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주식 존재 양해 또는 묵인"
[뉴스핌=이강혁 기자] 삼성가(家) 형제간 선대회장의 차명재산을 놓고 다툰 상속소송 항소심은 소를 제기한 형 이맹희(84·전 제일비료 회장)씨의 완패로 마무리됐다.
이건희(73) 삼성전자 회장 측 법률대리인인 윤재윤 변호사는 "상속의 정통성과 경영권을 확인한 판결"이라고 반겼다.
반면 맹희씨 측 법률대리인 차동언 변호사는 "판결문을 보고 의뢰인과 상의해 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말을 남긴 채 서둘러 자리를 떴다.
대법원 상고가 이루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맹희씨 측이 상고를 진행해도 원심과 항소심의 결과를 뒤집을 방법이 현재로써는 요원해 보인다.
◆ 차명주식 존재 "양해하거나 묵인"
서울고법 민사14부(윤준 부장판사)는 6일 이 창업주의 장남 맹희씨가 삼남 이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주식인도 청구소송과 관련, 원심과 마찬가지로 이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판결주문에서 "맹희씨가 항소심에서 추가한 지분권 확인 청구 부분의 소를 각하한다"며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주식 인도청구 부분의 항소, 금전 지급청구 부분의 항소와 원고가 항소심에서 확장한 청구 및 항소심에서 추가한 나머지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고 밝혔다.
맹희씨는 항소심에서 이 회장에게 삼성생명 주식 425만9047주, 삼성전자 주식 33만7276주, 이익배당금 513억5000여만원 등 총 9400억원 규모의 재산인도 지급청구소를 제기했다.
다만 항소심 마지막 변론기일에 삼성에버랜드에 대한 소를 취하면서 '화해조정'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이 회장 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청구대상 중 삼성생명 주식 12만여주는 상속재산으로 인정되나 상속권 침해 후 10년의 제척기간이 경과했다"며 "나머지 삼성생명 주식도 상속원주에 관한 제척기간의 경과로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결했다.
이어 삼성전자 주식과 관련해서는 "상속 개시 당시의 차명주식이라고 볼 증거가 부족하고 상속 개시 이후 이 회장의 빈번한 주식 거래로 인해 상속재산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삼성생명 주식과 마찬가지로 10년 제척기간 경과를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 창업주가 나눠먹기식 재산분배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 하에 주력기업인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이 회장에 대한 분재 대상으로 천명해 왔다"며 "맹희씨를 비롯한 공동 상속인이 이 회장의 경영권 행사에 오랫동안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차명주식의 존재를 미필적인 인식 하에 양해하거나 묵인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상속소송 시작부터 항소심까지
이번 상속소송은 지난 2011년 삼성 측이 CJ 측에 '상속재산 분할 관련 소명'이라는 문건에 서명해 국세청에 제출해달라는 요청을 한 것이 발단이 됐다.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차명주식에 관련된 것으로 이는 삼성특검 수사 이후 실명전환한 부분이다.
맹희씨는 이 공문을 계기로 "이 회장이 차명주식을 은닉하고 경영권을 가로챘다"며 2012년 2월 7100억원대의 상속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이 창업주의 차녀 숙희씨(1900억원대), 차남 창희씨 며느리 최선희씨(1000억원대)도 소송에 동참했다.
맹희씨 측은 "단독상속이 아니며 유언과 상속포기 과정이 없었다"고 주장했으며 이 회장 측은 "당시 상속인들 모두 동의했고 제척기간이 지나 상속권 주장이 부적법하다"고 맞섰다.
이 과정에서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졌다. 맹희씨와 이 회장의 법정 밖 예상치 못한 설전이 벌어졌고 1심 마지막 변론일이던 2012년 12월 18일 맹희씩 측은 당초 청구금액 7100억원에서 6배 정도 늘어난 4조849억원으로 소송을 크게 확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이 회장의 승소였다. 지난해 2월 1심 재판부는 "맹희씨 측의 소 제기가 제척기간을 지났고 청구 대상물이 상속재산이 아니거나 상속재산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이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법리공방의 결론은 이 회장의 승리로 결론났지만 형제간 앙금은 풀리지 않았다.
맹희씨 측은 이에 따라 1심 결과에 불복, 항소기한 마지막 날인 지난해 2월 15일 항소를 제기했다. 다만 인지대 등을 고려해 청구금액은 대폭 줄어든 96억원이었다.
◆ 빠른 시간 내 상처 치유 어려울듯
하지만 맹희씨 측은 항소심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청구금액을 9400억원까지 확장했다. 한편으로는 화해조정을 통한 법리공방 마무리를 제안해 또다시 양측간 격한 감정이 연출되기도 했다.
결국 이 회장 측은 상속의 정당성과 경영권에 대한 '정통성'을 내세워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번 승소 판결을 이끌어 냈다.
이제 맹희씨 측의 선택은 대법원 상고냐, 법정 밖에서의 진정한 화해의 길을 모색하냐의 기로에 섰다.
다만 법조계 주변에서 이번 항소심 판결이 원심과 거의 흡사하게 이 회장의 완승으로 결론난 만큼 맹희씨 측의 상고는 의미가 없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그렇다고 진정한 화해의 길을 찾는 것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맹희씨와 이 회장 간 감정의 골이 쉽게 풀릴지 의문이고 삼성그룹과 CJ그룹 간 깊은 상처도 빠른시간 내 치유되기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CJ 측은 이날 항소심 판결 이후 "언제든 화해할 수 있길 희망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