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근한 유가 상승 및 헤지가 원인
[뉴욕 = 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연장에 대한 기대가 번지는 가운데 미국 에너지 업체들의 주식과 채권이 탈동조화를 보여 주목된다.
뉴욕증시에서 S&P500 지수를 구성하는 에너지 업종지수가 수익률 하위권에 머문 반면 회사채는 탄탄한 상승세를 연출한 것.
원유 <출처=블룸버그> |
시장 전문가들은 두 개 자산의 엇갈리는 행보의 배경을 파악하는 데 고심하고 있다.
25일(현지시각) 업계에 따르면 연초 이후 S&P500 에너지 섹터는 11% 급락했고, 이에 따라 1650억달러에 달하는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이와 달리 채권시장에서는 에너지 섹터가 훈풍을 내고 있다. 관련 회사채가 같은 기간 3% 이상 오름세를 나타낸 것.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메릴린치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브렌트유가 배럴당 45달러를 뚫고 내려갔다가 반등한 이후 투기등급 에너지 회사채가 7% 치솟았고, 투자등급 회사채 역시 5.6% 뛰었다.
사우디 아라비아를 필두로 이란과 이라크 등 OPEC 및 비회원 산유국들이 감산 연장안에 의견을 모으는 가운데 에너지 섹터 주식과 회사채의 디커플링이 투자자들 사이에 화제다.
투자은행(IB) 업계는 국제 유가의 미지근한 상승 폭에서 원인을 찾았다. 유가가 석유가스 업계의 디폴트 리스크를 차단할 만큼 올랐지만 수익성과 주주 배당을 크게 늘릴 정도로 오른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지난해 13년래 최저치로 밀렸던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50달러 선에서 안정적인 등락을 보이고 있다.
OPEC과 비회원 산유국들이 지난해 감산 합의를 이뤘고, 이를 실제로 충실하게 이행하면서 브레이크 없는 유가 하락에 반전을 이뤄냈다.
OPEC <사진=블룸버그> |
유가가 배럴당 30달러 선에 머물렀다면 부채 규모가 높은 석유 업체들의 생존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데 이견의 여지가 없다.
유가 폭락 과정에 주요 업체들의 고강도 구조조정과 경영 효율성 제고 역시 채권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일조했다.
문제는 주요 업체들이 벼랑 끝 위기를 모면했을 뿐 강력한 성장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UBS 웰스 매니지먼트의 비나이 판드 단기 투자자산 헤드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와 인터뷰에서 “유가 반등으로 석유업체들의 부채 상환 불능에 대한 리스크가 크게 떨어졌지만 주식 투자자들에게 배당을 인상할 만큼 수익성이 개선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올들어 엑손 모빌과 필립스66이 각각 9% 급락했고, 유전 서비스 업체 슐룸베르거가 15% 밀린 것은 이 같은 맥락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주식과 채권의 탈동조화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실상 기업들의 수익성이 상당폭 개선됐기 때문이다.
컨설팅 업체 RBN에너지에 따르면 43개 주요 석유업체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90억달러로, 지난 2015년과 2016년 각각 1280억달러와 310억달러의 영업손실을 낸 데 반해 커다란 경영 개선을 이뤄냈다.
이에 대해 시장 전문가들은 원유 선물시장의 헤지 움직임을 배경으로 지목했다. 헤지는 신용 투자자들에게 현금흐름을 확보해 주는 역할을 하지만 주식 투자자들에게는 상승을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
T 로우 프라이스의 앤디 맥코믹 채권 헤드는 FT와 인터뷰에서 “국제 유가가 가파르게 떨어지지 않을 경우 헤지 물량의 만기가 돌아오는 연말 주가 반등이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뉴욕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