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유작 반환 소송 실화 딴 신진 크리에이터 창작극
원고 의인화해 무대 위에서 직접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
[서울=뉴스핌] 황수정 기자 = 30여 년을 원고에 집착하던 78세 노파의 삶을 돌아보며 오히려 현재의 우리가 위로와 희망을 받는다.
[서울=뉴스핌] 백인혁 인턴기자 = 배우 조형균(왼쪽부터), 차지연, 장지후, 김선영, 고훈정이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뮤지컬 '호프'는 프란츠 카프카의 미발표 원고와 소유권을 둘러싼 실화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2019.04.02 dlsgur9757@newspim.com |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 뮤지컬 'HOPE: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하이라이트 시연에 참석했던 배우들은 입을 모아 "무대에 오르는 저희도 힐링을 받고 감동을 받는다. 이 감정을 그대로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뮤지컬 '호프'는 카프카 유작 반환 소송 실화를 모티브로 한 신진 크리에이터 강남 작가와 김효은 작곡가의 데뷔작이다. 2018년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뮤지컬 부문 최종 선정작으로 지난 1월 공연한 후, 다시 한번 관객을 찾게 됐다.
강남 작가는 "2011년쯤 카프카 미발표 원고 소송 기사를 봤다. 고양이털이 수북한 코트를 입은 여인이 '이 원고가 나야'라고 외치는 걸 보면서 저 사람은 어떤 마음인지 궁금했다. 공연으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창작산실을 통해 개발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김효은 작곡가 또한 "평생 종이조각을 지키고 살아온 모녀의 이야기를 듣고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만든 건지 궁금했다. 극으로 만들면 어떨까 호기심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뮤지컬 '킹아더' '록키호러쇼' '마마돈크라이' 등 다양한 작품을 연출한 베테랑 연출가 오루피나는 "처음 대본이나 음악을 접하기 전 간단한 스토리, 소재만 들어도 재밌었고 심쿵했다. 굉장히 연극적이면서도 음악이 세련됐다. 마음을 울리는 좋은 대본과 곡을 만나게 돼 너무 재밌었고 설렜고, 작업 과정도 행복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서울=뉴스핌] 백인혁 인턴기자 = 배우 김선영(왼쪽)과 장지후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뮤지컬 '호프'는 프란츠 카프카의 미발표 원고와 소유권을 둘러싼 실화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2019.04.02 dlsgur9757@newspim.com |
작품은 미발표 원고를 둘러싼 재판이라는 사건의 큰 틀만 따왔을 뿐, 캐릭터의 서사나 배경 모두를 재구성했다. 원고가 대체 무엇이기에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호프'가 지켰는지 초첨을 두고, 원고가 '호프'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됐는지 전 생애를 심도있게 조명한다. '호프'는 배우 차지연과 김선영이 맡는다.
오루피나 연출은 "지금까지 제가 했던 작품은 쇼적이고 화려한 미사여구가 많았다. 하지만 '호프'는 특수효과나 미사여구보다는 진실한 감정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이 제일 컸다. 배우들의 힘, 그들의 감정으로 쭉 끌어나가면서 완벽히 공연을 채워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배우 김선영은 "대본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전화로 캐릭터의 설명만 들었을 때 까마귀 같은 기괴한 외모에 지독한 냄새, 버짐이 얼굴에 잔뜩 껴있고 넝마같은 코트를 입은 채 30여 년을 나라와 재판하고 있다고 했다. 그 자체만으로 이 여자의 삶이 궁금했다. 배우로서 이런 역할을 하면 참 재미있고 신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작품에 참여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서울=뉴스핌] 백인혁 인턴기자 = 배우 송용진이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뮤지컬 '호프'는 프란츠 카프카의 미발표 원고와 소유권을 둘러싼 실화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2019.04.02 dlsgur9757@newspim.com |
특이한 점은 '호프'가 지키는 원고가 '케이'라는 인물로 의인화 된다는 것이다. '케이'는 한 번도 읽히지 않은 원고의 삶을 그리며 '호프'의 삶을 모두 지켜보며 그를 보호하거나 용기를 준다. 배우 고훈정, 조형균, 장지후가 맡는다.
강남 작가는 "육성으로 '호프'를 응원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케이'라는 인물이 필요했다. 사실 원고는 모든 사람의 욕망인 것 같다. '베르트'에게는 친구의 재능, '마리'에게는 '베르트'와 함께 했던 과거, 호프에게는 자신이 아닌 거라고 생각됐다. 늙은 여성이 내가 아닌 거라고 생각한다면 젊은 남성이지 않을까. 그렇게 자연스럽게 젊은 남성이 원고 '케이'가 됐다"고 설명했다.
배우 고훈정은 "배우마다 접근이 다르고, 공연을 준비하면서, 공연 하면서도 계속 고민해야 하는 관념적인 캐릭터다. 과연 '케이'가 '호프'의 생각에서 파생된 것인지, 주체성을 가진 캐릭터인지 고민이 됐다. 제가 접근한 건, 주체성을 가진 캐릭터였다. '호프'가 '케이'에게서 벗어나 스스로의 인생을 나아가길 염원하는 캐릭터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요제프 클라인의 친구이자 그의 원고를 받았던 '베르트' 역은 배우 송용진과 김순택, '호프'의 엄마이자 '베르트'의 부탁으로 원고를 맡게 되는 '마리' 역은 배우 이하나와 유리아, 과거 '호프'의 캐릭터는 이예은과 차엘리야, 이윤하, 과거 '호프'를 이용한 '카델' 역은 배우 양지원과 이승헌이 맡는다. 이들은 재판이 진행되는 재판장이자 변호사, 법정 기자 등으로도 분한다.
오루피나 연출은 "처음부터 1인 2역을 의도했었다. '호프'와 '케이'를 제외한 나머지 배역들은 현재 '호프'가 만나는 사람들과 과거에 만났던 사람들이다. 현재 재판장의 살마들로 인해 과거의 사람들과 연결된다. 과거를 넘나드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회상하는 '호프'의 기억이 보여지는 것이다. 끝까지 '호프'와 '케이'의 시선을 놓지 않으려고 했고, 이걸 공감해주는 분들이 생긴 것 같아 감사하다"고 전했다.
[서울=뉴스핌] 백인혁 인턴기자 =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배우들이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뮤지컬 '호프'는 프란츠 카프카의 미발표 원고와 소유권을 둘러싼 실화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2019.04.02 dlsgur9757@newspim.com |
뮤지컬 '호프'는 느리지만 천천히 성장하는 주체적인 여성 서사, 그리고 원고에 집착하던 인생에서 벗어나 한 발짝 나아가게 되는 과정을 통해 관객에게도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배우 차지연은 "진부한 표현이지만 무대 위에서 힘이 되고 위로를 받는다. 특별한 연령층, 성별 구분짓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제가 느끼는 위로와 힘, 진심을 관객들도 느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배우 송용진 또한 "누구나 다 힘들다. 공연을 통해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에 '케이'가 '호프'에게 '수고했다'고 말하는데 저도 그 말에 힐링이 된다. 열심히 해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관객들에게도 전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뮤지컬 '호프'는 오는 5월26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된다.
hsj121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