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총리 '일하는 방식 개혁'에 의료계 직격타
'진료 간호사제' 도입 등 일본 의료계 대책 마련 급급
[뉴스핌=김은빈 기자] '일하는 방식 개혁(働き方改革)' 파도에 일본 의료계가 머리를 싸매고 있다. 아베 총리가 내세우는 일하는 방식 개혁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2024년 부터는 초과근무에 상한선이 생기기 때문이다.
업무 특성 상 초과근무가 일반적인 의료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과로를 방지하는 건 중요하지만, 초과근무를 줄이면 외래진료 감소 등 의료서비스 저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니혼게이자이신문은 30일 "환자가 안심할 수 있는 의료체계와 일하는 방식 개혁 도입이 양립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 병원 풍경 <사진=뉴시스> |
◆ "의료 서비스 질 저하로 환자에게 폐가 된다"
"어째서 주치의가 임종에 입회하지 않은 겁니까"
도쿄에 위치한 성루카 국제병원에 편지가 한 통 도착했다. 이 병원에서 사망한 환자의 가족이 보낸 편지였다. 환자의 용태가 급변해 임종을 맞이하던 순간 주치의는 비번. 임종을 지켜본 건 당직의였다. 당직의의 처치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주치의의 입회를 원했던 가족의 바람은 지켜지지 않았다.
성루카 병원은 2016년 6월 노동기준감독처의 현장검사를 받은 뒤로 야간 근무엔 주치의 대신 당직의가 환자에 대응하도록 방침을 바꿨다. 현장검사에서 의사의 잔업시간이 너무 많다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해 6월부터는 토요일의 외래진료 대상 과를 34과에서 14과로 줄였다.
조치 덕분에 의사 1명 당 평균 잔업시간은 월 100시간에서 40시간 전후로 뚝 떨어졌다. 하지만 병원장은 "의료 서비스 저하로 환자에게 폐를 끼치고 있다"고 말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대대적으로 내걸고 있는 '일하는 방식 개혁'의 주 골자 중 하나는 초과근무를 줄이는 것이다. 국회에 제출 예정인 노동기준법 개정안은 초과 근무 상한을 연 720시간 이내로 하고 있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시행은 2019년 4월이다. 의사의 경우 5년의 유예시간이 주어지지만 2024년 4월 이후엔 상한 규제가 적용된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일본 병원 상근의사는 주 평균 56시간 28분을 일한다. 정식 근무 시간을 주 40시간으로 환산하면 시간 외 노동은 연 850시간을 초과한다. 노동기준감독처의 정기감독결과에 따르면 의료보건업의 노동시간 위반율은 2016년 36%로 전체 평균의 21%를 상회한다.
특히 산부인과 의사들의 걱정이 크다. 일본 산부인과의사회가 법안을 그대로 따를 경우를 추산해본 결과 산부인과 의사 부족으로 약 1000여곳에 달하는 모자(母子)의료센터와 일반 병원의 절반 정도가 운영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나카이 아키토(中井章人) 일본 산부인과의사회 상무이사는 "출산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문제이기 때문에 노동시간을 관리하기가 어렵다"며 규제를 신중하게 적용시키지 않으면 의료가 붕괴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의사들이 딜레마에 처하는 상황도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일본 의사법은 의사가 진료를 거부할 수 없도록 '진료 거부 금지' 의무를 정하고 있다. 하지만 잔업시간의 상한을 정할 경우엔 의사 부족으로 환자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 환자를 받아들이면 노동기준법 위반, 거부한다면 의료법 위반이 되는 상황이다.
후쿠이 쓰기야(福井次矢) 성루카 국제병원 원장은 "행정부에 문의를 해봤지만, 명확한 대답은 없었다"고 했다.
◆ '진료 간호사'도, 의사 추가 채용도 한계…뾰족한 수 없어
도쿄베이 우라야스이치가와(浦安市川) 의료센터는 의사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6명의 '진료 간호사'를 고용했다. 진료 간호사는 일반 간호사보다 담당하는 업무 영역이 훨씬 큰 간호사로, 환자에 투약 용량을 정하는 등 재량권을 갖고 있다.
이에 진료 간호사에게 의사의 업무 중 일부를 이양하는 방법이 대책으로 논의되고 있다. 지난 2월 후생노동성의 검토회에서도 의사의 노동기준법 적용에 대한 긴급 대처책 중 하나로 진료 간호사에 업무를 이양하는 방식을 검토했다.
하지만 진료 간호사의 경우 대학원에서 2년 간 추가적으로 교육을 받아야 하는 등 양성 시간이 필요하다. 신문은 "육성 비용과 시간을 고려하면 당장 투입해서 효과를 볼 수 있는 대책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물론 병원이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병원 경영은 의료보험제도에 근거하기 때문에, 병원의 비용이 증가하면 보험료를 내는 일본 국민에게 부담이 돌아간다.
서비스 저하를 각오하고 진료체계를 수정해도 환자나 가족의 사정때문에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지바(千葉)현의 스와(諏訪) 적십자병원은 지난해 12월부터 의사가 수술이나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는 건 평일 8시반~17시까지로 한정시켰다. 의사가 야간이나 주말에 설명을 할 수 없도록 했다. 하지만 신문은 현재도 스와 병원에서는 야간과 주말에 의사가 설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전한다.
고령 환자의 경우 자녀와 멀리 떨어져서 사는 경우가 많은데, 자녀들은 평일에는 일 때문에 병원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문은 "긴급성이 없는 외래 이용은 자제하고 종합병원과 동네병원을 구분해서 이용하는 게 해결의 실마리일 지 모른다"고 전했다.
[뉴스핌Newspim] 김은빈 기자 (kebj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