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정비사업 5곳 모두 유찰..주택경기 탓에 건설사 보수적 태도
[뉴스핌=이동훈 기자] 재건축, 재개발 공사를 할 건설사를 선정하는 입찰이 유찰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과거 건설사들이 재건축·재개발 조합에 금품까지 살포하며 사업을 따내기 위해 치열한 수주 경쟁을 펼쳤던 모습과 180도 달라진 것이다.
주택값이 하락한 때문이다. 무작정 공사를 맡았다가 미분양이 발생하면 오히려 손해가 되는 탓에 건설사들이 재건축·재개발 공사를 꺼리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시공사를 찾지 못해 1년 정도 착공이 지체된 사업장도 있다. 주택경기 침체가 정비사업에서 건설사들의 위치를 ‘을’에서 ‘갑’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서울 정비사업, 시공사 한곳도 못 찾아
서울지역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입지가 상대적으로 좋은 강남 사업장 뿐 아니라 강북 대단지도 여지없이 시공사 선정에 실패하고 있다.
14일 부동산 업계 및 재개발·재건축 클린업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서울에서 시공사 선정 입찰공고를 마감한 사업장 5곳 모두 파트너를 찾지 못했다.
이중 4곳은 건설사들이 아예 입찰에 참여하지 않아 유찰됐다. 나머지 한곳은 시공사 2곳이 입찰에 참여했으나 주민들이 대형 건설사와 계약하겠다며 입찰에 참여한 건설사를 거부했다.
강남권 ‘노른자위’ 입지도 시공사 선정에 난항을 겪고 있다. 서초 방배동 ‘방배5구역’ 재건축 예정지에선 지난 2월 시공사 선정이 무산됐다. 방배동 중심에 위치한 데다 공사비 6700억원 규모에 달하지만 컨소시엄 한곳이 입찰에 참여 유효한 경쟁이 성립되지 않았다.
‘지분제’가 발목을 잡았다. 지분제는 분양 후 수익이나 손실을 조합이 책임지는 ‘도급제’와 달리 시공사가 책임을 져야한다. 일반분양이 1000가구가 넘어 건설사 부담을 컸다는 게 건설 업계의 설명이다.
이 단지는 단독주택 및 연립주택 상가 등 694개동을 헐고 최고 32층, 44개동, 2557가구를 짓는 대규모 사업장이다.
강동구 등촌1구역 재건축은 지난해 4월부터 시공사 입찰공고를 3번 실시해 모두 유찰됐다. 사업 손실을 조합이 떠안는 도급제 방식으로 주친됐으나 건설사들은 이 마저도 외면했다. 경쟁입찰방식으로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까지 날려 수의계약 방식으로 시공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 단지는 최고 13층, 9개동, 410가구로 구성된다. 공사비는 총 871억원 규모다.
은평구 증산5구역 재개발과 천호뉴타운제2구역 재건축도 각각 한차례 시공사 선정에 나섰다 실패했다. 이들 단지는 각각 1704가구(공사비 4116억원), 194가구(공사비 3766억원) 규모다.
◆주택경기 악화로 리스크(위험) 높아져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황금알은 낳던 거위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이유는 주택경기 악화 탓이 크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따내기 위해 건설사들이 경쟁을 벌이는 것은 더 이상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불경기인 데다 조합원 간 소송도 많아 사업 리스크가 높아져서다. 업황 부진에 건설사들이 수익성 위주로 사업을 타진하다보니 정비사업에 찬바람이 불고 있는 셈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대형 건설사 간 시공권 쟁탈전이 적지 않았다. 지난 2009년 성북구 장위9구역(1280가구) 시공사 선정 입찰에는 대림산업, 롯데건설, 금호산업 3개사가 격돌했다. 같은 해 광진구 구의1구역 재건축은 삼성물산, 현대건설, 포스코건설, 현대산업개발이 싸웠다. 경기 부천 도당 1-1구역 재개발(1896가구)은 현대건설과 삼성물산, 대림산업이 치열한 수주 경쟁을 했다.
지난 2010년 총사업비 4조원에 이르는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현대건설컨소시엄(현대건설, 현대산업개발, 롯데건설, 대우건설)과 금호-경남 컨소시엄, 한양-벽산 컨소시엄이 경합을 벌였다.
대형 건설사 주택사업부 한 관계자는 “주요 재건축 단지는 조합과 비대위원회 간 소송이 여러 건 걸려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며 “시공사로 선정되더라도 분양 시기가 상당히 늦어질 수밖에 없고 이주비 및 운영비 등 조합원 대여금을 환수하기도 어려워 사업 추진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강남권 핵심 입지 중 사업이 빠르게 진행될 단지가 아니면 지분제 사업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뉴스핌 Newspim] 이동훈 기자 (leed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