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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여사가 남긴 말…“남편의 평생소원 한반도 평화 정착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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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동행’으로 본 고(故) 이희호 여사의 인생 발자취
‘백 번 참으면 백 번 승리하리라’ 되새기며 DJ 조력
“여성‧약자 차별받지 않는 세상” 여성‧인권운동 의지

[서울=뉴스핌] 하수영 기자 = “남편의 평생소원인 한민족의 평화가 빨리 정착되기를 소망한다. 아울러 또한 나의 지극한 염원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이희호 여사 자서전 ‘동행’ 일부분 발췌)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가 10일 9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에 김 전 대통령의 평생의 동반자이자 정치적 동지, 그리고 인권‧여성운동가로서 일생을 바쳤던 이 여사의 삶을 그가 남긴 말들로 되짚어 본다.

[서울=뉴스핌] 이길동기자=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10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7세. 1922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 여사는 국내 대표 여성운동가로서 여성인권운동을 이끌었다. 1962 김대중 전 대통령과 결혼 김 전 대통령의 인생 동반자이자 정치적 동반자로 인생의 고락을 함께 했다. 사진은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1997년 12월 19일 일산자택에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 부인 이희호 여사가 집밖에서 기다리던 당원들과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모습. 2019.06.11.

◆ “꿈이 큰 남자의 밑거름되려고 결심” 존경·존중으로 가득했던 47년 결혼생활

1922년 서울시 종로구 수송동 외가에서 6남2녀 중 장녀로 태어난 이 여사는 유복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며 명문 이화여고와 서울대 사범대학을 졸업한 재원이었다. 미국에서 유학도 마쳤다.

귀국 후엔 YWCA에 들어가 사회 활동을 시작했다. 여성 운동가이자 인권 활동가로서 혼인 신고 의무화, 축첩 반대 등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한 운동에 앞장섰다. 김 전 대통령과는 1962년 결혼했다.

그래서인지 그가 2008년 발간한 자서전 ‘동행’에는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과 믿음, 그리고 여성‧인권 운동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드러나는 말들이 많이 담겨 있다.

김 전 대통령은 흔히 ‘인동초(忍冬草)’라고 불린다. 그는 평생 민주화 운동을 하며 숱한 고초를 겪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에 입문해서도 끊임없이 역경에 부딪혔다.

때문에 그의 삶을 표현하기에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는 꽃’이라는 의미의 인동초보다 적절한 말은 없을 것이라고 많은 이들은 입을 모은다.

김 전 대통령이 인동초로서 꿋꿋이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평생을 그의 곁을 지켰던 이 여사의 공이 컸다.

남들이 보기에,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대학 진학도 하지 못했던 김 전 대통령에게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며 이화여고와 서울대 사범대학까지 졸업했던 이 여사는 ‘과분한 여자’였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고(故) 이희호 여사의 빈소가 1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어 있다. 2019.06.11 mironj19@newspim.com

하지만 이 여사는 평생 남편인 김 전 대통령을 존경하고, 존중했다.

“나는 한 번도 내 주장과 내 학력을 내세우지 않았으며 늘 그의 판단을 따랐다. 개선할 문제점이나 아이디어가 있어도 남편에게 직접 말하기보다는 비서들에게 그들의 생각으로 건의하도록 했다.”

“85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메모광이다.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메모를 하는 남편을 보면 습관이 얼마나 무섭고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는다. 남들이 기억력이 비상하다고 말하는 나는 대체로 머리에다 저장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즈음 점차 기억력이 떨어져 자서전 작업을 하면서 애를 먹고 있다. 그래서인지 메모광인 남편이 더욱 존경스럽다.”

이 여사는 남편을 보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곤 했다. 남편의 장점을 통해 자신의 단점을 보완했다.

이는 반대로 김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완하고 보듬는 평생의 동반자이자 동지, 그 자체였다.

또 남편에게 자신과 다른 부분이 있어도 바꾸려고 하지 않고 그 자체로 존중했다. 김 전 대통령은 평생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지만 이 여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자서전에도 이 사실이 잘 나타난 부분이 있다.

“꿈이 큰 남자의 밑거름이 되자고 결심하고 선택한 결혼에서 한 가지 고집한 것이 있다. 나는 모태 신앙을 결코 양보하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각자의 신앙생활을 한다. 식탁에서도 그는 십자 성호를 긋고 나는 고개 숙여 기도를 한다. 그리고 주일에 그는 두 아들과 서교성당으로 가고, 나는 혼자 창천교회로 간다. 기독교의 각 교파가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모범적인 가정이지만 남 보기에 어색한 풍경이었을 것이다. 결국은 하나인데 남편은 하느님, 나는 하나님이라고 한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 [사진=김대중평화센터]

◆ 수감된 남편 위해 직접 법 공부하고 대통령에 청원까지…‘강인한 의지’
    “고난의 길이었지만 남편과 한 몸 되어 감사했던 삶” 자서전에 지난 삶 회고하기도

이 여사는 명문 학교에서 공부한 재원답게 주관도 뚜렷했고, 의지를 발휘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낼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이 여사는 그 대표적인 일화로 이화여고 재학 당시 있었던 일을 자서전에 소개했다.

“1936년, 나는 감리교 미션스쿨인 이화고녀에 입학해서 혼자 서울로 돌아왔다. 입학할 당시의 교복은 개량 한복인 검정 통치마에 자주색 저고리였다. 하복은 검정 치마에 흰 저고리 차림이었다. 댕기 머리로 3년을 다니다가 4학년 졸업반 때 그토록 선망하던 세일러복을 입을 수 있었다. 그와 함께 머리도 단발로 자를 수 있었다. 졸업 기념인 일본 수학여행을 포기하고 선택한 대가였다. 학교에서는 학부모의 부담을 고려해 둘 중 택일하라고 했다. 단발머리는 부모의 허락을 받도록 했다. ‘평생의 소원이니 단발을 허락해 주세요’라는 장문의 간절한 편지에 아버지는 붓글씨로 ‘단발을 허락함’이라고 보내주셨다.”

이후 이화여고를 졸업한 이 여사는 1942년 이화여자전문학교(지금의 이화여대) 문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당시 일제강점기 상황으로 인해 같은 해 12월 전시교육임시조치령이 내려지면서 대부분의 학과가 문을 닫았고, 이 여사도 학업을 중단했다.

고난이 닥쳤지만 이 여사는 오히려 이 때의 일을 ‘강인하게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계기로 삼았다.

“졸지에 학업이 중단된 나는 망연자실한 채로 친구 몇 명과 함께 김활란 박사를 찾아갔다. ”선생님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애처롭게 우리를 바라보시던 그분은 조용히 붓을 들고 글을 써 내려갔다. ‘백인백승(百忍白勝)’. ‘백 번 참으면 백 번 승리하리라’. 일본인들에게 치욕을 당하면서 자신에게 다짐하는 말이었으리라.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참고 살아남으라는 당부를 했다.”

이 여사는 이 말을 되새기며 해방 이후인 1946년 9월 국립 종합대학 서울대 사범대학 영문과에 입학해 학업을 다시 이어갔다.

이 여사가 이 때 기른 강인한 의지는 학창시절뿐만 아니라 김 전 대통령을 만나 결혼을 하고 가장 든든한 지지자이자 조력자가 돼 줄 때도 아낌없이 발휘됐다.

민주화운동을 하던 김 전 대통령이 1977년 수감되자 직접 법전을 보면서 형행법을 공부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청원도 넣었다.

“그(김 전 대통령)는 1977년 4월 14일 진주교도소로 이감되었다. 나는 화급하게 법전을 독학했다. 행형법을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법에 보장된 정당한 처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하려면 그 길 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병상조회 의뢰신청서와 교도소 처우개선 건의서 등을 법무부뿐만 아니라 대통령에게도 청원했다.”

고난과 역경으로 점철된 삶이었지만 이 여사는 비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자서전에도 “우리는 핍박도 많이 받았지만, 사랑을 더 많이 받은 은혜롭고 축복된 삶을 살았다”고 적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1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이희호 여사의 빈소를 찾은 조문객이 조문하고 있다. 2019.06.11 mironj19@newspim.com

이 여사는 자서전 말미에 지나온 삶에 대한 소회를 남기기도 했다. 역시 김 전 대통령과 함께 한 일생에 대한 감사함이 잘 드러나 있다. 또 일생을 바쳤던 여성‧인권 운동과 관련한 생각도 자서전 말미에 남겼다.

“87년 동안 살아온 과거를 보니 감회가 깊다. 선배들은 거의 세상을 떠나고 내 친구들 가운데 몇 사람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병고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나는 아직 건강하게 살아서 여행도 하고 남편과 함께 먼 나라로 출장을 가기도 한다. 이러한 날들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삶에 감사한다. 길고 험한 고난의 길이었지만 남편과 한 몸이 되어 서로 믿고 의지하며 굳건히 잘 걸어온 날들이었다. 남편의 평생소원인 한민족의 평화가 빨리 정착되기를 소망한다. 아울러 또한 나의 지극한 염원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인구의 절반인 여성이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받으면서 그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대한민국이 강자가 약자를 배려하고 보듬어 안아주는 따뜻한 사회가 되기를.”

평생 인동초의 옆을 든든히 지키다 먼저 인동초를 보낸 그는 마침내 2019년 6월 10일 인동초의 옆으로 돌아갔다.

한편 이 여사는 10일 오후 11시 37분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별세했다. 장례는 5일 간 사회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14일 오전 6시, 장지는 서울 국립현충원이다.

suyoung0710@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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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레노, 벼랑에 선 한국축구 구할까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2026 북중미 월드컵 이후 '난파선'이 된 한국 축구가 로베르토 모레노(48·스페인)에게 반등의 첫 단추를 맡겼다. 대한축구협회는 1일 천안 코리아풋볼파크에서 2026년도 제7차 이사회를 열고 모레노 감독을 포함한 6명의 코칭스태프 선임을 승인했다. 계약기간은 오는 11월 27일까지다. 9월부터 11월까지 6차례 A매치를 지휘한다. 이후 평가를 거쳐 2027년 1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리는 아시안컵까지 지휘봉을 맡을 가능성도 열어뒀다. 이번 선임은 단순한 '임시 감독 카드'로 보기 어렵다. 한국 축구가 모레노에게 기대하는 것은 단순한 승리가 아니다. 대표팀 축구가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신호탄을 쏘아 올려야한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2021-2022시즌 스페인 그라나다 CF 감독 재임 시절 로베르토 모레노. [사진=게티이미지]2026.09.01 psoq1337@newspim.com 모레노는 전술과 데이터 분석에 강점을 가진 지도자다. FC바르셀로나와 스페인 대표팀에서 루이스 엔리케 감독의 수석코치를 맡았다. 엔리케 사단의 핵심으로 스페인 대표팀과 세계 정상급 클럽의 전술 시스템을 경험했다. 선수 역할 설정과 상대 분석에도 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짧은 기간 선수들을 파악하고 전술적 색깔을 입혀야 하는 임시 감독의 조건과 맞아떨어진다. 코칭스태프도 사실상 '모레노 사단'으로 꾸려졌다. 에두아르도 도캄포 수석코치를 비롯해 하신트 마그리냐, 빅토르 브라보 데 소토 코치가 합류한다. 하비에로 초카로 피지컬 코치와 니코 보쉬 골키퍼 코치까지 모두 스페인 출신이다. 다만 모레노의 감독 경력에는 분명한 약점도 있다. 수석코치로 쌓은 경력에 비해 독립적인 감독으로서의 성과는 미미하다. AS모나코에서는 6개월 만에 지휘봉을 내려놨다. 그라나다에서도 성적 부진으로 경질됐다. 러시아 소치에서는 2부리그 팀의 승격을 이끌었지만 다음 시즌 초반 7경기에서 1승에 그치며 경질됐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2021-2022시즌 스페인 그라나다 CF 감독 재임 시절 로베르토 모레노. [사진=게티이미지] 2026.09.01 psoq1337@newspim.com 따라서 모레노에게도 임시 한국 사령탑 자리는 중요한 승부처다. 한국에서 성과를 낸다면 하락세였던 감독 경력을 반전시킬 수 있다. 아시안컵까지 지휘봉을 이어갈 경우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능력을 다시 증명할 기회도 얻는다. 한국 축구 역시 마찬가지다. 모레노의 성공은 곧 대표팀의 재출발을 의미한다. 전술이 정착되고 경기력이 개선되며 젊은 선수들의 경쟁력이 확인된다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최소한의 기반을 만들 수 있다. 모레노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다. 6경기 동안 대표팀의 새로운 정체성을 보여줘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과와 내용이다. 단순히 승수를 쌓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선수 선발의 기준을 세우고 포지션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 전술적 일관성을 확보해야 한다. 월드컵에서 드러난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경기장에서 보여줘야 한다. psoq1337@newspim.com 2026-09-01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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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총 10배 증가' 팀 쿡 시대의 종언 이 기사는 8월 31일 오후 4시56분 '해외 주식 투자의 도우미' GAM(Global Asset Management)에 출고된 프리미엄 기사입니다. GAM에서 회원 가입을 하면 9000여 해외 종목의 프리미엄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뉴스핌] 김현영 기자 = 2026년 8월 31일은 팀 쿡이 애플(종목코드: AAPL) 최고경영자(CEO)로서 보내는 마지막 근무일이다. 2011년 스티브 잡스 사망 이후 15년간 애플을 이끌어온 그는 다음 날인 9월 1일부로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나고, 오랜 기간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부문을 총괄해온 존 터너스 수석부사장이 새로운 수장 자리에 오른다. 취임 8일 만에 신제품 발표회라는 첫 시험대에 오르는 터너스의 데뷔 무대는 9월 9일로 예정돼 있으며, 이 자리에서 애플의 첫 폴더블 아이폰이 공개될 가능성이 유력하게 점쳐지면서 투자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시총 10배 키운 팀 쿡, 그가 남긴 유산 쿡이 재임하는 동안 애플의 시가총액은 약 3,500억 달러에서 4조 6000억달러 이상으로 불어났다. 지난 7월에는 잠시 5조 달러 선을 넘기도 했다. 전설적인 창업자의 뒤를 이어받는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부담을 수반하는 과제임에도, 쿡은 재임 기간 주주가치를 10배 넘게 끌어올렸다. 시장에서는 지난 15년간 전 세계에서 주주가치를 견인한 CEO들 가운데서도 가장 성공적인 축에 속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사진=애플] 쿡의 가장 큰 공로로 꼽히는 것은 2007년 처음 출시된 아이폰 사업을 애플의 지속적인 성장을 견인하는 엔진으로 완전히 변모시켰다는 점이다. 아이폰은 2025년 애플 전체 매출 4,161억 달러 가운데 2,095억 달러를 차지하며 단일 사업 부문이 전체 매출의 약 50%를 책임졌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글로벌리서치의 왐시 모한 애널리스트는 아이폰 제품군을 다양한 가격대에 걸쳐 폭넓게 확장시키고, 이와 연동된 공급망의 복잡성을 관리해낸 것이 전적으로 쿡의 공로라고 평가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쿡은 애플뮤직플러스, 애플TV플러스, 애플피트니스플러스, 애플워치, 에어팟 등 아이폰과 연계된 폭넓은 제품·서비스 생태계를 구축했다. 그 결과 서비스 부문은 이제 애플의 두 번째로 큰 사업으로 자리 잡아 지난해 1,091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세 번째로 큰 부문인 웨어러블 기기 역시 356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만약 쿡이 아이폰 프랜차이즈를 서비스 부문으로까지 확장하지 못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규모와 위상의 애플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2007년 아이폰을 공개한 故 스티브 잡스 [사진=블룸버그] 재임 기간 내내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각의 비판론자들은 아이폰의 뒤를 이을 만한 후속 제품이 부재하다는 점을 회사의 혁신 동력 약화를 보여주는 신호로 지적해왔다. 이에 대해 모한 애널리스트는 쿡이 물려받은 포트폴리오를 고려할 때 그가 각 사업 부문을 엄청나게 성장시켰으나, 아이폰이 워낙 크고 성공적이다 보니 다른 성과들을 가려버리는 측면이 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수년 만에 처음 선보인 신규 제품군이었던 비전 프로는 다소 아쉬운 성과에 그쳤지만, 애플은 이 헤드셋을 위해 개발한 일부 기술을 향후 출시할 스마트글라스에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들어서는 생성형 AI(인공지능) 도입이 더디다는 비판에 직면하며 차세대 개선판 시리(Siri)의 출시가 지연된 상태다. 그럼에도 AI 칩과 데이터센터에 수천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는 경쟁사들과 달리, 애플은 월가를 뒤흔들고 있는 AI발 밸류에이션 충격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 완벽주의자 터너스는 누구인가 바통을 이어받는 존 터너스는 2001년 애플 제품 디자인팀의 일원으로 입사한 뒤 2013년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부문 부사장으로 승진했고, 2021년에는 수석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으며 애플 입사 전에는 버추얼 리서치 시스템스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지난 3월 맥북 네오 공개 행사 등 주요 제품 발표 무대에 여러 차례 등장하며 존재감을 넓혀왔지만, 최근 몇 년간 회사를 유심히 지켜본 이들이 아니고서는 여전히 대중에게는 낯선 인물이라는 평가가 많다. 애플 팀 쿡 최고경영자(CEO, 좌)와 차기 CEO로 취임 예정인 존 터너스 [사진=블룸버그] 터너스는 애플이 추구하는 완벽주의적 성향을 그대로 체현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2024년 펜실베이니아대 공대 졸업식 축사에서, 자신이 맡았던 첫 애플 제품인 애플 시네마 디스플레이의 후면 나사 홈 개수를 두고 협력업체와 벌였던 실랑이를 소개한 바 있다. 협력업체가 제시한 나사는 홈이 35개였지만 터너스는 애플이 원하는 25개를 끝내 고수했다는 일화로, 사소해 보이는 부분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품을 대하는 자신의 원칙이라는 취지였다. 애플 측은 맥 라인업을 역대 최고 인기 제품군으로 끌어올리고 아이폰17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선보였으며 에어팟을 개선하는 데 터너스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여러 제품에 사용되는 재활용 알루미늄 합금 개발을 주도했고, 애플워치 울트라3에 적용된 3D 프린팅 티타늄 소재 작업에도 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이폰 17 프로 [사진=블룸버그] 지난 4월 발표된 이번 경영권 승계는 애플이 기기 사업이라는 본업에 다시 힘을 싣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공급망과 영업, 재무에 밝았던 쿡과 달리 터너스는 하드웨어 엔지니어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가 외부 영입 인사가 아니라 회사 내부를 25년 가까이 깊이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은 경영권 교체기에 흔히 발생하는 운영·전략적 실수의 위험을 낮춰주는 요인으로 꼽힌다. 다만 그만큼 더딘 전환기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터너스는 AI가 촉발한 기술업계의 대격변 한복판에서 애플을 이끌게 됐다. 아이폰을 뒤이을 차세대 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과제도 안고 있다. 스마트글라스나 AI 핀 등 AI 기반 신제품에 사활을 건 경쟁사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애플 역시 소비자 전자업계에서의 지배력을 이어가려면 이 분야에서 자체적인 답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투자자들은 정교한 가격 전략과 흠잡을 데 없는 실행력, 실질적인 파급력을 갖춘 제품 로드맵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 9월 9일 데뷔 무대, 관전 포인트는 '폴더블 아이폰' 터너스 신임 CEO에게 주어진 첫 시험대는 예상보다 훨씬 빨리 찾아온다. 애플은 9월 9일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애플파크 내 스티브 잡스 극장에서 신제품 발표 행사를 연다. 이미 "서프라이즈 앤드 샤인(Surprise and Shine)"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눈길을 끌 만한 제품 공개를 예고한 상태다. 애플은 구체적인 제품 라인업을 아직 밝히지 않았지만, 신형 아이폰과 업그레이드된 애플워치는 물론 스마트홈 시장을 겨냥한 여러 제품을 포함해 최대 8종에 달하는 기기가 공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애플이 8월 26일(현지시간) 내달 9일 행사 계획을 발표했다.[사진=애플 웹사이트] 가장 유력한 라인업은 아이폰18 프로와 아이폰18 프로맥스를 포함한 아이폰18 시리즈다. 더 낮은 발열과 긴 사용 시간을 구현할 것으로 기대되는 신형 2나노미터(nm) A20 프로 칩과 배터리 효율 개선·프라이버시 강화·혼잡한 데이터 네트워크 환경에서의 성능 향상을 가능케 할 C2 칩이 함께 탑재될 전망이다. 더 빠른 칩과 개선된 배터리, 카메라 성능이 적용되며 최소한 대형 모델에는 기계식 조리개가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아이폰 에어 2세대와 일반형 아이폰18은 이번 행사에서 빠질 것으로 보인다. 애플이 연중 판매를 고르게 분산하기 위해 이들 제품과 보급형 아이폰18e, 신형 맥, 아이패드의 출시를 내년 봄으로 미룰 것이라는 관측이다. 시장의 진짜 관심은 애플의 첫 폴더블 스마트폰에 쏠려 있다. '아이폰 폴드' 혹은 '아이폰 울트라'로 불릴 가능성이 있는 이 제품이 현실화된다면, 아이폰X(아이폰 텐)과 3D 안면인식 도입 이후 최대 변화로 꼽힐 만한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터너스가 이 제품 개발을 직접 주도해왔으며, 그의 취임 시점 자체가 출시에 맞춰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접었을 때는 여권 크기의 일반 스마트폰처럼 작동하다가 펼치면 책처럼 바깥쪽으로 열리며 태블릿 크기의 화면이 드러나는 구조로, 일반 스마트폰처럼 쓸 수 있는 5.3인치 외부 화면과 펼치면 나타나는 7.8인치 내부 화면 등 두 개의 화면을 갖출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유출 정보에 따르면 페이스 ID 대신 터치 ID를 탑재하고, 멀티태스킹에 최적화된 초박형 디자인으로 데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가격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여러 매체 보도와 시장조사업체 IDC의 나빌라 포팔 수석 리서치 디렉터에 따르면 예상 소비자가격은 2,000~2,500달러 수준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포팔 디렉터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이 제품이 상당한 성공을 거둘 것으로 내다봤는데, 최상위층 소비자를 겨냥한 제품인 만큼 이들이 구매를 위해 줄을 설 것이라는 설명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 프리미엄 폴더블 기기가 판매가를 끌어올리는 동시에 애플에 새로운 마진 성장 동력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IDC는 애플이 출시 첫해에만 1,000만 대 이상을 출하하며 침체가 예상되던 폴더블 시장 전체를 구해낼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힘입어 올해 폴더블 부문이 12.6% 성장하고 내년에는 성장률이 18%로 가속화될 것으로 IDC는 전망했으며, 2027년까지 애플이 전 세계 폴더블폰 출하량의 40%, 1,700만 대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②편에서 계속됨 kimhyun01@newspim.com 2026-09-0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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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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