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사이서 '대학 서열'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
교육부·대학 장밋빛 전망과 달리 난항 예상
[서울=뉴스핌] 임성봉 기자 = 단국대가 복수학위제 도입을 두고 학생들과 갈등(12월 17일자 뉴스핌 경인지역 복수학위제 협약에 단국대 학생 '반발')을 빚는 가운데 인천대 총학생회도 반발 움직임을 보이는 등 사태가 확산되고 있다.
경쟁력 강화와 융합형 인재 육성이라는 장밋빛 전망과는 달리 학생들의 반발에 대학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복수학위제’를 둘러싼 쟁점이 복잡해 한동안 진통이 계속될 전망이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인천대학교 총학생회가 17일 오전 총장실 앞에서 복수학위제 도입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인천대 총학생회] |
◆복수학위제 도입 가시화
교육부는 2016년 고등교육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하고 이듬해 국내 대학 간 복수학위제를 허용했다. 당시 교육부는 “한국의 고등교육은 급속하게 팽창했으나 국제적 호환성이 부족한 문제를 안고 있다”며 “대학의 자율적인 학사제도 운영 및 해외진출을 강화하는 제도적 기반 마련을 통해 융합․창의적 인재 양성을 추진하고자 한다”고 개정이유를 밝혔다.
당초 교육부는 학위 남발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국내 대학 간 복수학위를 허용하지 않았으나 창의적 융합인재 육성을 이유로 지난해 5월 이를 전면 허용했다.
이에 따라 복수학위제를 시행하는 대학의 소속 학생은 학위 취득에 필요한 요건을 충족하면 양 대학으로부터 각각 학위를 수여 받을 수 있다.
복수학위제 도입을 두고 각 지역 대학들이 물밑 작업을 벌이고 있는 사이 경인지역 대학들이 가장 먼저 시동을 걸었다.
경인지역대학총장협의회는 관련법 개정 4개월 만인 지난해 9월 ‘경인 지역 대학 간 상호 교류·협력에 관한 업무 협약’을 맺고 사전 작업에 돌입했다. 이후 지난달 27일 이들 대학은 ‘복수학위 학생교류에 관한 협약’을 맺고 내년부터 복수학위제를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운영 방안은 '4+1' 제도로 결정됐다. 소속 대학에서 8학기(4년)를 이수하고 2학기(1년)는 교류대학에서 수업을 듣는 방식이다.
현재 해당 협약을 맺은 대학은 강남대, 단국대, 명지대, 서울신학대, 성결대, 안양대, 인천대, 인천가톨릭대, 칼빈대, 평택대, 한국산업기술대, 한국항공대, 한세대, 한신대 등이다.
특히 경인지역 대학들을 시작으로 서울권을 비롯한 타 지역 대학들도 ‘복수학위제’ 도입에 뛰어들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학 입장에서는 큰 재원을 들이지 않고 소속 학생들에게 다양한 학문의 기회와 학위까지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복수학위제 도입에 학생들 반발
이처럼 복수학위제 시행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정작 학생들은 해당 제도 시행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학생들이 복수학위제 도입에 찬성할 것으로 예상했던 대학들은 부랴부랴 설득 작업에 나서는 등 진땀을 빼고 있다.
단국대 총학생회운영위원회는 지난 16일 입장문을 발표하고 “학생들에게 사전 협의나 통보 없이 복수학위제를 추진한 것은 날치기”라며 이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학운위는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는 타 대학들이 있어 현재 해당 대학 총학생회 관계자분들과도 연락을 취하고 있고 공동대응 또한 염두에 두고 있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한 상태다. 학운위는 17일 오후 10시 30분에 확대운영위원회를 개최하고 대학 측의 복수학위제 시행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단국대학교 학생들이 캠퍼스내 게시판에 '경인지역 복수학위제 협약'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부착해 놓았다. [사진=단국대 총학생운영위원회] |
국립 인천대학교 총학생회도 복수학위제 도입에 반대하고 나섰다.
인천대 총학생회는 이날 오전 입장문을 내고 “경인지역대학총장협의회의 (복수학위제 도입에 대한)내용을 수용할 수 없다”며 “학우 분들의 의견을 우선적으로 반영하고 적극적으로 개진해 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인천대 총학은 현재 총장실 앞 1인 시위에 돌입했으며 학생들을 대상으로 복수학위제에 관한 온·오프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특히 이들 대학 총학생회가 다른 대학 총학생회와의 공동대응을 예고하면서 사태는 더 커질 전망이다.
◆학교, 학생 ‘복잡한 속내’..대학서열 문제 '첨예 대립'
복수학위제는 상호 협정을 맺은 대학끼리 학점을 인정하는 제도다. A대학과 B대학이 복수학위제 협정을 맺는다면, A대학 학생이 B대학에서 학점을 이수하더라도 B대학의 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
복수학위제의 도입 취지와 운용 방향 등을 보면 대학과 학생 모두에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제도로 보이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고 있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는 ‘대학 서열’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힌다. 복수학위제 참여 대학 간에도 엄연히 ‘급’이 있는데 같은 학위를 받는 건 불공평하다는 설명이다. 복수학위제가 이른바 ‘학력세탁’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경기지역 한 대학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왔는데 덜 공부한 학생과 같이 학위를 수여 받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을 수 있다”며 “대학 서열화 문제 등 논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이런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힐 수는 없을 것 같다”고 귀띔했다.
같은 지역 대학생 A씨는 “만약 서울권 대학과 경기권 대학이 복수학위제를 시행한다면 서울권 학생은 반대하고 경기권 학생은 찬성할 것”이라며 “마찬가지로 현재 인지도가 낮은 대학 학생들 입장에서는 조금 더 이름 있는 대학의 학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반발 움직임이 없지만, 인지도가 높은 대학에서는 반대 목소리가 크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장학금 지급 여부 △개방 학과 선정 △졸업장 표기 등의 문제도 남아있다.
이들 대학은 교류대학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할 경우, 기존 학생들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섣불리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또 어느 학과를 복수학위제 참여 학과로 선정할 것인지, 인원은 얼마나 받아들일 것인지도 쟁점으로 남아있다. 인기 대학의 경우, 교류대학의 학생들이 대거 몰리면 그만큼 강의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학생들의 주장이다. 이 같은 이유로 각 대학들이 비인기 학과를 중심으로 개방하면서 반쪽짜리 복수학위제로 전락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기존 학생들과 교류대학 학생 간 ‘같은 졸업장’을 받는 지 여부도 관건이다. 기존 학생과 교류대학 학생들의 졸업장 사이에 별다른 차이점이 없다면 사실상 학력세탁을 하는 것과 다름 없다는 이유에서다. 복수학위제 시행 대학들 역시 이에 대한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수도권 한 대학 관계자는 “복수학위제를 통해 학생들이 얻을 수 있는 장점이 많은데 대학 서열화라는 한국 교육의 고질적인 문제 탓에 제도 안착이 쉽지 않을 것 같다”며 “현재 복수학위제 참여 대학 실무진들이 예상되는 문제 등에 대해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imb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