완화정책을 시행했음에도 인플레이션이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인구 변화와 구조개혁 미흡 등 구조적 문제가 원인으로 거론되는 가운데 글로벌 경제가 30년째 디플레이션(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 인플레이션과 반대)과 씨름 중인 일본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 10년 동안 돈 풀었는데 물가 달성은 요원

지난 27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스위스 △일본 △스웨덴 △덴마크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미국 △캐나다 △호주 등 8개 주요 국가의 2009~2019년 각 인플레이션(평균)과 중앙은행의 물가 목표치 차이는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이들 중앙은행이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디플레이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10년 간 국채 등 자산 매입과 금리 인하를 단행했음에도 물가 목표 달성에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로다 하루히코(黒田東彦) 일본은행(BOJ) 총재 [사진=로이터 뉴스핌]

주목할 점은 중앙은행의 목표 미달 수준이 해당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 크기와 대체로 비례한다는 것이다. 예로 국내총생산(GDP)을 웃도는 수준으로 다른 중앙은행보다 많은 규모의 자산을 보유 중인 스위스와 일본 중앙은행의 미달 정도는 각각 -2%포인트(p), -1.5%p로 가장 크다. GDP의 40% 규모 자산을 가진 유럽중앙은행(ECB)의 미달 수준은 -0.7%p로 중간에 속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보유 자산은 GDP의 20% 미만으로 미달분은 약 -0.6%p다.

중앙은행들의 저물가 탈피 노력이 공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전 세계 중앙은행 사이에는 일본처럼 하지 않으면 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이들은 일본이 1990년 버블 붕괴 이후 디플레이션으로 빠져든 것은 중앙은행의 소극적인 통화 정책에 있다고 보고 반대로 정책을 실행하면 문제가 없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현재 세계 경제는 오히려 디플레이션에 갇힐 수 있다는 두려움에 잡혀있다.

디플레이션이 무서운 이유는 빠져나오기 힘든 악순환 때문이다. 경제가 디플레이션 국면에 접어들면 가격 하락을 예상한 경제 주체들이 소비와 투자를 줄인다. 이는 총수요 감소를 일으켜 성장률을 떨어뜨리고 물가를 다시 주저앉히는 결과로 이어진다. 현재처럼 공격적인 통화완화 정책으로 중앙은행의 대응 여력이 소진된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오히려 ECB는 자산 매입 프로그램을 재개하기로 했고 연준은 2.25~2.50%로 올려놨던 기준금리를 올해 2차례 인하해 1.75~2.00%로 내려놓은 상태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2019.10.24. [사진=로이터 뉴스핌]

중앙은행들의 현 노선에 대해 의구심이 쏟아지고 있다. 중앙은행들의 통화 부양에도 불구하고 저물가 현상이 계속되는 것은 통화완화 정책의 규모와 시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고질적인 요인이 근저에 깔렸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같은 구조적 문제에 대한 공감과 해법 마련 없이는 전 세계가 저물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인구 변화·구조조정 부재 등 구조적 문제가 원인

여러 원인 가운데 인구 문제가 대표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현상이 맞물리면서 물가를 끌어내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인구가 감소해 결과적으로 노동가능인구가 줄면 물가를 견인할 수요 여력도 쪼그라든다. 일본이 대표적인 예다. 2015년 일본의 총 인구는 1억2709만4745명으로 2010년보다 0.8% 감소했다. 또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2014년 기준 3300만명, 고령화율(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이 26.0%로 사상 최고를 나타냈다. 공교롭게도 일본의 노동가능인구 비율은 버블 붕괴 시기와 겹치는 1991년 정점을 찍었다.

이같은 추세가 1990년대와 2000년대 속도를 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를 비롯한 중앙은행은 이를 뒤늦게 깨달았다는 설명이 나온다. 니시무라 기요히코 전 일본은행(BOJ) 부총재에 따르면 일본이 이같은 인구변화가 저물가의 배경이라는 점을 깨닫기까지 수십년이 걸렸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반복해서 출생률이 반등해 인구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고 이런 잘못된 전망은 기업의 과잉투자로 이어졌다.

일본 파소나그룹의 50~70대 시니어 신입사원들. [사진=지지통신 뉴스핌]

금융위기 이후 구조조정 노력의 부재도 저물가 원인으로 언급된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일본뿐 아니라 유럽도 도마 위에 오른다. 2008년 금융위기와 2011년 재정위기를 겪은 유로존은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등한시 했다. 이 결과 은행 자산이 생산성이 낮은 기업들에 묶여 경제 성장이 제약됐다. 금융위기 이후 부실 기업 퇴출이 비교적 활발했던 미국이 유럽과 경제 기초체력 면에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같은 구조적 문제에 대한 공감대와 해법이 없이 돈만 푸는 정책으로 저물가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전 세계가 일본화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일본은 1990년~2000년대 당시 다른 해외 국가의 높은 성장률 덕에 디플레이션 늪에 빠지는 속도가 더딜 수 있었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는 점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이미 마이너스 국채 금리가 급증해 올해 여름 글로벌 국채시장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등 금융시장에서 일본화 증상이 감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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