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규제 완화로 외환위기 카드사태 등 불러
[세종=뉴스핌 곽도흔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7시간이 넘도록 규제개혁 장관회의·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를 주재하자 공직사회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규제를 죄악이라고 규정하고, 저항하거나 안이한 태도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데 움찔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소위 '좋은 규제'마저 도매금을 매도되고, 무분별한 규제 완화로 시장질서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같은 사례는 가까이는 저축은행 사태, 멀리는 IMF외환위기 등 수도 없이 많기 때문이다. .
석면 피해자와 유족들을 구제하기 위한 '석면피해구제법'이 지난 18일 시행됐다. 법은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들이 분담금을 내서 피해자들을 구제토록 했다. 예를 들어 해당 기업의 보수총액이 10억원일 경우 1년에 4만원 정도 분담금을 내야 한다.
석면피해자가 생활비와 치료비를 지원받을 길이 처음 열린 셈인데 법을 만들면서 이것도 '규제'라는 지적에 환경부가 몸살을 알았다는 후문이다.
앞으로도 석면피해구제법처럼 '을(乙)'을 위한 각종 지원법들이 기업투자를 어렵게 하는 규제라며 개악될 가능성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정부세종청사 공무원들이 지난 20일 오후 사무실에서 생중계되고 있는 '규제개혁장관회의 겸 민관합동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모두 발언을 시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제공) |
규제개혁 장관회의·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 규제개혁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됐던 서울반도체의 연결통로도 과대포장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서울반도체가 경기도 반월공단 내 공장 간 연결통로가 확보안돼 경영애로를 겪고 있는 것을 해결했다며 2018년까지 1조5000억원의 투자와 5000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서울반도체의 매출이 1조2000억원, 직원수 1900여명이다. LED업종이 성장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자연증가가 가능한 수치다. 이는 정부가 규제개혁 효과를 내기 위해 과대포장했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규제 완화가 돌이킬 수 없는 사태로 연결된 대표적인 것이 IMF 외환위기다. 당시 종금사는 규제 완화를 틈타 저리의 단기 해외자금을 빌려다 기업에 고금리로 장기 대출하는 장사를 했다. 그러다 보니 외화 부족 사태의 원인이 됐고, 당시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면서 150조원가 넘는 국민 혈세를 투입하게 한 IMF 경제위기를 낳았다.
또 카드사 규제 완화가 카드대란을 초래했으며, 저축은행 규제 완화가 저축은행 사태로 인한 26조원의 공적자금 투입과 수만 명의 저축은행 피해자를 양산했다. 지난해 동양그룹 사태 역시 관련된 규제강화가 규제개혁위원회 반대로 인해 지연됨으로써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었다.
김기식 민주당 의원은 전날 규제점검회의에 대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었다"며 "천송이 코트, 액티브 X와 공인인증서, 닭포장 문제 등이 과연 대통령이 경제, 사회부처 장관 모두를 모아 7시간 넘게 회의를 해야 했던 사안들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또 "회의에는 중견·중소·벤처 기업 대표와 자영업자도 참석해 의견을 냈지만 각 섹션별 발제자들은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 등 기업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이들로 구성됐다"며 "친재벌·친기업 정책노선을 규제개혁이란 이름으로 포장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독립기구인 감사원의 기능과 권한 침해, 입법권 침해 소지가 있는 발언도 논란을 일으켰다.
박 대통령은 전날 "규정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국민과 기업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집행한 공무원에 대해서는 나중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감사에서 이에 대한 책임을 면해주겠다"고 밝혔다. 또 "의원입법을 통해 규제가 양산되는 것을 막도록 규제 심의장치를 마련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곽도흔 기자 (sogood@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