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부동산 기초자산 공시 강화 검토중"
[편집자] 이 기사는 8월 28일 오전 11시14분에 프리미엄 뉴스서비스 ‘ANDA’에 먼저 출고했습니다.
[뉴스핌=박민선 기자] 현대증권의 케이파이 글로벌 (K-FI Global) ELS가 또다시 완판됐다. 부동산 투자에 과도한 포지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그간 각종 논란이 있었지만 투자자들 열기는 되레 뜨거워지고 있다. 여타 경쟁사 ELS보다 높은 수준의 수익률은 투자자들에게 놓치기 싫은 '기회'다.
28일 현대증권에 따르면 지난 25~26일 이틀간 모집한 케이파이 18호의 청약경쟁률은 8.62대 1을 기록했다. 지난 7월 진행됐던 17호 당시 경쟁률(7.68대 1) 보다도 높고, 지금까지 평균 경쟁률(4.7대1)에 비해서도 훨씬 높은 수준이다. 누적 발행 규모도 5605억원으로 불어났다.
인기 비결은 남다른 수익률이다. 케이파이 18호는 지난 26일 코스피200종가(227.71p) 기준 1년 후 지수가 최초 기준가 대비 90%(204.9p) 이상인 경우 연 3.6%를 지급한다. 지수가 35%(79.69p) 미만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면 연 3.4%를 제공하는 원금부분보장형 상품이다.
하지만 케이파이 ELS를 바라보는 금융투자업계 시선에는 불안감이 묻어난다. 현대증권 케이파이가 각종 투자관련 신고서 등 공식적으로 기초자산을 '코스피200'지수로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 투자자금의 상당 부분은 해외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케이파이 ELS가 기초자산과 상관없는 자산에 투자되고 있다는 점은 업계에서 꾸준히 문제시 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증권 측은 "투자 자산의 운용과 관련해 별도의 법규상 제약이 없다"며 18호까지 시리즈 발행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25~26일 모집한 현대증권 케이파이 (K-FI)18호 상품 광고 |
◆ 하이리턴-하이리스크 자산으로 '외줄타기'?
현재 현대증권은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의 건물을 매입해 마스터리스(장기 임차계약)를 통한 임대료로 해당 ELS의 수익률을 충당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4년말 현재 현대증권의 임대 수익 목적 등 투자용 부동산 장부가액은 6793억원에 달한다. 이는 2013년 말의 789억원 대비 무려 8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국내 10대 증권사 가운데 단연 최대 규모다.
현대증권은 최근 일본의 대형 쇼핑몰을 매각하면서 2년만에 200억원대의 차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단기간 고수익을 거둘 수 있는 부동산 투자의 매력이 현대증권을 부동산 투자에 더욱 집중하게 하고 있다.
현대증권 관계자는 "투자 신용등급이 높은 기업들에게 임대를 제공함으로써 연 7~8% 수준의 수익을 거두고 있다"며 "환헷지를 포함할 경우 수익률은 10%에 가까운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ELS를 통해 끌어모은 자금을 부동산 투자에 활용하는 것은 해외 부동산 시장 변동성 측면에서 간과할 수 없는 리스크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과 같은 호황시에는 장기 임대를 통한 수입과 시세차익 등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거둘 수 있지만 부동산 시장에서 변수가 발생하면 ELS 투자자들은 현대증권과 함께 리스크를 떠안아야 한다. 1차적으로 ELS의 수익률이 고정돼 있는 만큼 부동산 가치 하락으로 인한 손실액은 현대증권의 몫이 된다. 하지만 증권사 자체의 유동성에 문제가 생길 경우 약정한 금액 보장이 어려워질 수 있다. 특히 자본시장법상 ELS는 회사채와 같은 개념으로 적용되므로 증권사가 파산할 경우 투자자 보호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현대증권의 자본금은 1조1830억원 규모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임대 수입을 통해 몇년간 약정 수익을 채울 수는 있겠지만 지속적으로 발행한 ELS의 만기 이전에 변수가 발생한다면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다"며 "문제는 고객들이 투자 자산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이러한 리스크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증권은 케이파이ELS와 관련된 각종 신고 서류상 기초자산으로 코스피200지수만 적시했을 뿐 해외 부동산 투자와 관련해서는 별도의 기재를 하지 않고 있다.
또한 부동산 자산을 통한 유동성 확보가 제한적이라는 점도 우려스러운 부분으로 꼽힌다. 현대증권이 해당 건물들을 장기 보유하고 있는 상태에서 유동성에 문제가 생길 경우 1년 단위로 만기가 돌아오는 ELS의 상환을 위한 자금은 신규 발행한 ELS를 통해 충당하게 되는 일종의 '돌려막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때문이다.
◆ 당국, 기초자산 공시 강화쪽으로 가닥
문제는 현재 ELS 자금 운용과 관련된 아무런 제재 규정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같은 부분이 논란이 되면서 당국은 지난 4월 현대증권에 대해 현장점검을 실시했다. 하지만 4개월여가 흐른 지금까지 이렇다 할 보완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추후 보완 제도가 마련되더라도 기존 발행건에 대해선 소급 적용이 되지 않는다. 현대증권으로서는 당장 케이파이 발행을 머뭇거릴 이유가 전혀 없는 셈이다.
금융감독원 한 관계자는 "근본적으로 헤지자산의 운용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제약하는 것은 파생결합증권 특성에 맞지 않다"며 "발행사의 신용으로 발행되는 ELS를 기초자산과 괴리가 발생한다는 이유만으로 발행 자체를 막을 수는 없는 것 같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대신 당국은 운용 방식이 아닌 투자 대상에 대한 공시 기준을 강화하는 방안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투자자들이 기초자산을 정확히 인식하고 투자 결정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책을 모색하겠다는 것.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발행자금을 통상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운용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며 "시장 건전성 측면에서 기초자산에 대해 보다 명확히 공시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부동산 투자에 대한 수요도 존재한다는 점에서 투자대상 자체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등과 연계된 자산으로 운용할 경우 일반 투자자들이 원금 손실의 가능성을 인지할 수 있도록 기초자산으로 명확히 공시되도록 하는 부분을 놓고 논의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같은 방안이 확정될 경우 케이파이는 기초자산에 부동산을 포함시키게 돼 실물자산에 투자하는 DLS(Derivatives Linked Securities,기타 파생결합증권)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 증권사 또 다른 관계자는 "기초자산에 부동산을 포함시킬 경우 투자 대상으로 부동산이 표면에 드러나 투자자들이 과거대비 위험성을 인지하게 된다"며 "이 경우 케이파이가 현재와 같은 인기를 이어가긴 어려워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뉴스핌 Newspim] 박민선 기자 (pms071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