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웹스터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뮤지컬로 재탄생
오는 18일까지 백암아트홀에서 공연
[서울=뉴스핌] 황수정 기자 = 어린 시절, 누구나 자신만을 위한 '키다리 아저씨'를 꿈꾼 적이 있을 거다. 삶에 치여 어렸을 때를 잘 떠올리지도 못하는 지금, 따뜻하고 귀여운 두 사람을 통해 다시 한번 순수했던 동심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 공연 장면 [사진=달컴퍼니] |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연출 박소영)는 1912년 발간된 진 웹스터(Jean Webster)의 대표적인 명작소설 '키다리 아저씨'를 원작으로, 뮤지컬 '레미제라블'로 토니어워즈 최고 연출상을 받은 존 캐어드,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로 최고 작곡·작사상을 수상한 폴 고든이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극은 고아원의 큰 언니 '제루샤 애봇'이 후원자 '제르비스 펜들턴'을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다. 제루샤의 수필을 읽고 글솜씨에 반한 제르비스는 한 달에 한 통씩 편지를 쓰는 대신 답장은 없다는 것을 조건으로 제루샤를 후원한다. 제루샤는 고아원을 벗어나 학교에 다니고 친구들을 사귀고 자신만의 꿈을 펼칠 기회를 가지게 된다. 제루샤는 제르비스를 '키다리 아저씨'라고 오해하고, 제루샤가 궁금했던 제르비스는 정체를 숨긴 채 직접 만나며 사랑을 키워나간다.
2시간의 공연이지만 두 사람의 4년간 이어온 이야기가 담긴다. 긴 시간 동안 제루샤는 '키다리 아저씨'에 자신만의 소망과 상상을 더해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제르비스는 제루샤를 향해 커지는 마음 때문에 힘들어한다. 소소하지만 누구나 겪어왔을 상황들이 공감도를 높인다. 또 아무것도 몰랐던 소녀에서 여성 인권까지 생각할 정도로 성장한 제루샤의 모습은 어린 시절과 현재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 공연 장면 [사진=달컴퍼니] |
후원을 받을 수 있는 조건 '편지'는 극 속에서 매우 큰 역할을 한다. 이야기의 진행 자체가 제루샤가 제르비스에게 쓰는 편지로 대부분 이어진다. 제루샤의 시선에서 그의 일상이 전해지고, 호기심 가득한 질문도 펼쳐진다. 몇 초도 되지 않아 메시지를 주고받고, 전화도 할 수 있는 세상에서 한 자 한 자 꼭꼭 눌러 쓰고 며칠을 기다려야 받을 수 있는 편지라는 매개체가 지금은 쉽게 느낄 수 없는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한다.
제루샤와 제르비스가 직접 대화하는 장면은 극히 드물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일방통행이지만, 발랄하고 당돌한 제루샤의 입장과 의외로 허당인 제르비스의 입장이 섞이면서 꽤 귀여운 장면들이 많이 연출된다. 특히 아저씨로 오해받아 '나 늙었대'라고 투정하거나 제루샤 주변인을 질투하는 제르비스의 모습은 꽤나 웃음 짓게 만든다.
무대는 대부분 목재 소재로 이뤄져 있어 따뜻한 분위기를 배가시킨다. 무대 전면은 제루샤의 공간, 후면은 책으로 가득찬 커다란 책장과 책상이 있는 제르비스의 공간으로 나뉜다. 특별한 장치 없이 그저 배우들이 큰 나무 박스를 열어 소품을 꺼내거나 이동시키는 정도가 다지만, 거창하거나 화려하지 않아 오히려 좋다. 편지를 읽으며 제루샤의 행동을 제르비스가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시선이 '키다리 아저씨'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 공연 장면 [사진=달컴퍼니] |
무엇보다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넘버다. 두 사람의 아기자기한 모습을 그대로 녹여낸 서정적인 멜로디와 가사는 관객들이 극에 몰입하게 만드는 가장 큰 역할을 한다. 잔잔한 스토리와 캐릭터의 매력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며 극의 흐름을 주도한다.
이번 공연은 초연과 재연을 함께 했던 배우들이 모두 모였다. '제루샤' 역은 배우 임혜영, 이지숙, 유리아, 강지혜가 맡으며 '제르비스' 역은 배우 신성록, 송원근, 강동호가 함께한다. 이들은 오랜 기간 맞춰온 호흡으로 한층 성숙하고 깊은 울림을 전한다. 뿐만 아니라 '제르비스' 역에 배우 성두섭이 유일한 뉴캐스트로 합류해 신선함을 더한다.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는 오는 18일까지 백암아트홀에서 공연한다.
hsj121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